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노매드랜드’, 삶과 사람을 기억하다
[송석주의 영화롭게] ‘노매드랜드’, 삶과 사람을 기억하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5.23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로이 자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현대 유목민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남편과 직장 등 삶의 버팀목을 상실한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허름한 밴을 타고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생활하고 있어요. 불안하게 흔들리는 여정의 연속이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오롯이 책임지며 살아갑니다.

인류의 역사는 ‘정착하는 삶’을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동과 방랑과 표류의 삶을 끊어내고, 일정한 곳에 자리 잡아 안전하게 머무르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인간이 염원하는 삶의 기본 조건일 거예요. 이민자의 삶을 그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역시 그러한 희망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정착’이란 불가능해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죽을 때까지 유목적인(혹은 이민자의) 삶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야 하거든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 <키아로스타미의 길> 스틸컷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스틸컷

그것을 영화적으로 집요하게 탐구한 사람은 이란의 영화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입니다. 김호영은 책 『아무튼, 로드무비』에서 “그의 영화에서 길은 삶을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이어주기도 하고, 장소와 장소를 나누기도 하지만 서로 연결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김호영의 논의처럼 길은 나와 너,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는 동시에 이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길은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을 잇는 ‘연대의 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클로이 자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노매드랜드> 또한 그렇습니다. 삶은 어떻게 길이 되고, 길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하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카메라는 두 물음 사이를 가로지르며 정착의 삶을 거부하고, 느슨한 연대를 갈망하는 인간들을 포착합니다. 장르적으로 말하자면 주지하다시피 로드무비(road movie)이고, 스스로를 구원하고 개척하는 삶을 드넓은 자연이 선사하는 해방감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서부극(western)의 잔영이 비치기도 합니다.

클로이 자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감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클로즈업과 롱 쇼트를 차례로 병치하여 충돌시키는 화법을 구사합니다. 카메라는 자주 인물을 근경(近景)으로 잡았다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원경(遠景)으로 담아내는 호흡을 보이는데,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노매드랜드>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운동성이에요. 그 운동성은 인물의 감정과 심리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인물과 공간 전체를 조망하는 이미지의 반복으로 구체화됩니다.

그러한 이미지의 반복은 인간들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지는 것. <노매드랜드>는 바로 그 낙차를 스크린에 아로새긴 영화예요. 그것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돌’의 속성과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펀은 여정 중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스완키(샬린 스완키)라는 여성을 만납니다. 그는 돌을 참 좋아하는데, 펀에게 “내가 죽으면 친구들이 불가에 모여 돌멩이를 불에 던지며 날 기억해줄까?”라고 말해요.

세월에 마모되어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존재하는 돌은 당연하게도 스완키를 상징하는 도상입니다. 한편으로 돌은 길 위를 떠도는 모든 유목민들의 존재를 은유하기도 하지요. 영화 후반부에 펀은 죽은 스완키를 기억하기 위해 친구들과 불가에 모여 앉아 불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노매드랜드>는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나를 통과했던 사람들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추억하는 영화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용채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박용채 070-4699-7368 pyc4737@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