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 ⑤-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 ⑤-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황현탁
  • 승인 2021.03.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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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천축국은 중국인들이 인도를 부를 때 쓰는 옛 명칭이다. 당시 천축국을 동서남북중의 5개 지역으로 나뉘었고, 각 지역에는 여러 부족 국가들이 있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신라 스님 혜초(慧超, 惠超)의 다섯 개 천축국 여행기이다. 여행기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없어져 전모는 알 수 없지만 바닷길로 동천축에 도착한 뒤 불교 성지를 참배하고 중천축과 남천축, 북천축 여러 곳을 돌아보고 난 후 서쪽으로 대식국(大寔國, 아랍)의 페르시아까지 갔다가 중앙아시아 호국(胡國)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거쳐 중국에 들어섰다. 이후 쿠차(Kucha)를 거처 언기(焉耆)까지의 기록은 잔본(殘本)에 남아 있으나 뒷부분이 사라져 둔황(燉煌)을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여행은 서기 723~727년까지 4년이 걸렸다. 여행기에는 직접 본 것뿐만 아니라 들은 것도 기술되어 있으며, 언급되고 있는 지역은 인도대륙뿐만 아니라 현재의 이란, 타지키스탄 지역까지 광범위하다.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 막고굴(莫高窟) 제17호 장경동(藏經洞)에서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발견하였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앞부분이 떨어져 나간 잔권(殘卷) 상태의 두루마리 형태로 된 필사본으로, 제목이나 저자 이름도 없고 일부는 훼손되거나 탈자가 된 상태였으며, 전체 길이는 358cm로 닥종이 9장을 이은 것이다. 필사본이다 보니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기거나 빼먹는 수도 있어 해석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다.

왕오천축국전용 사진-중국 둔황의 막고굴
중국 둔황의 막고굴

펠리오는 22세의 나이에 베트남의 극동학원 중국어 교수로 임용될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한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스님 혜림이 편찬한 불교사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서 『왕오천축국전』에 사용된 어휘들을 해설한 것을 연구, 발표한 사실이 있다. 그는 이 때문에 막고굴에서 관련 문서를 발견한 뒤 바로 『왕오천축국전』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왕오천축국전』은 227행(1행 대략 26~30자)이다. 탈자가 없는 완전한 행은 210행이고, 전체 글자는 5,893자다. 한자가 표의문자이기는 하지만 227행에서 40개국의 사람과 풍습, 물산, 언어, 불교나 다른 종교 등을 기술하다 보니 개괄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체경음의』에는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 세권으로 되어 있고, 각 권별 주석으로 선정된 85개 어휘는 상권 39개, 중권 18개, 하권 28개를 추린 것이다. 필사본에서 등장하는 어휘 중에는 상권 것은 없고, 중권 어휘는 4개, 하권 어휘는 13개만 등장한다.

현존 기행문의 첫 부분은 ‘폐사리국’(吠舍釐國, 인도 무자파르푸르)에 관한 기록으로 제일 앞쪽 3행인데, 탈자도 있고 마모되어 문맥과 상황을 유추하여 해석하면, “맨발에 알몸이다. 외도(불교 외 다른 종교)는 옷을 입지 않는다. 음식은 보자마자 먹어 치우며 재계(齋戒)도 하지 않는다. 땅은 모두 평평하고, 노비가 없으며, 사람을 파는 죄와 사람을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라고 해석된다.(이하 내용은 정수일 역주 학고재 발행 『왕오천축국전』을 토대로 작성)

다음은 부처님이 열반한 구시나국(拘尸那國,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기술로 4행부터 9행까지인데, 역시 몇 글자가 사라졌다. “부처가 열반에 드신 곳으로 성은 황폐화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다. 탑을 세웠으며 선사(禪師)가 청소하고 있다. 매년 8월 초파일이 되면 남녀승려, 도인과 속인이 공양행사를 치른다. 탑에는 수많은 깃발이 꽂혀있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킨다. 탑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며, 숲이 거칠어 참배객이 물소나 호랑이 공격을 받기도 한다. 탑 동남쪽 삼십 리에 사반단사(娑般檀寺)가 있으며 삼십여 명이 사는 마을 3~5개가 있고 늘 공양한다(요약)” 역주자 정수일은 부처님 입적일이 종파에 따라 이월 초파일, 사월 초파일, 이월 십오일 등 다르다고 한다.

