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희상 시사IN 기자 “해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 망각을 되돌려야”
[인터뷰] 정희상 시사IN 기자 “해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 망각을 되돌려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25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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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기자(記者). ‘기록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는 기자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를 보도하고 공론화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기록인이다. 이때 기록하는 능력 못지않게 사건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 능력에 따라 어느 정도 실력 있는 기자는 현상을 기록하고, 그보다 뛰어난 기자는 사실들의 합에서 의미를 읽어내고, 그보다 더 뛰어난 기자는 사실 이면의 진실을 조명해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

사실 참된 기자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상에서 의미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열어 의미 있는 답변을 끌어낼 줄도 알아야 하며, 외부위협에도 심지를 굳건히 지켜 끝내 기사를 출고하는 배포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희상 <시사IN> 기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참 기자로 평가받는다. 기사를 기업 광고와 바꿔 수익을 창출하고, 왜곡·편파 보도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진실 보도’를 추구하며 기자 외길 30여 년을 지켜 온 정 기자. 그는 지금까지 한국전쟁 후 민간인 학살 은폐사건을 공론화해 특별법 제정에 일조했고, 그 밖에도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친일파 후손 재산 찾기, 검사와 스폰서, 주수도·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 등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를 특종 보도한 바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때로는 사람 마음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장장 4개월을 술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돈 많은 졸부로 변모해 나이 차 나는 후배 여기자를 애인으로 앞세워 위장 잠입하기도 했다. 그렇게 권력형 비리나 무고한 피해자의 눈물이 있는 사건의 열에 아홉은 정 기자의 기사로 다뤄졌다.

최근 기자 인생 30여년을 정리하며 대중이 망각하기 쉽지만 그래서는 안 될 주요한 사건을 모아 책으로 편찬한 정 기자. “부정한 권력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 국민의 망각이다. 기자생활을 결산하며 망각에서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간하게 됐다”는 그를 <시사IN>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 불독 기자, 빙의 기자, 정 특종, 소송 전문기자 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는 데 집중해 왔는데, 혹시 유독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집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나는 1963년생으로 유신체제에서 교육받은 세대다.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교육 아래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집권자가 강요하는 현상만 보도록 교육받았다. 유신교육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진실과 다른 현실에 많은 갈증을 느꼈다. 나는 광주 5·18 이후 대학에 들어갔는데, 당시 전두환 정권 역시 유신정권과 마찬가지로 군사독재 체제로서 부조리한 일과 부작용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감춰진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기에, 그런 감춰진 진실을 발굴하고자, 대학 졸업 후 권력에 저항하고 맞서는 선배들이 있는 곳에 몸을 담게 된다. 그곳이 언론사 <말> 지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과거 보도지침 사건(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리던 것을 <말> 지가 폭로한 일)으로 유명했던 1989년경에 입사했고, 그때부터 현대사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 정권이 금기시하던 영역을 발굴해 전하는 고발보도를 시작했다. 일례로 해방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비무장 민간인 수십만명이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했지만, 그런 사실이 은폐돼 전국 도처의 유가족이 숨죽여 우는 상처가 있었는데, 그런 일들을 드러내 볕을 쪼여줘야겠다는 사명감에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 기자가 기레기라고 욕먹는 시대다. 김훈 작가는 ‘추천의 말’에서 “젊은 기자들은 정보를 장악해 사실에 접근하는 고통스런 훈련을 기피한 채 너도나도 멋쟁이 문장가로 변신해가고 있다”고 했다. 현시대의 언론계를 어떻게 보는지?

언론계에 오래 종사한 선배 기자로서 요즘 국민 다수의 인식 속에 언론 종사자가 ‘기레기’라는 표현으로 비난받는 것이 참 가슴 아프고 부끄럽다.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과거 기자들의 부족했던 점이 부조리한 권력과 영합해 그들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거나 진실 앞에 침묵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듯하다. 요즘 기자 세계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진실에 침묵하는 쪽보다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해서 소위 ‘가짜뉴스’라고 칭하는 의견 중심 뉴스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미디어 수용자로부터 불신과 비난을 받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미디어가 다양화 돼, 제도권 언론사와 기자뿐 아니라 개인 미디어라 해서, 블로거, 유튜버들도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진보였든 보수였든 기존 언론사 출신의 나름 명망 있던 기자들조차 은퇴 후에 상업주의적 가짜뉴스 생산 대열에 앞장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측면을 보면 언론의 본분과 보도윤리에 비쳐서 ‘(언론 윤리가) 많이 퇴보하고 있구나’ 그런 개탄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내가 보기에 한국기자협회라든가 언론노조가 아직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언론인과 언론사 타이틀을 달고 있는 직업 영역에서는 성찰과 자정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가짜뉴스가 양산되고, 그런 부분들이 정치적 분위기 속에 용인되고, 진영 간 싸움으로 넘어가면서 진실은 오리무중 되는 이런 부분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언론 유관단체에서도 상당한 자정활동과 계몽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현실적으로 기자가 기사만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수익 창출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이 같은 고민을 하는지?

