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큰별쌤’ 최태성 “진보와 낙관으로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책 읽는 대한민국] ‘큰별쌤’ 최태성 “진보와 낙관으로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7.25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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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Ted Carr)는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모든 학생이 역사 교과서 첫 장에서 어김없이 배우는 이 문장. 그러나 학생들이 정말로 배우는, 아니 외우는 것은 단지 이 말을 E. H. 카가 했다는 단순한 사실뿐이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이 몇 년에 일어났는지, 이순신 장군은 몇 년에 어느 해전에서 전사했는지 등 외울 내용이 많으니 역사가 어째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역사는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 
초등학생부터 취업준비생까지, 역사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백이면 백 그의 수업을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 대표 역사강사 최태성은 책 『역사의 쓸모』에서 역사의 본질이 사람을 공부하는 ‘인문학’에 있음을, 역사가 ‘과거 사람과 현재 사람 간의 대화’라는 역사 교과서 1장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을 과거의 당신도 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최태성에 따르면 역사의 ‘쓸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가 “삶의 해설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선택의 기로는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이 미리 경험했고, 따라서 어떤 선택에 따른 결과 역시 문제집 뒤의 해설서처럼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조차 없었던 평민 장보고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푸른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은 막다른 길에서도 언제나 삶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 판사직을 내려놓고 만주에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박상진은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함을 일깨운다. 백성의 고통을 줄여줄 조세제도에 일생을 바친 ‘대동법의 아버지’ 김육,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600억원이 넘는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회영 일가는 한 번뿐인 인생,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생을 모르겠다면 역사를 만나라, 사람을 만나라. ‘별별 한국사’ 사무실에서 최태성을 만났다.  

Q.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명사로 선정되셨다.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A. 안녕하세요. 우리의 삶과 떨어져 있는 역사를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싶은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역사를 쉽고, 또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7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교직 경력은 23년이 넘었습니다. 인터넷 강의 경력은 2001년 EBS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니 올해 19년 차입니다. 저는 주로 인터넷 강의, 강연, 방송, 작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찾아뵀었는데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전달해야 하는 역사 전달자 입장에서 ‘웃음’이 목적인 예능은 많이 나갈수록 어떻게 보면 독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흔들리거나 와전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에 따라서 선별해 한시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경우도 제가 네 번 출연했는데요. 올해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젊은 층에게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였어요. 이를 위해 프로그램에서 인세를 통해 얻은 기부금 19,190,301(1919년 3월 1일을 의미)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마리텔’ 제작진은 계속 나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다시 역사 전달자로서의 본분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Q. 대한민국 최고 역사강사라는 평인데… 강의 잘하는 비결이 있는지? 

A. 굳이 비결이라고 한다면, 저는 늘 제 강의를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역사를 공부하면 아는 체하고 싶고요, 젠체하고 싶고요, 어려운 말을 써서 있어 보이고 싶어 해요. 많이들 역사를 잘 모르시니까요. 역사는 역사의 여러 재료를 가지고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과목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단지 한국사를 쉽게 설명하고, 그 설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이 역사를 전달하는 자의 목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강의를 준비할 때, 그리고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를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또는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좀 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말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시과’를 설명할 때 단순히 “고려시대 토지제도 전시과야” 이렇게 하지 않고, 먼저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지요. 그리고 “전시과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과’는 지금의 공무원 급수에 해당하고, ‘전’은 토지, ‘시’는 임야예요. 그러니까 전시과는 공무원 급수에 따라서 토지와 임야를 나눠주는 제도예요”라고 설명하는 식이지요. 저는 ‘전시과’라는 세 글자만 가지고도 이해가 되는데, 듣는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렇게 무엇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인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Q. 누적 수강생 500만명.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거의 다 최태성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 들린다. 엄청난 영향력에 따르는 책임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하는 고민, 혹은 노력이 궁금하다. 

