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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배려가 안겨주는 행복이운순 수필집 『비타민이 열리는 나무』를 읽고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작은 온실이 있다. 역설적으로 이 온실은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 살았던 새 집을 미련 없이 팔도록 유혹한 공간이기도 하다.
유독 화초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처음 이사하여 온갖 나무와 꽃들을 사 모아 발 디딜 틈이 없이 온실을 채웠다.

하지만 싱싱하고 짙푸르던 화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분명코 이런 현상엔 이유가 있을 듯하였다. 화초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자주 물을 준 게 화근이 아닐까 싶어 돌봄에 게으름을 피워봤다.

그러나 누렇게 시들어만 가는 화초들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양제를 구입하여 써보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급기야는 대궁이 메마르더니 우수수 잎을 떨구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화초마다 물 주는 횟수가 다르단다. 또한 화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은 마음에 드는 화초만 보면 먼 길을 가서라도 사왔다.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시달리며 받는 스트레스를 특히 싫어한다고 했다. 시들시들 말라죽는 게 아마도 이 탓인 듯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다’는 말뜻을 되짚어 본다. 말 못하는 식물들도 인간처럼 스트레스에 예민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사실을 반증하듯 미궁에 빠진 살인자를 화초가 붙잡아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외국의 어느 지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을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
하루는 형사가 살인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화초가 형사와 같이 동행한 남자를 보더니 미미하게나마 파르르 떨었다. 예리한 형사의 눈에 이것이 목격되었다.

범인은 그 자리에서 잡히고 말았다. 해외 토픽 감이었다. 말 못하는 식물도 선악을 구분한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주인이 무참히 살해될 때 식물이 그것을 보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 아픔으로 범인을 기억하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사람 못지않은 인지능력을 갖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같은 종의 식물을 두 화분에 심고 길렀다. A의 화분에는 물을 줄 때마다 칭찬을 해주고, B의 화분에는 그 반대로 대했다. B의 화분은 대할 때마다 욕설을 해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반응이 일어났다. 화분 A는 좋은 꽃을 피웠고, B의 화분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대로 썩어 없어졌다고 한다.

식물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떠할까. 현대인에게 발병하는 암이나 성인병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병소(病巢)라니,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눈만 뜨면 받는 스트레스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한다는 말인가? 타인에 대한 배려의 결핍은 현대사회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가슴에 온기가 식어버린 인간사회에 공포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하기사 적당한 스트레스나 상처가 어느 경우에는 삶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이 평탄대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같이 세상사에 아둔한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처세도 능하지 못하고, 낯가림도 약해 타인과 친화력도 별반 없는 나다. 또한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기회를 놓칠 때가 많다. 이러다보니 매사가 남들보다 행보가 느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것들로부터 약간씩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커진다는 뜻이다.

상처는 대부분 생면부지의 남보다 가까운 사람한테 받는다는 내용을 담은 이운순의 수필집 『비타민이 열리는 나무』에 게재된 「상처」를 읽고, 나 스스로 반성의 기회를 가진 적 있다. 이운순은 수필 「상처」에서 가깝게 지내다보면 기대치가 커지고 호감도가 상승해서 자칫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를 벗어나는 우를 범한다고 했다.

무심코 상대방에게 건넨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반면 자신이 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상처의 원인은 자신이 만든 불씨였을 것이라는 작가의 성찰에 필자도 공감한다.

스트레스나 상처를 입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에 짓눌려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해소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스스로가 타인에게 행한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보편적인 것 같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나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받은 상처나 스트레스를 과연 얼마나 헤아렸던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정신적 미숙아였나 보다. 이제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스트레스나 상처를 안겨주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수필가 이운순처럼 나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련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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