그런 부분에서 <시사IN>은 비교적 행복한 편이다. 왜냐하면 삼성과 편집권 독립(2006년 삼성에 불리한 기사를 <시사저널> 경영진이 삼성광고로 대체한 데 반발해, 일부 기자들이 퇴사해 <시사IN>을 창간함)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자본 권력에 독립된 편집권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이 주주가 돼 창간했기 때문이다. 1,000여명의 국민이 주주로 참여해 출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자체가 사업 이윤추구로 가서도 안 되겠지만, 또 사실 언론이 그런 대단한 이윤추구가 되는 영역도 아니다. 다행히 <시사IN>은 생계걱정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 소명을 다해 올곧은 참 언론의 길을 갈 수 있게끔 지원하는 풍토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겠다.

<시사IN> 유료 정기구독자는 최고 많을 때 6만명 가량이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ABC협회 부수조사에서 <시사IN>은 여전히 ‘탑’(TOP)으로 나온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수용자들이 인쇄매체를 구독해서 보기보다는 온라인으로 보는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보고 그걸 고민하고 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자가 언론 지면을 사서 보는 금액인 ‘지대’를 가지고 운영해야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조리한 세력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언론 대부분이 그 지대가 무너졌다. 80~90%가 광고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우리는 70~75%가 지대고 25~30%가 광고다. 광고를 집행하는 재벌을 포함해 자본권력의 입김에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행복한 여건이지만, 지대가 줄어들면서 광고에 대한 고민도 커지는 상황이다.

- 김훈 작가는 “그(정희상 기자)를 괴롭히고 적재하는 사람들도 ‘사실’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김훈 작가는 내가 10년간 선배로 모시고 일했던 상급자였다. 탐사보도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내 글을 데스킹(검토·확인)했는데, 그러면서 당시 받았던 공격을 데스크로서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면서 내가 겪었던 고충을 아니까 그런 표현을 한 것 같다. 괴롭히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기자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세력이다. 그 세력은 기사마다 다양하다. 김훈 중위 사건 같은 경우에는 국방부였고, 나경원 사건 같은 경우에는 당시 집권여당과 이명박 청와대였다. 그런 쪽에서 소송을 건다든지 여론전을 펴면서 공격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 괴롭히고 적대시하는 세력이라는 건 자신들에게 불편한 기사가 나왔을 때 무도하게 나오는 세력을 말한다.

- 기사에 대한 외압은 예전보다 나아졌나?

달라지긴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국정원이 협박을 일삼았다. 갑질도 많이 했는데, 그건 노무현 정부 들어 많이 줄어들었다. 당시 국정원에 대한 힘 빼기 단행은 민주주의 진척도에서 내가 피부로 느끼는 부분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이 부활하긴 했지만, 과거처럼 갑질을 하지는 못했다. 그들도 알게 된 것이다. 비상식적인 월권을 하게 되면 정권이 바뀔 경우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신사적으로 와서 밥 사면서 정보를 빼내 가려는 형태로 변화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보안사, 지금의 기무사 요원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때 군 인권이라든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 일가의 군납 사업 독점 비판기사 등을 많이 썼는데, 기무사 요원들이 대통령 심기경호를 위해 찾아온 거다. 기무사가 기사를 쓰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아니었지만, 회유는 있었다. 아들이 군대 갈 즈음에는 “편한 보직을 주겠다”고 회유하고, 어떤 때는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됐는데 그 정도면 이제 그 기사는 그만 써도 되지 않느냐”고 회유하기도 했다.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끌고 가서 협박하고 고문하진 않았지만, 군 정보조직인 기무사가 언론인을 접촉한다는 건 넓은 의미에서 사찰이다. 안될 일이 계속됐던 거다. 현 정권에서 그런 일은 없어졌다.

