“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 황현탁
  • 승인 2021.04.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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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⑧]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하면 국내 독자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부터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만도 여행기 6종을 포함해 소설, 희곡, 서사시 등 22종의 전집이 출판되어 있다. 그리스 출신(1883~1957)인 그는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지명됐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되는 대문호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일본․중국기행』이다. 그는 52세이던 1935년 2월 22일~5월 6일간 배편으로 일본과 중국을 여행했다. 여행기는 1938년에 출판됐으며 국내 번역판은 1982년 영역본을 이용해 이종인이 번역했다. 일본 여행기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도입부부터 흥미롭다. “근년에 일본이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벚나무 뒤에 숨겨놓았던 대포와 칼을 드러내기까지” “도쿄에서 만난 ‘모가스’(Modern Girls의 일본식 표기)는 ‘일본은 중국, 태국, 인도 등 아시아를 해방시킬 책임이 있으며, 미국과 유럽이 원치 않는다면 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당시 카잔차키스가 탑승한 배가 ‘가시마 마루호’라는 일본 국적선이고, 탑승객들은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 나폴리 출신 아버지와 일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등 여러 국가의 인물이 많이 소개돼 있다. 이로 미뤄보면 1935년 일본은 이미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유럽이나 미국에 뒤질 것 없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그가 일본에 도착한 뒤 만난 한 일본인 엔지니어는 “세계의 중심은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중국, 소련, 미국, 일본. 거대한 게임, 미래의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라며 이미 일본인들 상당수는 큰 전쟁을 예감하고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낯간지러울 정도로 찬미 일변도이다. 카잔차키스는 프롤로그에서 “일본을 다시 마음속에 불러내자 사랑하는 여인의 젖가슴을 쓰다듬기라도 하듯 나의 두 손이 바르르 떨린다.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붉은색 나막신, 기모노에 그려진 국화무늬, 검은 머리를 빗는 상아 빗, 감상적인 하이쿠가 쓰여 있는 비단 부채 등 상상 속에서 반짝이는 일본의 통상적인 모습은 멋지다”고 말한다. 또 마르코 폴로는 일본을 아름답고 쾌락을 즐기며 황금이 가득한 나라 <지팡구>로 불렀으며, 일본에 최초로 입국한 선교사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덕을 갖추었고, 가장 정직하며, 배신하는 일이 없고 명예를 그 어떤 덕목보다 앞세운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기도 한다. 한발 나아가 “배에 동승한 일본 노인이 ‘천왕이 러일전쟁 때 지거나 이겼다는 전황을 보고받으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고 얘기하면서 ‘행복이나 불행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후도신」(不動心)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을 항행의 두 가지 기쁨 중 하나였다”고까지 말한다.

일본이 아침햇살 속에 나타나자 그는 “일본이 동양의 아프로디테가 되어 웃음 속에서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또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오사카만에서 시모노세키에 이르는 내해. 길이는 약 450km를 ‘일본의 지중해’로 묘사했다. 고베항으로 들어선 뒤 주변 풍광을 보고는 “멀리 떨어진 그리스 아닌가! 나는 한순간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반면에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더러움, 거친 음성, 말싸움’ 등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한다. 실제로 그는 썩는 듯한 느낌(콜롬보), 역겨움으로 먹는 것을 포기(싱가포르), 사람들이 하나의 하수구 냄새(상하이)를 풍겼다는 등의 부정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여행기 속에서 메이지 천황의 운문 3행시(운명이 너를 무엇으로 만들 건/왕이든 짐꾼이든/죽을 때까지 그 일에 봉사하라), 교토 게이샤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눈이 오는 밤/ 모두들 차를 마시는 밤/나를 사랑하신다면 제발 오세요.) 등 일본의 하이쿠, 단가, 민요, 전설, 노래 등 일본 문학을 언급하거나 인용했다. 또 젓가락 문화, 포대기에 아기를 업는 풍습은 물론 당시 일본인들의 정신자세(1. 나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차분히 살아라, 2. 마음을 항상 순수하게 지녀라. 마음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라, 3. 조상을 숭배하라, 4. 천황의 뜻을 네 것으로 삼아 이행하라), 일본인 실업가 집에 초대받은 일, 음주(정종)문화, 일본 가옥구조, 목욕, 꽃꽂이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솎아내고, ‘자궁에 외래의 씨앗을 수태하고 철저히 동화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수제품들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멋이 있는 ’시부이‘(渋い)한 점은 그리스와 닮았다고도 말한다. 다만 그는 오사카의 매연, 공장방문 도중 목격한 착취, 불의, 질병, 물질적 권력의 과잉 성장, 정신적 소양의 쇠퇴 등 산업화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나라의 대불, 사슴공원, 호류지의 관음상, 히데요시가 다도명인 코보리 엔슈에게 지시하여 만들었다는 교토의 원덕원정원(圓德院庭園), 오다 노부나가가 할복자살한 혼노지, 다도명인 센리큐가 만들었다는 혼간지의 다원 등을 탐방하고 소개한다.

