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기획 ②]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한국영화 100년 기획 ②]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25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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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8·15광복’은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해방의 감격과 새로운 나라의 건설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영화에도 오롯이 투영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학자들은 이 시기의 한국영화를 ‘해방 전기 영화’와 ‘해방 후기 영화’로 나눕니다.

영화 <자유만세>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해방 전기 영화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광복영화’가 주를 이룹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가 있습니다. 조국 해방의 감격은 물론 식민 지배의 분노를 동시에 표출한 영화였습니다.

해방 후기 영화는 ‘좌우 이념 대립’ ‘한국전쟁’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뉩니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정치적 선전을 목적으로 자신들의 진영 논리에 맞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영화로는 한형모의 <운명의 손>(1954)과 <자유부인>(1956), 이강천의 <피아골>(1955), 김소동의 <돈> 등이 있습니다.

전쟁 이후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의 시기였지만, 희망을 갈구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분출된 변혁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한국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영화들이 대거 탄생했습니다.

영화 <하녀>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는 김기영의 <하녀>(1960)입니다. <하녀>는 한국영상자료원이 2013년에 펴낸 책 『한국영화 100선』에서 공동 1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합니다. 세계영화사의 맥락에서 볼 때도 <하녀>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가 절묘하게 뒤섞인 수작입니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2019)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는 “‘기생충’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두 영화는 공간적 배경은 물론 서사 구조까지 흡사합니다.

장면1 - <하녀>의 오프닝 장면. 카메라는 비 내리는 창밖에 있다.
장면2 - 카메라가 인물들이 있는 실내로 점점 다가오고, 유리 창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장면3 - 이어 장면이 컷 되고 밖에 있던 카메라는 안으로 들어와 인물을 포착한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영화가 어떻게 말해지고 있는 가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그만큼 형식이 중요한 예술입니다. <하녀> 역시 형식이 뛰어난 영화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메라의 움직임이 인상적인데, <하녀>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첫 번째 질문. ‘카메라가 왜 밖에 있는가?’. 사실 이렇게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물과 상황을 설명하는 게 목적이라면 영화는 <장면3>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굳이 수고스럽게 비 내리는 창밖에 있는 이유는 ‘밖이라는 공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는 시선’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닝 시퀀스만으로 <하녀>를 재단하면, 이 영화는 밖에서 안으로 흘러드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밖에 있는 ‘무엇(하녀 혹은 쥐)’이 2층 양옥집이라는 실내 공간으로 침입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입니다. 즉 영화는 밖에서 안으로 흘러드는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습니다.

<하녀>는 인물이 안에 있을 땐 카메라가 밖에, 카메라가 안에 있을 땐 인물이 밖에 있는 구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밖에서 안으로 흘러드는 카메라의 움직임(혹은 하녀와 쥐의 움직임)은 대도시(밖)의 병폐를 끊임없이 양옥집(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떤 파괴적인 움직임과 유사합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반복은 결국 안이라는 공간이 와해(중산층의 불안 혹은 몰락)되는 상황을 촉발시킵니다.

사회사적 맥락으로 보면 <하녀>가 개봉한 1960년대 한국은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의 초석을 다진 시기였습니다. 이때 사실상 처음으로 ‘중산층’이라는 계급이 등장합니다. 신분제가 무너지고 일제 치하를 거친 후, 경제적 격차에 의해 또다시 신분이 나뉘게 된 것이죠. <하녀>는 위와 같은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영화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영화 <오발탄>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이와 함께 ‘사극영화’ ‘청춘영화’ ‘문예영화’ 등이 성행했는데, 신상옥의 <성춘향>(1961), 김기덕의 <맨발의 청춘>(1964), 김수용의 <유정>(1966) 등이 각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들입니다. 이 외에도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1960), 유현목의 <오발탄>(1961), 이만희의 <귀로>(1967)와 <휴일>(1968), 김수용의 <안개>(1967) 등이 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영화입니다. 특히 <귀로>와 <안개>는 이른바 '한국형 모더니즘 미학'을 이끈 영화로 평가됩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은 영화법이 제정·시행되고, 연간 100~200편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한국영화 산업의 본격적인 발전을 알리는 시기였습니다. 이와 함께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한국영화의 질적 중흥을 이뤄냈습니다. 이 시기의 영화인들은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 의미 그대로 한국영화를 재생시키고 부활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참고문헌
이영일(2004). 『한국 영화전사』(개정증보판). 도서출판 소도.
김미현(2006).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영상자료원(2013).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김미현(2014). 『한국 영화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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