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기획 ③] 한국영화의 몰락? 1970~80년대 한국영화 이모저모
[한국영화 100년 기획 ③] 한국영화의 몰락? 1970~80년대 한국영화 이모저모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26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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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유신시대(維新時代,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유신 헌법의 지배를 받던 시대)의 도래는 한국영화의 퇴락을 가져옵니다.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검열 정책을 비롯해 경제 성장으로 각 가정마다 TV가 보급되고, 국민들의 취미 활동이 다변화하면서 한국영화는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아예 제작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영화진흥공사를 설립, 대대적인 반공영화를 제작합니다. 임권택의 <증언>(1973)은 정부 지원 아래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대표적인 국책 반공영화였습니다.

이와 함께 70년대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청춘영화와 호스티스영화(사회적 신분이 낮은 여성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큰 인기였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얄개>와 <진짜진짜> 시리즈가, 후자의 예로는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과 김호선의 <겨울여자>(1976) 등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 시기에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 등의 배우는 ‘신 트로이카’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70년대는 우울감과 행복감이 공존했던 시기였습니다. 독재 국가가 국민들을 탄압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명랑함’을 강조했고, 이로 인해 ‘관제 민족주의’와 ‘현실 도피주의’ 등의 사조가 영화에 투영된 극단적인 조울의 시대였습니다.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은 당시 이러한 한국의 정치·문화적인 특징이 잘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암흑기였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 후반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국영화는 다시 활력을 되찾습니다. 임권택·이장호·배창호 등은 코리안 뉴웨이브 직전의 시기를 대표하는 감독들입니다. 이장호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4) 등을 통해 독특한 영화적 화법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영화 <고래사냥>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특히 1984년에 개봉된 배창호의 <고래사냥>은 ‘가장 80년대적인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박유희 영화평론가는 책 『한국영화 100선』에서 “1980년대식 낭만은 비약과 맹점을 품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관객이 해학 속에서 이해할 때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었다”며 “1980년대 최고의 대중영화 ‘고래사냥’은 바로 그 지점을 성취하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임권택의 <씨받이>(1987)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뒀는데, 주연 배우로 활약한 배우 강수연이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임권택은 자신만의 영화미학을 구축하게 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영화 <티켓>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이 시기에 개봉한 임권택의 영화 중 <티켓>(1986)은 한국영화가 여성의 고단한 삶을 마주한 사실상 최초의 영화였습니다.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책 『한국 영화사 -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에서 <티켓>을 “압축 성장의 근대화의 그늘로 매춘업을 설정하고 매춘부로서 질곡에 빠진 여성의 삶을 휴머니스트적 관점에서 보려는 점에서 호스티스물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점이 있다”며 “그러나 카메라의 고질적인 관음적 시선을 떠나 매춘부로서 여성의 주체적 인식을 끌어낸다든가 매춘제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부재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기조로 인해 에로티시즘 영화가 성행했습니다. 바로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끌어냈는데, 정인엽의 <애마부인>(1982)이 서울극장에서 31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1984), <뼈와 살이 타는 밤>(1985) 등 제목만으로도 외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들로 넘쳐난 시대였습니다.

끝으로 80년대 후반 등장해 90년대 충무로를 풍미한 박광수·장선우·이명세·정지영 등의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로 인해 한국영화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참고문헌
이영일(2004). 『한국 영화전사』(개정증보판). 도서출판 소도.
김미현(2006).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영상자료원(2013).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김미현(2014). 『한국 영화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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