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기획 ④] 한국영화의 화양연화, 천만 관객 시대 도래
[한국영화 100년 기획 ④] 한국영화의 화양연화, 천만 관객 시대 도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27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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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1990년대는 한국영화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습니다. 80년대 후반 자유화 정책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박광수·장선우·이명세·정지영)은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이끈 초석이 됐습니다.

영화 <쉬리>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90년대엔 대기업의 거대 자본이 영화에 투입되면서 대규모의 ‘기획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강제규의 <쉬리>(1998)는 이 시기의 변화된 영화 제작 환경의 대표적 산물입니다. <쉬리>는 당시 600만명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이 외에도 강우석의 <투캅스>(1993), <마누라 죽이기>(1994)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코미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영화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영화 <서편제>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7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한 임권택은 90년대 이후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서편제>(1993)가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취화선>(2002)으로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대한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특히 <서편제>는 ‘한(恨)’이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를 ‘판소리’와 엮어내며 한국영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김기덕·박찬욱·봉준호·이창동·홍상수 등 현재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이 대거 탄생합니다. 특히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은 시공간을 독특하고 유려하게 포착, 홍상수 영화미학의 시발점이 된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외에도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 김의석의 <결혼이야기>(1992),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임순례의 <세 친구>(1996),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이창동의 <박하사탕>(1999) 등이 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영화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상업적 작가주의’로 요약되며 양적·질적 발전을 동시에 이룩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박찬욱·봉준호를 비롯해 김지운·나홍진·류승완·장준환·최동훈 등은 자기만의 독특한 영화미학을 구현하면서도 흥행에도 성공하는, 이른바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는 감독들로 평가됩니다.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특히 박찬욱은 <올드보이>(2003)로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 <박쥐>(2009)로 다시 한 번 제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일명 ‘깐느박’으로 불리게 됩니다. 파격적인 소재에 화려한 미장센을 구사하는 박찬욱의 영화 세계는 그야말로 감각적이면서도 심오합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봉준호 역시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극찬을 받으며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불립니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를 비롯해 최근 <기생충>(2019)을 연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영화 <명량>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200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천만 영화’의 탄생입니다. 2003년에 개봉한 강우석의 <실미도>가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4개월 뒤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천만을 넘게 됩니다. 특히 2014년에 개봉한 김한민의 <명량>은 무려 1,700만명이 넘는 관객수를 돌파,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극한직업>(2019), <신과함께> 시리즈,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괴물>(2006), <도둑들>(2012), <7번방의 선물>(2013), <암살>(201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왕의 남자>(2005), <택시운전사>(2017), <부산행>(2016), <해운대>(2009), <변호인>(2013), <기생충>(2019) 등이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이상 흥행 순).

영화 <밀양>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작가주의 감독으로 유명한 이창동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창동은 <오아시스>(2002)로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같은 영화로 배우 문소리가 신인배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어 이창동은 <밀양>(2007)을 연출, 배우 전도연이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기여했고, <시>(2010)로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칭송받게 됩니다. 최근 <버닝>(2018)으로 제71회 칸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산업이 날로 발전하는 데 비해 영화잡지 시장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90년대 한국영화 산업의 양적 팽창과 함께 탄생한 <씨네21>, <키노>, <프리미어>, <무비위크>, <필름2.0> 중 <씨네21>을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에 반해 유튜브 기반의 영화 리뷰 시장은 활황인데, 인기 있는 영화 전문 유튜버들은 수십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 영화평론가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활자가 영상으로(혹은 '글' 평론이 '말' 평론으로) 대체되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90년대에 등장한 감독들이 여전히 선두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점은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또한 2017년, 할리우드에서 촉발한 ‘미투 운동’이 충무로까지 강타하며 ‘페미니즘’과 ‘젠더’ 관련 이슈가 영화 제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재현의 윤리’가 영화 연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현재 충무로에 불고 있는 독립영화(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의 성행은 한국영화의 향후 100년을 전망해볼 수 있는 가늠자입니다.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 양익준의 <똥파리>(2008), 윤성현의 <파수꾼>(2010), 윤가은의 <우리들>(2015), 전고운의 <소공녀>(2017)를 비롯해 최근 김보라의 <벌새>(2019)는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한국 독립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진 한국영화의 역사는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그 발자국을 함께 했습니다. 숱한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영화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한국영화는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성취를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영화 100년은 수많은 영화인과 그들을 아낌없이 지지한 국민들의 노력으로 점철된 역사에 다름 아닙니다.

참고문헌
이영일(2004). 『한국 영화전사』(개정증보판). 도서출판 소도.
김미현(2006).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영상자료원(2013).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김미현(2014). 『한국 영화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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