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생각하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
25년간 공직에 몸담아온 최현덕(52) 전 남양주 부시장이 밝힌 좌우명이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며 '반개혁적'이라는 인식이 팽팽한 한국 사회에서 그는 주어진 일에 맹목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철저히 경계해 왔다.
경기도 광주의 한 산골 마을에서 자란 최 전 부시장이 공직에 뜻을 둔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오랜 세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 1980년 광주에 큰 빚을 진 걸 뒤늦게 깨달은 그는 시대적 상황에 울분했고, 온몸으로 시대의 아픔을 고민했다. 암울했던 당시 그가 찾은 소명은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들어 사회를 바꾸는 것이었다. 군 제대 후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3년의 노력 끝에 합격을 맛봤다.
공직생활은 최 전 부시장에게 잘 맞는 옷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국제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3년 여간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고 중앙부처와 경기도청, 남양주에서 공직생활을 이어왔다. 이런 그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남양주 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걸어온 매일 매일의 발자취를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을 엮어 책 『일하다 만나다 사랑하다』를 펴냈다. 마지막 장에는 ‘독서일기’도 담았다. ‘다산 정약용의 고향’ 남양주와 사랑에 빠진 그를 만났다.
- 1992년부터 25년간 공직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 퇴직한 뒤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고 만나게 됐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25년간 공직에 몸담았다가 뜻한 바 있어 지난해 11월 스스로 사퇴했다. 그리고 12월 남양주 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 지금은 6월 13일에 있는 지방선거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 먼저, 그동안 해오신 일 얘기부터 했으면 한다. 요즘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청년이 너무 많아 사회문제로 비치기도 한다.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85년이었다. 흔히 말하는 85학번이었는데 당시는 민주화 시위가 굉장히 격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시대의 아픔을 깨우치고 제가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 그때 제가 생각한 방법은 공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좋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게 결국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정고시를 준비해서 중앙부처에 들어갔다. 의미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서 어떻게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 그렇게 공직자로 살아왔다.
취업이 어렵고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청년이 많다 보니까 이른바 공시족이 많은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젊은이가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고, 청년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책임이 있다.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공직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저는 공부할 때 한번 시작하면 계속 파고들어 가는 성격이었다. 많은 사람이 출제 경향이라든가 학원가라든가 유명 강사 등의 정보에 귀를 쫑긋하고 그런 정보를 찾아서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는 제 실력을 탄탄히 기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몇 시간은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공부에 몰입했다. 또 고시 준비는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과감하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선배들과 땀 뻘뻘 흘리면서 축구라든가 운동을 했다.
- 공무원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언도 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사회가 점점 서비스 사회로 바뀌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서비스다운 서비스는 국민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제가 공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고 25년간 공직생활을 해온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실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작은 서비스라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민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편을 해소할까'하는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공직에 오를 필요가 없다.
청년 모두가 힘들다. 일자리가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런 두려움을 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정말 실력이 있다면 갈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실제 우리 사회에 의외로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데 그 기회를 찾지 않고 남들 하는 데로만 따라가다 보면 길을 찾기 어렵다.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청년들에게 지금 어렵다고 해서 절대로 꿈을 잃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 꼭 필요한 청년의 인재상과 그들이 현실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은 어떤 것인가요.
지금 청년들은 제 청년 시절에 비해 스펙이 굉장히 좋다. 어학, 컴퓨터, 해외 경험 등 다양한 스펙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제가 청년 시절에 갖지 못한 현대 청년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펙이 다양하고 많은 것은 좋지만 '그 스펙을 어떻게 하면 실제로 옮길 것인가', 또 '두려움 없이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가' 하는 도전정신은 옛날과 달리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펙은 갖췄기 때문에 스펙을 바탕으로 해서 남들이 가는 길만 가지 말고 기회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아까 말한 공무원도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만 제한돼 있다. 경쟁률이 50대 1, 100대 1인 경우가 많다. 물론 공무원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의 재능이 필요한, 꼭 사람이 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그건 기계가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저는 도전정신을 갖춘 청년이 미래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인재상이라 생각한다.
-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국민들이 부담을 지거나 불리한 처벌을 받을 때 사전에 국민의 의견을 반드시 묻도록 한 행정절차법 제정이다. 제가 그 법 제정을 담당한 사무관이었다. 한 4년여에 걸쳐서 전문가, 시민 단체와 회의·토론·현장 확인을 하고 그 법을 제정했다. 법이 제정되고 나서는, 예를 들어 정부 기관이 허가를 취소할 때라든가, 과징금을 부과할 때라든가, 인허가를 취소할 때라든가, 시민들이 불이익을 받을 때는 반드시 해당 행정기관에서 시민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주고 공청회를 갖는 등의 의견 수렴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 전에는 관청에서 일방적으로 일을 했다면 행정절차법 제정을 계기로 반드시 상대방 의견을 청취하도록 했다. 국민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행정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굉장히 뿌듯했다.
