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파란거인·두번째 장례·큐브’… 영화는 계속된다
[송석주의 영화롭게] ‘파란거인·두번째 장례·큐브’… 영화는 계속된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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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8일 폐막했습니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영화는 계속된다(Film Goes On)’였습니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같이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 그것이 일으키는 문화, 창작자와 관객 사이 환대의 에너지, 좋은 영화에 반응하는 관객의 열정… 전주국제영화제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문화”라며 “이런 것들이 ‘영화는 계속된다’라는 명제를 붙들고 세운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에는 관객들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이 집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를 통해 영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 주는 체험이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여전히 가슴 벅차고 짜릿한 경험이니까요. 기자는 올해 전주에서 영화인들의 창의적이면서도 열정적인 힘이 담긴 영화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한국 단편영화들을 몇 작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노경무 감독, 영화 <파란거인> 스틸컷

첫 번째 영화는 노경무 감독의 애니메이션 <파란거인>(2021)입니다. 영화에는 제목처럼 파란거인이 등장합니다. 파란거인은 자신의 몸이 겨우 들어가는 집에서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파란거인은 저 멀리 보이는 매혹적인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을 찾아 집을 떠납니다. 갖가지 고난을 겪고 마침내 발견한 빛은 허무하게도 ‘깨진 유리조각’이었죠. 파란거인은 그곳에서 모종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주인공의 동선처럼 <파란거인>은 ‘떠나는 영화’가 아니라 ‘되돌아오는 영화’입니다. 그건 여행의 본질과 맥이 닿아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떠나기 위해 여행하는 게 아니라 무사히 되돌아오기 위해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온 파란거인은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 집 때문에 고생하지 않습니다. 그건 집이 넓어져서가 아니라 떠나기 전과 되돌아온 후의 내 마음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태경 감독, 영화 <두번째 장례> 스틸컷

두 번째 영화는 김태경 감독의 <두번째 장례>(2020)입니다. 급작스레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잃은 수현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저승길이 외롭지 않도록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려 하기 때문이죠. 죽은 아들을 기어이 결혼시키려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수현의 대립 구도는 결혼과 가족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수현을 연기한 강진아 배우는 <한강에게>(2018)에 이어 다시 한번 죽은 연인의 빈자리를 견디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신지우 감독, 영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틸컷

세 번째 영화는 신지우 감독의 <우리도 모르는 사이>(2020)입니다. 배우로 일하는 지연은 사진작가 건영과 작업하다가 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지연은 건영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건영은 시종일관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받아주질 않아요. 오히려 그는 지연에게 지나가는 마음일 수도 있으니 마음을 찬찬히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순간의 풍경을 담아내는 일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간의 감정에 매혹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죠. 사진으로 표현하는 사랑(혹은 어장관리)의 야릇함과 짓궂음을 재치 있게 드러낸 영화입니다.

조미혜 감독, 영화 <큐브> 스틸컷

마지막 영화는 조미혜 감독의 <큐브>(2020)입니다. 영화는 좁은 고시원에 사는 주인공이 주거 공간과 유사한 형태로 신체가 기괴스럽게 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거 공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화이지요. ‘집’이 아닌 ‘방’을 전전하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주거 공간은 이제 인간의 외형까지 결정짓는 요인이 된 것일까요. 어두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무서우면서도 씁쓸한 영화입니다.

끝으로 올해 영화제에서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국제경쟁 대상과 작품상, 한국경쟁 대상, 다큐멘터리상 모두 여성 감독들의 연출작이며, 배우상과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받은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역시 여성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파란거인>도 여성 감독 연출작이었고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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