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이도화 “땅 위, 땅 속 울림까지 담은 시 한 편”
[작가의 말] 이도화 “땅 위, 땅 속 울림까지 담은 시 한 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8.20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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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갈음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오랫동안 이 숲길을 걸어왔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꽃 피고 바람 불어도 이 길을 걸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쉬지 않고 걸었다. 걸을수록 길은 낯익었으나 걷고 나서 뒤돌아보면 낯선 모습으로 뻗어 있었다.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내리막길에서도 힘에 겨워 멈춰서야 했다. 한 그루 나무 그림자처럼 단호하게 살고, 짙은 산그늘처럼 선명하게 살고 싶었다. 길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듯했으나 모든 것을 배척하고 밀어내기도 했다. 길은 시시각각 썩고 스며들고 새로 돋아나 베어 넘어지고 젖어 있거나 바짝 말라 있었다.

나,

곧잘 휘청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었다. 땡볕은 사나웠고 그늘은 서늘했지만 그늘 아래 숨는 게 싫어 당당하게 걷기로 했다. 피하고 싶은 것들도 피하지 않았다. 외로움도 이 길의 운명이고, 잊히는 것도 이 길의 숙명이라면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길은 휘어지고 뒤틀어지고 끊기는 듯했으나 끊어지지 않고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갈 길 멀어 늘 막막하고 아득한 길, 주저앉지 않으리라. 땀범벅이 될지라도 쉬엄쉬엄 걸어가리라.

땅 위, 땅 속 울림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


■ 강, 시의 몸 위를 걷다
이도화 지음|바람꽃 펴냄|192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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