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칠 것만 같은 나라 러시아는 사실 방대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품고 있다.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러시아의 미술세계를 잘 몰라 낯설게 느낄 뿐,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러시아 사람들의 삶과 자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독자들을 매혹적인 러시아 미술세계로 초대하는 김희은 씨는 15년째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에서 도슨트 일을 하며 그림 알리미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수년 전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를 보고 둔탁한 뭔가에 맞은 듯 한동안 멍했다. 그동안 삶에 대해 너무 교만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삶은 어디에나’를 보면 러시아 차르에 반대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의 열차 안에도 삶과 생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 미소 짓는 아기의 천진한 얼굴에서는 ‘순수’를, 새들에게 빵 조각을 나눠주는 손길에서는 ‘풍요’를 느끼게 된다.
한순간 러시아 그림의 매력에 빠져든 저자는 작품을 공부하고 소개하는 일을 맡게 됐다. 그가 이번에 소개하는 책 속 그림들은 러시아의 생생한 풍경을 담고 있다. 전쟁과 기근으로 가족을 잃고 이별을 겪어야 했던 이들의 오열과 통곡, 그런 어두운 그늘을 덮어버리듯 복숭아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소녀들의 아름다움, 보드카에 살고 죽는 러시아인들의 유쾌한 농담까지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추운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이삭 레비탄의 ‘황금 가을’을 보면 러시아에도 황금빛으로 가득한 자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높고 푸른 하늘, 새하얀 구름, 대지를 가득 채운 황금빛 들판까지. 그간 잘 몰랐던 러시아 그림의 세계로 빠져보자. 부록으로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재미있게 둘러보는 방법도 담겨 있다.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김희은 지음 | 써네스트 펴냄 | 352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