A. 이런 위치에 오니 사실 좀 많이 부담스러워요. 저도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전달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일 뿐이어야 하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역사를 공부할 때 저를 한 번쯤은 거쳐 가시니까 마치 제가 대한민국 역사를 표준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되거든요. 역사의 접근법과 해석은 정말 다양해요. 저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제 의견이 하나의 표준화된 역사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어요. 
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수험생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는 시험문제를 잘 풀기 위한 강의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게 역사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학교 현장에서 역사의 본질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열심히 설계하시는 분들이 어찌 보면 진짜 역사를 전달하시는 분들인데, 그분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제 모습만 보여서 제 수업이 역사의 표준처럼 보이게 될까봐 그게 제일 두려워요. <독서신문>을 통해서 이런 고민들이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 수업은 절대 표준화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수업이 여러 한국사를 공부하는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요.
‘노력’이라고 한다면, 저는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고도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이란 게, 똑같은 강의여도 돈을 내는 강의를 들으면 왠지 조금 더 좋다고 느끼는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 착시현상까지 극복하려면 정말로 좋아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온라인 역사 강의를 들었고, 역사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강의도 들었어요. 본질은 같거든요.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을 전달하는 방법, 그 방법을 배우려고 했어요. 돈을 내고 듣는 강의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는 그런 강의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 지금의 강의가 나온 것 같아요.
            
Q. 강의를 들으면, 역사는 그저 ‘흘러간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태성이 생각하는 역사란? 

A. 많은 분들이 역사를, 사실을 암기해서 시험문제를 푸는 과목으로 여겨요. 그러나 역사의 본질은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에요.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내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그 고민의 지점이 바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내 삶과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예를 들면 제 삶의 멘토 같은 분이 있어요. 바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선생이 60여년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물었던 질문이 있어요.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이분은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어요. 제가 앞서 ‘역사란 내 삶과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잖아요. 저는 우당 이회영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제 삶이, 제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물론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한 번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요. 그런데 살면서 너무 바쁘다 보니 앞만 보면서, 목표만 보면서 쳇바퀴 돌듯이 돌아요. 그러다 보면 정말로 내 삶이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을 놓쳐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비로소 ‘내 인생이 한 번밖에 없고, 얼마 안 남았구나, 우리는 이제 점점 작아질 것이고, 결국엔 다 흙으로 돌아가는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돼요. 그 순간 우리 인생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시간은 조금 달라집니다.    

Q. ‘역사의 심판을 받아라’라는 표현도 있고, 역사는 ‘힘’이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역사가 도대체 어떤 힘이 있는지는 늘 의문이다.   

A. 저는 역사의 진정한 힘은 ‘진보’와 ‘낙관’이라는 두 단어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엄청나게 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의 역사는 조금씩 조금씩 진보했어요. 진보의 기준은 ‘인간 자유의 확대’예요. 어쨌건 간에,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역사는 진보했어요. 그리고 그 말은 우리의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이에요. 또 이 ‘진보’의 관점 속에서, ‘낙관’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항상 불안해요.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 상처받게 돼요. 그러나 역사의 힘이 ‘진보’이고, ‘낙관’이라는 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불안 속에서 여유로울 수 있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하루하루 벌어지는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서 조금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역사는 반복된다’라고도 하고 ‘진보한다’라고도 한다. 때로는 역사가 퇴보하기도 하는 것도 같다. 역사의 반복과 퇴보를 막으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A.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있어요. 이 굴러가는 방향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해요. 시야가 좁으면, 이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는 것만 보이고,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는 몰라요. 돌고 있는 현상만 갖고 판단해버리면, 잘못된 판단이라는 거죠. 
제가 2015년에 ‘트위터’에 ‘트윗’(트위터에 쓴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어요.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시행한다던 때에요. 정부가 그 소식을 발표하자마자 저는 “이제 여러분들 비로소,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가는지를 확인하시게 될 거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그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늘 가던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국정교과서를 통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 그리고 그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 보시게 될 거다”라고 올렸어요. 결국 지금 그 ‘트윗’대로 됐잖아요. 
국정교과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시대가 더욱더 개별화, 다양성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이것을 획일화, 단일화로 묶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였어요. 안 된다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몇몇 사람의 의지를 통해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지는 않거든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데 우리가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욱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거죠.     

