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프랑스 그림 속 격변의 역사를 만나다
[포토인북] 프랑스 그림 속 격변의 역사를 만나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2.09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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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화가는 그림을 통해 시대와 인간을 표현하므로, 그림은 시대의 초상화이자 역사의 기록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미술과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되짚어 보려는 이들을 향해, 나는 이 책을 썼다.”
프랑스는 혁명, 공포 정치, 나폴레옹의 등장과 제1제정, 제2제정, 파리 코뮌, 제3공화국 등을 거치며 지금의 시민사회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다사다난한 역사는 고스란히 프랑스 미술사에도 담겼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 저자는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프티 팔레, 로댕, 마르모탕 모네, 베르사유궁 박물관 등 프랑스 미술관의 그림들을 통해 프랑스의 역사와 미술을 엮는다.   

[사진제공= 지식서재]

“이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알아?”
“응 누드화나 그리는 밀레란 작가야.”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랐던 밀레는 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었고, 신화적 색채가 가미된 누드는 잘 팔리는 소재였다. (중략) 아내에게 다시는 누드를 그리지 않겠다며, 오래전부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밝혔다. 밥값을 벌기 위한 그림을 버리고, 판매와는 거리가 먼 농촌으로 들어갔다. 그림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 <105쪽>

[사진제공= 지식서재]

클로드 모네가 그린 ‘1878년 6월 30일 축제가 열린 파리 몽토르게이 거리’의 부분. “마차의 시대가 끝나고 증기 기차가 달리며 전기가 들어오는 시대를 사는 마네와 인상주의자들에게는, 비너스와 큐피드는 시대착오적인 미술로 비쳤다. 그들은 현대 생활을 새로운 화법으로 그렸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림은 여전히 과거와 같아야 했다. 왜냐면 과학 발전은 편리와 두려움의 이중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55쪽>

[사진제공= 지식서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라 그르누예르’. 그르누예르는 부지발 근처에 있는 강가의 명소 이름인데, 직역하면 ‘개구리 연못’이다. 당시에 은어처럼 통용되던 다른 뜻도 있었다. 르누아르의 설명에 따르면, “제정기 전후로 파리에 등장한 세대로, 정확히는 매춘부라고 할 수 없지만, 연인을 자주 갈아치우고 변덕이 심하며 샹젤리제의 저택이든 바티뇰의 다락방이든 가리지 않고 들어가는 젊은 미혼 여성“을 가리켰다. <295쪽>

[사진제공= 지식서재]

앙리 루소의 ‘나, 초상: 풍경’. 인상주의가 주류가 되자, 화가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주의’를 향해 과감하게 나아갔다. 비평가들은 ‘제2의 인상주의’가 될 수도 있는 그들을 향해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지 못했다. <388쪽>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이동섭 지음|지식서재 펴냄|396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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