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생선
어머니의 생선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8.12.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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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동장군(冬將軍)이 찾아오면 어린 날 입맛을 사로잡던 명태가 생각나곤 한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어머니께서 동태찌개라도 끓일 양이면 온 집안에 가득 퍼지는 구수하고 매콤한 그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괜스레 우리 형제들은 행복해했다.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고춧가루, 파, 마늘, 두부를 넣어 끓인 얼큰한 동태찌개는 우리 가족의 가난한 뱃속을 달래주는 유일한 별식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어물전에서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 파는 명태새끼들을 사 왔다. 돈에 비해 유난히 생선 마릿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 들고 집안에 들어서자 어머닌 내 손에 든 명태들을 확인하곤 잘못 사 왔다고 타박을 했다. 어린 마음에 그러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은 생선이지만 양이 많아 우리 가족들이 실컷 먹을 거라는 나의 계산과 달리 어머니 말씀은 단호했다.

“아무리 여자애지만 이렇게 마음 그릇이 작아서 장차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 단 한 마리를 먹어도 싱싱하고 가장 실한 생선을 사 와야지, 싸고 양 많다고 잔챙이를 사오는 배짱을 지니다니, 다시는 작은 생선은 사지 마라.”

그때는 어머니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됐지만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비록 여자지만 마음자락을 넓고 깊게 쓰는 대인(大人)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지난날 어머니 말씀이 이즈막 새삼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 친정에서 발견한 어머니께서 그린 그림 때문이다. 어머니는 유치원생이나 다름없다. 날마다 찾아오는 요양사분의 지도로 꽃 그림도 색칠하고 눈사람도 그리고 당신 이름 석 자도 한글과 한문으로 다시 쓰는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가 그린 둥근 접시 위에 놓인 두 마리의 생선이다. 몇 달 전 그린 생선 그림을 눈여겨 살펴보면 생선이 거지반 접시를 능가할 크기이다. 비늘도 선명히 색칠이 돼 있으며 배도 하얀색으로 칠하여 그림일지언정 무척 크고 싱싱해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 어머니께서 그린 고등어 그림은 비늘도 흐릿하고 생선 배도 누런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것을 본 나는 어머니께 여쭤봤다. 왜 생선이 이렇게 상했느냐고 여쭙자 어머닌,
“몇 달 전 고등어 한 손 사 왔을 땐 싱싱했는데 오랫동안 냉장고 속에 넣었더니 이렇게 썩었구나”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리는 생선 그림이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이유를 여쭙자 돈이 없어서 작은 생선을 사 와서 그렇다고 어머닌 답한다.

어린 날 우리에게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절대 작은 생선은 뼈 치레니 사지 말라던 어머니 아니던가. 단 한 마리일지라도 크고 싱싱한 생선을 사는 배포를 지니라던 어머니 아니던가. 그런 어머니께서 정작 당신은 작은 생선을 산 그림을 그리다니.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절로 눈가가 젖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엔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한동안 이해 못 할 말을 하기 일쑤인 어머니다.

친정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에 자동 지우개를 지니고 있다. 오래전 일은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해도 며칠 전 일들은 금세 잊어버리는 치매 증세를 앓고 있다. 십 분 전에 안부 전화를 드렸건만 전화를 다시 내게 걸어와 나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안부가 걱정 돼 전화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면 뼛속까지 저리도록 가슴이 아프다.

젊은 날 복사꽃처럼 아름답고 지성과 교양이 넘치던 어머니 모습은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굽은 등, 나무 등걸 같은 뼈만 남은 두 손,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 앙상한 몸매에선 어린 날 보아온 어머니의 단아한 모습은 흔적조차 없다. 이제는 날이 갈수록 정신 마저 놓아버리는 어머니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내가 감기라도 걸려 아플 양이면 내가 사는 이 먼 곳을 찾아온다고 떼를 쓰곤 한다. 머릿속에 자동 지우개를 지닌 어머니 가슴에 아직도 나는 당신 목숨처럼 소중한 자식으로 기억된단 말인가. 당신 안위보다 여전히 나의 건강이 염려된단 말인가.

어머닌 다른 것은 전부 머릿속에서 삭제돼도 자식을 향한 숭고한 사랑만큼은 그토록 야속한 머릿속 자동지우개도 그 효능을 제대로 발휘 못 하나보다.

오늘도 홀로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노라니 흐르는 뜨거운 눈물 탓에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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