Q. 지금 대한민국은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는 등 격동적인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훗날 역사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에 떳떳하기 위해서 개인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A. 우리 역사는 분단의 역사가 아니었어요. 우리 역사를 보면, 여러 나라가 있었죠. 부여, 고구려, 삼한(마한, 진한, 변한) 5개국의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3개국의 역사로 합쳐져요. 또 남북국시대로, 발해와 신라로 좁혀져요. 이게 또 좁혀져요. 고려와 조선으로. 우리 역사는 이렇게 여러 개의 나라에서 하나의 나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에요. 지금 남북이 분단돼있는 시간, 이 60여년은 역사의 긴 안목 속에서 본다면 정말 찰나의 시기예요. 우리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하나가 될 거예요. 지금 이 시기는 그 하나 된 꽃을 피우기 위한 진통의 시기, 과도기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 진짜 현대사의 첫 장은 넘어가지 않았어요. 남북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그 첫 장이 넘어가게 될 거예요.    
그럼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어 둘로 나뉘어야 해’라는 생각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예요. 어차피 우리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가 되는 데는 분명 부작용들이 있을 거예요. 그 부작용들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하나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Q.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수준 높은 무료강의를 만들어 가정의 사교육비를 낮추고, 인세 수익 1억원을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과 ‘굿네이버스’ 국내 위기 가정 아동 지원 사업에 기부하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해오셨는데, 『역사의 쓸모』에서는 “전성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올라가는 것보다 잘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다.     

A. 제가 ‘별별 히스토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역사 콘텐츠를 계속 올려서, 누군가의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역사를 통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콘텐츠를 평생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역사가 딱딱한 게 아니라 정말 내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였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채널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게 제 ‘동사’의 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걸 제일 잘해요. 누군가와의 비교가 아니라, 제가 가진 능력 중에서 제일 잘하는 게 그거예요.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일. 그 일을 평생 해보고 싶어요.      

Q. 사람들은 요즘 독서를 잘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좋다’는 사실도 역사에 나오는지?

A. 우리가 역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책 읽는 사람이에요. (웃음) 그리고 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거고요. 저는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은 들어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는데,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책에서 주는 정보들을 취득하지 않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상의 시대, 영상이 또 하나의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영상을 통해서 젊은 친구들은 이미 책을 보고 있는 거예요. 책을 보는 형태가 예전과 다를 뿐인 거죠. 
다만, 책의 시대를 경험했던 기성세대로서, 그래도 책이 가진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상은 호흡이 굉장히 빨라요. 행간의 여백이 없어요. 그런데 책은 텍스트 중간중간마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의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책은 주체적이에요. 책은 멈추면서, 생각하면서, 내가 속도조절을 할 수 있어요. 반면, 영상은 그게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책은, 내 생각이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데 있어서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상 세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Q. 지금의 최태성을 만든 책 몇 권 추천 부탁드린다.    

A.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입니다. ‘책의 깊이’라는 것을 제가 처음 느낀 책이에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책이 평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죄와 벌』을 읽을 때는 마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깊은 공간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책이 이렇게 깊은 거였어?’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이렇게 다양하고 이렇게 깊은 건가?’ 전율을 체험했어요. 책이란 무엇인가. 책이 주는 새로운 경험을 체험했어요. 너무 깊어서 퍼낼 수가 없었어요. 
두 번째 책은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이 세상에 저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사는 거였어요. 우리 안에 내가 있는 거였어요. 우리 안에 있는 나, 우리를 기준으로 본 나, 나를 기준으로 본 우리, 그 우리와 나의 어떤 관계를 참 적절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제시해주는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아닌가 해요. 
마지막으로 박노해 시인의 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추천해요. 똑같은 글자인데도 그 단어에 함축돼있는 의미가, 일반적인 글들은 한두 개라면 시는 무한개인 것 같아요. 그런 시의 힘을 통해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메시지를 경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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