- 지금까지 다양한 사건을 탐사 보도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 이유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권 당시 역사 교과서가 다룬 한국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은 ‘거창사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많이 있었지만, 거창 하나만 다뤄졌고 그마저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산청·함양·거창 사건이라고 해야 맞다. 당시 11사단 토벌대라는 부대가 산청·함양 지역에서 8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노인과 어린애, 부녀자까지 집단 학살하고, 또 행군해서 산을 넘어 다음날 거창군 신원면에서 715명을 학살했다. 근데 앞부분은 가위질해버리고 뒤에 신원면 학살만 ‘거창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걸 산청·함양·거창 사건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당시 <시사저널>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김영삼 정부 때 국무총리 산하에 거창 산하 등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고 특별법이 제정된 일이 기억에 남는다.

- 사회 어두운 면을 보도하면서 협박도 많이 받았겠지만, 회유의 유혹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

유혹이라기보다는 턱도 없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이완용 재산을 몰래 찾아가던 증손자 이윤영 같은 경우에는 내가 그걸 7개월가량 추적해,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이미 여러 번 승소해 몇 십억원의 땅들을 돈으로 받고 그런 상황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인 매국노 이완용이 나라 팔은 대가로 일본 천왕에게 하사받은 땅인데, 이게 정리가 잘 안 돼서, 민법상으로 상속이 된다고 해서 이윤영이 그걸 찾아가고 있었던 거다. 그걸 취재하려고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 자리에서 “이완용 재단 이사로 영입할 테니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는 어이없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또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을 벌인 주수도가 사람을 보내 “강화도에 있는 땅을 헐값에 주겠으니 보도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책에 소개된 여러 사건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그 끝이 흐지부지 종결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부조리한 권력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세상의 망각이다. 그들은 세상의 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언론인의 입에 재갈 물리기다. 일단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면 다른 언론에서 후속보도를 꺼리게 된다. 거액 소송을 당했다는데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그들은 참 뻔뻔하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일단 소송을 걸고 본다. 자기들이 패소할 걸 알지만, 패소하는데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보도를 막아 망각하게 하고 그렇게 사건을 덮겠다는 의도다. 책 『팩트와 권력』의 출간은 그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세상의 망각에서 진실을 되살려내려는 의지의 몸부림이다. 사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데, 제일 힘든 게 “세월이 흘렀는데 왜 그러느냐”고 반응할 때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취재할 때도 힘들었던 게 ‘이제 와서 해묵은 사건 드러내서 뭐하려고’라는 가해세력의 반응이었다. 1990년대 초반 그 무렵이 벌써 그 사건으로부터 30~40년이 지났기 때문에 “망각하자” “덮자”는 의견이 많았다.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이나 그에 동조하는 무리는 망각을 무기로 쓰기 때문에 난 기자생활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망각으로부터 되살리자’라는 목적의식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

-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는 점점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나?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 평생 노력해왔는데, 과연 역사가 진보적으로 가고 있는가? 이데올로기적 보수, 진보가 아니라 공동체 성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소위 말하는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런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볼 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정세 속에서 강대국 위주로 보호무역주의 국수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몇몇 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이 강한 지도력으로까지 돋보이는 건 참으로 우려스럽다. 지금의 전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돼, 어떤 정보든 모든 지구인이 삽시간에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보호주의와 국수주의 풍조가 맹위를 떨치게 되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까? 과거 2차 세계대전이나 히틀러 같은 인간이 나타나 또다시 과거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수록 언론의 기능, 지성의 기능이 중요한데, 요즘은 그런 부분에서 회의가 많이 든다. 그러나 역사는 후퇴하는 듯 보이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신념으로 믿는다. 다만 퇴보하고 혼란의 양상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적 숙제가 적지 않다.

- 권력이 은폐한 여러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면서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부정적 선입견이 생길 것도 같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직업병은 없나?

