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서평들… “편집자 여러분, 보도자료가 중요합니다”
천편일률적인 서평들… “편집자 여러분, 보도자료가 중요합니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10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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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기자들이 서평 쓸 때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다고 느끼십니까?” 취재에 응한 출판 관계자들은 이 질문에 대부분 이렇게 답했다. “잘 아시지 않나요? 열에 여덟은 그렇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포털에서 책 제목을 하나 검색해보면, 매체와 기자 이름만 다른 비슷비슷한 서평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기사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부분 출판사가 보낸 보도자료에서 선별한 몇 개의 문장들을 글이 되도록 이어 붙인 것이다. 가령 보도자료에 “OO은 베트남전 향배를 가른 1968년 구정 대공세 동안에 사이공에서 태어났고…”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을 “베트남전 향배를 가른 1968년 구정 대공세 기간 사이공에서 태어난 OO은…”이라고 바꿔서 보도자료를 재구성하는 식이다.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인지, 설상가상으로 보도자료를 바꾼 문장들조차 비슷하다. 당장 서평 기사 하나를 찾아 해당 기사를 복사해 포털에 검색해보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장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서평들도 더러 있다. 특히 주요 일간지 지면에 실리는 서평들, ‘주말판 북섹션’에 실리는 서평들, 출판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일부 매체의 서평들. 그러나 이런 곳에 실린 보석 같은 서평들은 수천 개의 다른 매체들이 내보내는 비슷비슷한 서평(이라고 읽고 보도자료)들에 묻혀서 잘 찾기 힘들다.  

출판 관계자 몇은 기자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 분들이 많고, 보도자료가 틀린 게 아니니까.” “책을 읽고 써주시는 분이 있다면 감사드리지만, 그것을 못하는 것은 이해한다.” 일부는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보다는 낫다. 그때는 주요 일간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매체가 보도자료를 베꼈다. 지금은 기자들이 예전보다는 책을 읽고, 나름의 기조를 가지고 책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는 출판 관계자도 있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속내에는 못마땅함이 깔려있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읽은 척하는 서평들을 보면 기자들의 수준이 보인다.” “책을 읽지 않고 보도자료를 그대로 쓴 것은 홍보자료지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도자료 서평은 출판사 입장을 그대로 받아서 쓴 것이고, 적어도 기자로서 책을 소개하는 서평이라면 기자의 비평적 해석이 담겨야 한다.” “잘 쓴 서평을 보면 저자나 편집자가 알지 못한 새로운 가치와 관점을 제시해줘서 많은 도움을 받는데, 대부분의 서평들은 내가 쓴 보도자료 짜깁기다.”

지난 4일 기자들 사이에서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중앙SUNDAY>에 기고한 칼럼이 공유됐다. “‘주례사 서평’은 그만… 학식·비판·문체 잘 어우러져야”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는 서평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담겨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좋은 서평에는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돼 있으며 그 책의 사회·문화적 맥락(context)이 담겨 있다. 이러한 맥락을 구성할 때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여러 책들의 맥락 속에서 서평 대상이 된 책을 위치시킬 수도 있고, 동시기에 나온 다른 책들과 함께 맥락을 구성할 수도 있고, 저자의 다른 책들과의 관련 속에서 신간을 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서평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가. 아니, 책을 읽기나 하는가. 그것이 기자들을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출판 평론가 장은수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해당 칼럼을 공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서평을 쓰려면 학식, 비판, 문체도 필요하지만,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길이도 보장돼야… 그러려면 전문 서평지가 필요하고, 출판계가 그 서평지를 광고 등을 통해 유지하는 물적 기반에 투자할 마음도 있어야….”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편집자 여러분, 보도자료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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