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합헌, 남자는 그래도 되나요?... “섹스보다 더 격렬한 낙태 전투”
낙태죄 합헌, 남자는 그래도 되나요?... “섹스보다 더 격렬한 낙태 전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3.2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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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낙태죄 위헌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 판결이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 나올 것으로 전망되면서 찬/반 측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기독교·가톨릭 등 종교단체는 낙태는 엄연한 유죄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와 관계기관은 여성 인권신장을 위해 낙태죄가 폐지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현행법(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률을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거기에 낙태를 시술한 (한 )의사 역시 2년 이하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법 270조 1항)에 처하고 있다. 낙태 희망자와 시술자 모두를 처벌하는 법령을 둬 낙태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였지만, 낙태는 암암리에 성행했고 낙태죄는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데 그쳤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약 3,000건, 연간 100만여 건의 낙태시술이 이뤄졌다.

그런 낙태죄가 돌연 위헌 소송에 휘말리게 된 건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69회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후 낙태죄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그간 진행된 낙태죄 위헌 소송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번번이 합헌 결정을 받았으나, 최근 낙태에 관대한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더욱이 지난 2012년 이뤄진 낙태죄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8명 중 4명이 ‘위헌’ 의견을 제시, 위헌 판결을 위한 정족수 6명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여가부가 ‘낙태죄 재검토’를 골자로 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고 국가인권위 역시 ‘낙태죄 처벌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면서 이번 판결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15~44세 여성 1만명 중 75.4%가 낙태죄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자료가 공개돼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싣기도 했다.

낙태죄 폐지가 현실화될 분위기에 종교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천주교계는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다. 낙태가 합법화돼 법률이 낙태를 허용하면 양심에서도 허용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국 16개 교구에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100만9,577명의 서명지를 헌재에 제출했다. 기독교계 역시 국가인권위원회 입장을 강력히 비판하며, “태아의 생명은 어머니의 생명과 독립된 개별 인격이며, 태아도 우리와 동일한 생명권을 누리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17일 온누리교회는 전국 10개 캠퍼스 교회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좀처럼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현행법은 낙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부과한다. 남성 역시 낙태의 책임이 있으나 처벌에서 자유롭다”며 “낙태를 허용하는 문제만큼이나 남성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낙태 처벌 규정에 남성을 포함, 양육비 지급 의무를 명확히 하고 어길 시 실효성 있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양육비의 경우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도 상대가 지급을 거부하면 강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배드파더스(Bad Fathers) 단체는 항의 차원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남성 86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초상권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로 처벌받을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현행법상 여성의 낙태 비용을 지불하거나 함께 산부인과를 가면 낙태 방조죄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여성에 대한 처벌보다 훨씬 가볍고 그마저도 법리적으로 다툼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제적/심리적/신체적 부담을 여성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전 『주홍글씨』에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간통(Adultery)을 상징하는 ‘A’ 글자를 가슴에 달고 교수대에 서면서 끝까지 불륜 상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오미 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책 『결혼시장』에서 “낙태는 가족 가치를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 섹스보다도 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지점”이라며 “우파에게 낙태는 곧 나태해진 도덕성을 상징하며, 나태해진 도덕성은 혼전 섹스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좌파에게 낙태는 끝없는 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성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좀처럼 정답이 보이지 않는 낙태 문제 해결에 앞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부조리부터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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