가끔 아내와 언쟁이 있을 때 “왜 취조하듯이 그러느냐”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심 뜨끔 한다. 사실 난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그런 류는 아니었다. 생긴 것도 그렇고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상대를 겁먹고 꼼짝 못 하게 하는 강단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내 선배나 후배들이 내 취재전법을 ‘허허실실 전법’이라고 한다. 다른 취재기자들이 알아내지 못한 걸 내가 가서 알아낼 때가 있는데, 그건 상대를 날카롭게 압박해서가 아니라 그쪽에서 입을 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더듬 수’ 때문이다. 여러 가지 ‘더듬 수’로 상대를 갑갑하게 해서 “그게 아니라 이거다”라는 얘기를 유도하는 거다. 제보자를 만나 보면 “기사를 보면 무섭고 날카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아니네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이 사람들을 취조하듯 대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도 가지고 있더라. (웃음)

- 기자에게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열정이야 기자라면 누구나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인간에게 공을 들이는 끈질긴 근성이 중요한 것 같다. 밤을 새서 통음(痛飮)한다든지, 한 달 정도 사귄다는 생각으로 관리하고 만나고, 경조사도 챙기면서 일정 정도 감동하게해서 미안해서라도 ‘저 친구에게는 정보를 열어줘야겠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말 끈질겨야 한다. 사실 기자로서 다뤄야 할 이슈가 많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나는 한 가지 이슈를 비교적 오래 취재하는 탐사취재여서 가능했다. 그런 식으로 취재원과 교류하면서 기자 초년생부터 연을 맺어 30년 넘게 가까이 지내온 취재원도 있다.

- 책에도 소주를 들고 4개월간 매일같이 특수공작원 천보산 조용박씨를 찾아가는 ‘끈질긴 근성’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특수 공작원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철칙이 몸에 배어 있다. 그걸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은데, 당시 4개월가량 매일같이 찾아다니면서 결국 무너뜨렸다. 나중에는 내게 “아이고~ 내가 무슨 짓을 했나. 당신 기자정신 때문에 내가 무너졌다”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고’(보도) 했다.

- <시사IN>은 진보매체로 알려졌다. 기자들의 성향은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진보인가?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분위기인가?

내가 느끼기에 <시사IN> 기자들은 합리적, 개혁적, 진보적, 창의적인 친구들이다. 실제로 진보와 보수의 생각 차이로 인한 갈등은 거의 없다. 다만 세대 간, 성별 간 미세한 온도 차는 있다. 최근 ‘성인지감수성’ 문제만 해도 세대 간, 성별 간에 약간의 편차가 있다. 여성들 내부에서조차 그렇다. 이런 경우 <시사IN> 기자들은 입 꾹 닫고 있기보다 공론의 장에서 해결한다. 기사 아이템을 신입 기자부터 고참 기자까지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회의에서 선정하는데, 이때 자유로운 논의가 오가며 공론의 장이 형성된다. 공론의 장은 바람직하고 건강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 회의에서는 엄청 치열한 논쟁이 이뤄지나?

그 정도는 아니다.(웃음) 20대 기자와 60대 기자가 치열하게 주고받긴 어렵지 않나.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면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대체로 합리적으로 얘기하고 듣는 이도 잘 수용하는 편이다.

-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해왔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요새는 ‘하늘 아래 새 뉴스가 없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치열하게 현장에서 뛰면서 변화에 일조해 왔으나, 최근에는 앞서 12·12사태와 5·18로 단죄받은 전두환씨가 민주주의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5·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침투했다는 가짜뉴스가 떠도는 역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씨가 처단되기까지 진실을 추구했던 수많은 언론의 노력이 있었다. 또 그런 여론이 있었고, 공적인 수사가 있었다. 그래서 전두환씨가 12·12사태와 5·18사태와 관련해 내란죄 등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지금에 와서 ‘민주주의 아버지’라며 역사를 되돌리려고 한다. 우리 세대는 그 내용을 아는데, 지금 젊은 20, 30대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5·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그럴듯한 가짜뉴스가 퍼지는 것 아닌가. 그걸 보면서 ‘아~ 정말 해 아래 새 뉴스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 다뤄졌던 뉴스를 환기·압축해서 전하는 역사 전쟁, 팩트 전쟁 속에서 은퇴 후에도 현대사를 바로 조명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가짜뉴스를 가지고 의견을 내버리면 정말 웃기지도 않게 진실은 오리무중이 되고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는 건데, 그건 우리 후세나 미래에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잘못을 막기 위해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일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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