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백재중 "정신병원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작가의 말] 백재중 "정신병원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8.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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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갈음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이 책을 쓰면서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주로 신체를 다루는 내과 의사인데 정신장애인들과 정신병원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자기 전문 분야를 가진 직업인으로서 다른 분야에 관한 글을 쓴다는 부담도 상당했습니다. 

협동조합 영화로 알려진 '위캔두댓'이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있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협동조합 바람이 불면서 수입 상영된 영화인데, 저는 우연한 기회에 두 번 관람했습니다. 처음 관람 때는 왜 정신장애인들이 힘겹게 저런 조직을 만들어서 직접 직업 일선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이 날 이후로 영화의 배경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상황과 배경을 뒤지다가 이탈리아 정신보건 역사와 바살리아 법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 정신보건 현실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넘어갔습니다. 

그동안 은폐돼 잘 보이지 않던 우리 사회 뒷모습이 선명하게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료실이나 병동에서 가끔 마주쳐도 느낄수 없었던 정신장애인들의 절망과 고통이 이젠 제게도 잘 전해집니다. 그래서 원고를 써 내려갔습니다. 

이 책은 지금 '정신병원 없는 나라'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개혁 과정과 그 중심에 있는 프랑코 바살리아라는 정신과 의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신병원 없는 나라가 가능할까요? 마치 '군대 없는 나라'가 가능할까라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우리나라는 '정신병원 전성기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정신병원 없는 나라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무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정신보건 시설들이 가득합니다. 여기는 지금도 정신 질환자들 수만명이 수용돼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수용이 아니라 감금돼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 시설에서 풀려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정신 질환자들은 시설에 갇히는 순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므로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잊고 삽니다. 시설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지는 관심 사항이 아니니까요. 걱정이라면 혹시 이들이 시설에서 나와 거리를 배회하게 될 경우 따를 위험 정도일 겁니다. 

수용 위주 정책이 바뀔 기미가 없으니 그런 걱정도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듯 합니다. 오히려 정신 질환 없는 비장애인들의 범죄가 숱하게 발생하니 이쪽이 좀 더 걱정입니다. 가끔 보도되는 정신병원의 실상들은 그저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단면의 하나이려니 하고 외면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정신병원의 문이 열리고 수만명의 환자가 지역사회에 나온다면, 나라에 정신병원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까요? 이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바살리아 법 제정을 통해 정신병원을 폐쇄한 지 40년이 됐습니다. 

지금처럼 수많은 정신 질환자들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병원 시설에 갇혀 지내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요. 이제 우리의, 우리 사회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 자유가 치료다
백재중 지음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175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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