두 번째는 2011년도에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 숫자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특수교사인데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법령이 정하기는 적어도 학생 4명당 특수교사 1명이 있어야 한다는 1대 4원칙이 있었는데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그게 잘 안 지켜졌다. 그 당시에 제가 담당 과장을 하면서 장애인 단체 대표들, 공직 대표들, 학부모 대표들과 함께 모여서 끊임없이 토론했다. 결과적으로 예산 당국을 설득해서 일 년에 약 650명씩 5년간 3000여명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일로 장애 단체에서 감사패까지 받았다.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계속 장애인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정책을 개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펴낸 책을 보면 남양주를 향한 애정이 넘치는 것 같다. 남양주시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
남양주는 현재 인구 67만의 대도시다. 지난해 연말부터 다산신도시 입주가 시작돼서 인구가 앞으로 80만~9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면적만 봐도 서울의 80%에 해당한다. 800m 넘는 천마산, 축령산 등 유명한 산 4개가 있고 아름다운 북한강과 팔당댐이 있다. 자연 풍광이 좋고, 문화유산이 풍부한 지역이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시민이 함께 모여 협동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애향심이 강하다. 제 고향은 광주지만 남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앞으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남양주에 전국 5위 규모의 도서관이 건립된다. 독서에 대한 애정이 반영된 것 같다.
지난해 10월 말에 다산 신도시 안에 전국 1000여개의 공공도서관 중 약 5위에 해당하는 규모로 가칭 ‘남양주 중앙도서관’이 공사를 시작했다. 앞으로 이름은 다산도서관, 정약용 도서관으로 바뀔 수 있다. 남양주는 정약용 선생을 배출했고, 생가와 무덤이 있는 도시다. 정약용 선생의 애민과 실사구시라는 두 가지 정신이 도서관의 설계와 활용에 반영됐다. 외관으로는 조선 시대 선비들 책가도(冊架圖) 모습을 형상화했고, 내부에는 최첨단 IT기술을 활용해서 지역 주민들이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책을 열람하고 지역 현안이나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열람실을 줄이고 지역주민이 모여서 토론하고 청년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다독가로 알려졌는데, 꾸준히 독서에 임하는 본인만의 방법·시간 관리 비결이 있는지.
나이가 들수록 관성이 생겨 옛날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진전이 없다.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따라가기 어렵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독서야말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 내가 알지 못한 사람들 분야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소중한 기회다. 그래서 책에 빠져들었고 탐닉하기 시작했다. 책 읽는 시간만큼은 하루에 몇 분이라도 할애하려고 애를 썼다. 책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즐겨 읽는데 사실 많이 읽을 때는 일 년에 80~90권 읽었지만 부시장을 하면서 실제로 50권정도 읽었다. 주말에 한 시간 이상씩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서 얻는 경험이 엄청 많다.
- 책에서 얻은 영감을 실제로 반영한 사례가 있나요.
매우 많다. 부시장이라는 자리는 복합적 사고, 융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 행정이 보건복지·체육·일자리로 나뉘어 있지만 요즘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융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 분야에서 문화·예술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또 과학기술에서 얻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책에서 읽었던 영감이라든가 지식, 떠올랐던 생각들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다. 반드시 "아, 이거는 어디 책에서 봤던 구절이다"가 아니라 책의 내용이 축적되면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퍼뜩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특정 분야에 바로 접목이 된다. 이건 독서를 하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것이다. 인문학적인 소양, 또 문화예술 분야의 소양들이 실제로 행정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공직자들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와 반대되는 분야, 기타 분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 좋아하는 문구나 좌우명이 있나요.
나치 학살에 가담했던 독일 고위 관료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를 체계적으로 이행했다.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을 때 <뉴요커> 잡지에서 한나 아렌트를 파견해 재판을 방청했다. 그런데 재판에서 아이히만을 접해보니 그는 너무나 평범한 일개 시민이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빠고,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걸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악마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썼다. 결론은 '악의 평범성', 즉 '어떤 일을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깨닫지 않고 하는 게 바로 그게 악의 근원이다'였다. 그래서 제 좌우명은 '생각하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 매년 다이어리 앞에다 써놓곤 했다. 관료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영혼이 없다는 말을 듣는데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닫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하면 자기는 잘했지만 잘한 일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에게 나쁜 일로 나타난다.
- 책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음식을 편식할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즐겨 먹어서 익숙한 음식만 먹는데 편식의 위험성은 균형 잡힌 영향을 담보할 수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도 읽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읽게 된다. 물론 특정 작가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도 좋지만 두루 다방면으로, 특히 자신이 전공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저는 행정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문화·예술·과학·기술 분야를 의도적으로 읽으려고 애를 쓴다. 읽다 보면 어느새 정치·역사 분야로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끊임없이 저와 무관할 수 있는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 독서신문의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에 셀럽으로 선정됐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지.
우선,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다.
일하다 보면 그날 일상에 매몰돼 큰 틀에서 내 역할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사소한 것에 집중하다 보면 왜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의 의미와 파급력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인생과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큰 틀에서 보여주는 깊이 있는 책을 수시로 읽어야만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그런 책이다.
다음으로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을 추천하고 싶다.
제가 민주화 격동기를 살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제대로 책을 못 읽었다. 맨날 시위하고 돌 던지고 그런 걸 많이 했다. 근데 대학 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책을 많이 깊이 읽을 수 있는 시기다. 유시민씨가 쓴 『청춘의 독서』에 나오는 책은 정말 청춘 때 꼭 읽어야 할 것들이다. 어린이 책을 어른이 읽으면 의미가 없듯이, 뒤늦게 읽으면 안 되는 책들이다. 책이 다 때가 있다. 이 시대 불행한 청춘이 『청춘의 독서』에 나온 책들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