카잔차키스는 여행기에서 일본 체류 중 노, 가부키도 관람하며, 도쿄의 공창 요시하라(吉原)를 둘러본 후 사창가 다마노이(玉の井)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친구와 함께 긴자에서 게이샤와 하루 밤을 보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나의 조상들은 여자에게 기쁨을 주고 여자로부터 기쁨을 받는 것은 결코 치명적인 죄가 아니라고 믿었다”며 “가장 매력적인 여자는 친구의 아내이고, 다음은 게이샤, 그다음은 하녀, 마지막은 마누라”라는 일본의 속담도 덧붙인다.

이와 함께 오사카와 도쿄에서 보았던 여공들의 파리한 모습, 노동자 거주 구역, 자그마한 창문에 가면들이 나타났던 오싹한 다마노이를 ‘슬픈 것’으로, 나라, 교토, 조각과 그림, 정교한 정원, 노의 비극, 가부키 연극, 어느 날 밤 춤을 춘 게이샤를 ‘기쁜 것’으로 기억한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은 넋을 빼앗기는 사냥과 같다. 어떤 새가 날아올지 전혀 모른 채 나아간다. 여행은 포도주와 같다. 무슨 환상이 마음에 찾아올지 모르고 마신다. 확실히 여행하는 중에 자기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발견한다”라고 여행의 즐거움을 썼다. 그는 ‘일본을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나라’로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일본 국기의 떠오르는 해는 뜨겁게 달구어진 대포알을 닮았다. 일본의 심장은 벚꽃이 아니라 후지산’이라고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당시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대동아론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한 일본인 교사는 “우리에게는 아시아를 깨우고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토 한니(伊東 ハンニ, 본명 松尾 正直)의 “동양이 꽃을 피울 날이 왔다. 중국의 운명은 일본의 운명과 한데 묶여 있다. 세계전쟁에서 일본이 백인들에게 패한다면 동양은 모두 암흑 속에 빠져 버릴 것이다. 일본이 이긴다면 중국도 해방되고, 인도나 인도차이나도 자유를 얻을 것이다. 아시아 전체가 물질주의적인 백인 문명에서 해방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행기 중 한국과 관련된 내용은 ①불교가 한국에서 전래 되었다, ②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 일본, 조선 세 나라를 하나로 만들겠다. 그것은 담요를 개어 팔 밑에 괴는 것처럼 간단하다.’라고 말하고, 조선 사절이 히데요시를 접견할 때 어머니의 태몽을 얘기하면서 중국을 정복할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는 조선 기록이 있다. ③그리스인들이 그리스 문명의 재료를 동방과 이집트로부터 받아 변형시켰듯, 일본인들은 인도로부터 종교를 받아들이고,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재료들을 받아들여 고유한 문명들을 창조했다는 3곳이 있다.

책에서 ‘마천루’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여서 내진설계가 도입된 20세기 말 이전에는 ‘고층 건물’이 있을 수 없고 석조나 붉은 벽돌 건물이었을 것이므로 높아야 7~8층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천루’보다는 ‘고층건물’정도가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상점가의 제등을 ‘라오스풍’의 등으로, 달(月)을 ‘스키’, 신사의 문 토리이를 ‘도리’로 표기하는 등 어색하거나 잘못 표기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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