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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나보다 더 좋은 반쪽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거리는 유난히 춥고 을쓰년스럽다. 햇살이 고층 빌딩 숲 사이로 자취를 감추자 더욱 칼바람이 살갗을 에인다. 강추위에 온몸을 웅크리며 시내 버스를 기다릴 때이다. 길 건너편 저만치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가 횡단보도를 힘겹게 건너는 게 눈에 띤다.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한 노부부는 두 분 모두 걸음걸이가 위태롭다.

먼발치서 바라봐도 노부부의 내딛는 걸음이 한 발 한 발 무척 부자연스럽고 우둔해 보인다. 때마침 그들이 횡단보도를 중간쯤도 못 왔을 때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자 도로위의 차량들이 길 한복판에 서 있는 노부부를 발견하곤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에 할아버지는 한 손에 쥐었던 지팡이도 갑자기 내동댕이친 채 황급히 자신의 등을 돌려 할머니를 업고 차량들 사이로 어렵사리 길을 건너고 있다. 종전까지만 하여도 할아버지 역시 지팡이에 의지했던 처지 아니던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성치 않은 몸으로 위험에 처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등을 할머니께 내 주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새삼 ‘부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는게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다. 이때 남녀의 결혼(結魂)으로 이루어진게 부부아니던가. 인격과 인격, 혼과 혼이 결합된 결혼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부부상(夫婦像)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마냥 행복의 가도(街道)만 달리지 않는다. 인생행로엔 온갖 장애물이 가로 놓이기도 한다. 세상사 온갖 풍상을 만날 때마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게 부부다. 뿐만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은 자신이 지닌 장점으로 채워주는 게 결혼의 참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가족원만(家族圓滿)의 으뜸으로 부부 화합을 손꼽았다. 오죽하면 ‘현처(賢妻)는 일생의 풍작이요, 악처는 일생의 흉작(凶作)이다’ 라는 말로써 좋은 배우자를 강조하였을까.

이런 결혼이 현대에 이르러선 일부지만 사람 됨됨이 보다는 혼수나 예물, 혹은 사회적 신분으로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하여 결혼이 마치 장삿속을 방불케 한다. 아무리 사회적 신분이 높고 혼수나 예물을 바리바리 해 온들 인성이 그릇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아니던가.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사건만 보더라도 부부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미뤄 짐작하게 한다. 어느 할머니가 사소한 말다툼 끝에 남편인 할아버지를 지팡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심한 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려온 할머니가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여 빚은 참극이었다.

아마 이 할아버지는 평소 남성 권위주의의 갑옷에 갇혀 자신의 아내에게 이런 횡포를 저지른 듯하다. 할아버지는 오로지 봉건적 사상에만 길들여져 할머니한테 여자로서 삼종지의(三從之義)만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로보아 프랑스 소설가 발자끄(1799-1850)의 말마따나 인간이 얼마나 결혼 생활에 관한 지식이 미흡한지 알 수가 있다. 발자끄는 인간의 지식 중에 가장 뒤떨어지는 지식이 결혼에 관한 지식이라고 일렀다.

인간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과연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까? 부와 명예, 그리고 잘생긴 외모가 진정 결혼의 완벽한 조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누군들 장담할 수 있으랴.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위험, 위기에 봉착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배우자이다.

내가 목격한 노부부만 보더라도 이런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란 생각을 지울 길 없다. 그럼에도 그 날 아내를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잔잔한 감동마저 이는 것은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권동혁 기자  kdh@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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