오천축국의 풍속과 관련, “의복, 언어, 풍속, 법률은 비슷함. 길에 도둑이 많고 물건만 뺏고 헤치지는 않음. 흙 솥에 밥을 지어먹고 가난한 사람이 많음. 스님과 마주하면 왕, 수령 모두 의자가 아닌 땅에 앉음. 모직물, 천, 코끼리, 말뿐이고 금과 은이 나지 않으며, 수령과 백성은 가축은 기르지 않고 소를 길러 젖과 치즈, 유지방 식품을 얻음. 착하여 살생을 좋아하지 않음. 시장에서 고기 파는 곳을 볼 수 없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음.”(요약)으로 기록하고 있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된 다섯 비구의 상이 탑 안에 있다(彼羅痆斯國, 베나레스, 부처가 최초 설법한 곳), 녹야원·구시나·사성·마하보리 등 4대 영탑(靈塔)이 있고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摩揭陁國), 왕은 900마리의 코끼리를 소유, 다른 4 천축국과 전쟁하여 이김(中天竺國), 중천축국에 4개의 큰 탑이 있는데 첫째는 사위국(舍衛國, 부처가 설법을 펼친 곳) 급고원(給孤薗)에 있는데 절도 있고 승려도 있음, 둘째는 비야리성(毗耶離城) 암라원(菴羅薗)에 있는데, 탑은 봤으나 절은 황폐하고 승려는 없음, 셋째는 가비야라국(迦毘耶羅國, 부처가 태어난 곳)에 있는데, 성은 폐허가 되고 탑은 있으나 승려도 백성도 없음, 넷째는 삼도보계탑(三道寶階塔)으로 부처님이 도리천(刀利天)으로부터 내려온 곳으로 절도 있고 승려도 보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공경하고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짐(南天竺國), 대식(大寔, 아랍)의 내침으로 나라의 절반이 파괴(西天竺國, 파키스탄 남서부), 나라가 협소하고 병마도 많지 않아 중천축국이나 가섭미라국(迦葉彌羅國)에 패해 산에 살게 됨(사란달라국), 대발률(大勃律, 발티스탄)은 본래 소발률(길기트)의 왕이 살던 곳인데, 토번(吐蕃, 티베트)이 내침하자 왕이 소발률국에 주저앉음(小勃律國), 왕은 돌궐인이지만 삼보를 경신하는데, 왕은 물건과 아내, 동물을 모두 시주하고는 아내와 코끼리는 되사오고 나머지는 승려가 처분 생활비에 충당(建馱羅國,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포함한 인도 펀자브지방, 그리스 영향받아 불상제작 시작), 사자국(師子國, 스리랑카), 곤륜국(동남아지역통칭), 중국과도 교역을 하고 살생을 좋아하며 하늘을 섬기고 불법을 알지 못함(波斯國, 이란), 대식국(아랍 시리아) 동쪽의 여러 호국(胡國-安國, 曹國, 史國, 石騾國, 米國, 康國)은 풍습이 고약해 어머니나 자매를 아내로 삼거나 토파라국, 계빈국, 범인국, 사율국에서는 집안살림 파탄을 우려해 여러 형제가 공동으로 한 아내를 취함(胡國), 호밀왕은 군사가 적고 약해 대식의 관할 하에 있으며, 해마다 비단 삼천 필을 세금으로 보내고 가난한 백성이 많음(胡密國, 파미르고원 남쪽), 구자국(龜茲國)에는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먹고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군사집결처이다 라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초기 불교 요람인 동천축과 중천축에서는 석가의 탄생지인 가비야라와 열반처인 구시나가 황폐화되어 승려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에 이미 불교가 쇠잔하였음을 보여준다. 남천축에는 힌두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서천축에는 불교 이외의 종교(이슬람)가 성행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북천축과 중앙아시아는 돌궐을 비롯한 호족들 치하이고 대식의 침략을 받아 파괴되기도 했지만 불교는 왕실이나 주민들 사이에 경신(敬信)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혜초의 천축국과 서역 기행은 구법수학(求法修學)을 위한 목적이 아니며, 『왕오천축국전』은 각 지역별 불교의 흥망성쇠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여러 지역을 순방하면서 그곳의 지리, 풍습, 종교 등 보고 들은 것들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그 옛날 4년 동안 그 넓고 험한 지역을 돌아다녔으니 깊숙이 탐구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역주자 정수일은 혜초를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高仙芝)의 키르기스스탄 탈라스전투보다 25년 정도 앞서 이슬람 세계와 접촉한 최초의 한국인 진출자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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