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표현의 해방구’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슬프고도 유쾌한 영화들
‘영화 표현의 해방구’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슬프고도 유쾌한 영화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5.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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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전주국제영화제>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새롭고 창의적인 작가들과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해준 전주국제영화제가 18살이 됐다. 올해는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10일간의 영화 축제를 이어간다. 역대 최대 규모인 58개국 229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만큼 선택 폭도 넓다. 징검다리 연휴 기간도 겹쳐 전주 한옥마을 못지않게 많은 관광객이 전주 영화의 거리를 찾고 있다.

29일, 주말을 맞아 전주로 내려온 영화 팬들이 전주시 고사동 전주 라운지에 모였다. 지난 13일 사전예매가 시작된 지 하루 만에 전년의 두배에 달하는 80여편 작품이 매진된 터라,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최종 매진되기 전에 현장예매에 성공해야 했다. 라운지 오픈은 9시부터였지만, 8시부터 줄이 길게 늘어져 10시 30분이 다 돼서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관객들은 “201번이요, 303번은요?” 하면서 원하는 영화 번호 매진 여부를 물었다. 

기자도 프레스 배지를 받아 예매 줄에 선 지 1시간 만에 입을 뗐다. 개막작인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초행’, 한국 경쟁작 ‘해피뻐스데이’ 등은 이미 매진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번으로 적어뒀던 영화들을 포기하고, 희망순위 2번 작품들을 예매했다. 이틀에 걸쳐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고자 ‘메나쉬’, ‘잠자는 미녀’, ‘친애하는 우리아이’, ‘그 누구도 아닌’, ‘언노운 걸’, ‘브라이트 나잇’ 등 6장의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중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국내에 꼭 개봉됐으면 한다. 

■ 메나쉬 -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

아내 레아를 잃고 마트 점원으로 일하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는 한 남자 메나쉬.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하지만, 홀아비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유대인 공동체의 강력한 전통 때문에 아들 리벤을 처남에게 맡긴 채 가끔만 함께 시간을 보낸다. 메나쉬는 떳떳한 아버지이고 싶어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 아내 추모식 준비는 직접 하겠다, 노력하는 모습을 봐 달라며 처남에게 사정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차갑고, 아버지로서의 메나쉬는 어설프다. 

다큐멘터리 연출가 조슈아 Z. 바인스타인은 캐릭터와 그들이 놓인 환경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대다수 배우들을 실제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캐스팅해 사실감을 높였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을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아이를 재운 뒤 조용히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 생각에 잠기는 메나쉬의 모습에서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음날 출근길, 첫 장면보다 단정해진 옷차림을 하고 걸어가는 그에게서 심경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잔잔하지만 생기 있게, 슬픈 듯 유쾌하게 그려지는 유대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잠자는 미녀 - 현대판 ‘잠자는 숲속의 미녀’

우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현대판. 2000년 레토니아라는 가상의 국가를 무대로 시작된다. 드럼 연주로 지루한 낮을 보내는 왕자 에공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친 반항아다. 그는 가정교사에게서 우거진 정글 속 켄츠 왕국에 얽힌 전설을 듣고, 100년 전 깊은 잠에 빠진 미녀를 찾아 떠난다. 

전설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켄츠 왕국의 로즈문드 공주 탄생을 기념하는 자리. 다섯 요정이 초대받았지만, 여섯번째 요정만은 초대받지 못했다. 배신감을 느낀 요정은 공주가 18번째 생일날 물레의 방추에 손가락을 찔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건다. 이에 그웬돌린 요정이 “죽음 대신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왕국 전체가 100년간 잠에 빠진다. 켄츠에 온 왕자의 키스가 공주도 왕국도 같이 깨울 것이다”라는 완화 주문을 외운다. 이 전설처럼 에공 왕자가 로즈문드를 찾아 켄츠 왕국을 잠에서 깨울 것인지를 쫓는 영화다. 

70세 감독 아도 아리에타의 이 작품은 마술적 분위기를 품고 있다.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해 인간의 흥분, 열정, 혼란을 보여준다. 고도의 시각화 전략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영화 ‘미녀와 야수’도 연상케 한다. 

■ 그 누구도 아닌 -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감옥에서, 학교에서, 클럽에서 격렬한 인생을 사는 네 여성의 이야기. 르네, 산드라, 카린, 키키라 불리는 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지만 비극과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묶이는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마담 보바리’, ‘데어 파이니스트’에서 독특한 마스크를 보여준 젬마 아터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레아 세이두와 함께 강렬한 연기를 펼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3일 개봉을 앞둔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에서 당당히 주연을 차지한 ‘제2의 마리옹 꼬띠아르’ 아델 하에넬까지 쟁쟁한 여배우들이 함께한다.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은 선택과 그에 따른 운명의 초상들을 솜씨 있게 엮어낸다. 때로는 권력적으로, 때로는 연대와 수평의 감정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애정 관계는 각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순환하는 관계의 고리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에피소드별로 얽힌 듯 얽히지 않은 것이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감독은 “한 사람이라 해도 여러 가지 인생을 살게 된다. 여주인공 역시 다양한 이름을 부여받고, 그에 맞춰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건 ‘그녀’이면서도 동시에 ‘그 누구도 아니’다”라고 했다. 신분위조, 경마도박, 미성년자 클럽 출입, 가출, 폭력 등 어두운 현실들을 소재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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