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8)] “글쓰기 막힘 현상 뚫어주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 독일 전역 대학들로 확산”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8)] “글쓰기 막힘 현상 뚫어주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 독일 전역 대학들로 확산”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6.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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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함부르크대 등 독일 대학에 확산 중인 ‘밀린 과제를 하는 긴 밤’
▲ 제5회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 참가한 마가리타 양(왼쪽)과 스베틀라나 양 <사진제공 = 아임스뷔텔 신문>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펜을 잡고 시작하세요. 지금 써질 겁니다.”

“책상에서 혼자 글을 쓸 때 느끼는 외로움을 날려 버리고 싶나요? 여러분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제공합니다.”

“숙제든 졸업논문이든 글쓰기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으세요. 다른 학생들과 올바른 글쓰기 방법을 교환하세요.”

“우리는 간단한 글쓰기 연습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장기간 글을 쓰려는 학생들에게 적합합니다.”

지난 2월 18일 오후 4시, 독일 함부르크대 교정에 있는 시립대학도서관(Staats-und Universitätsbibliothek, Von-Melle-Park 3, 20146번지). 노트북을 지참한 남녀 학생 330여명이 속속 몰려들었다. 제5회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Lange Nacht der aufgeschobenen Hausarbeiten)’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1층 로비 천장에는 ‘조언(Beratung)’을 적어놓은 팻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펜을 잡고 시작하라. 지금 써질 것이다” 등을 적은 안내문도 곳곳에 붙어있었다.

함부르크대에서 개최한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은 학술적 글쓰기 방법론을 교육하고, 학생들에게 일대일로 글쓰기 조언을 해 주는 행사다. 오후 4시부터 12시까지 학생들이 과제물이나 에세이, 논문을 작성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학생들은 30분 단위로 새로운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글을 쓰면서 막혔던 부분을 해결하기도 했다. 일부는 밀린 과제물을 완전히 마무리하여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는 게 어렵습니다. 과제나 논문을 쓰는 학생들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실마리를 잡지 못해 헤매곤 합니다. 어떤 내용으로 앞부분을 적어야 할지부터 고민하는 겁니다.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은 바로 그런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글쓰기도우미들이 상담을 해 주면서 글의 서두를 잡아주고, 진척되지 않은 과제를 완성하도록 도와줍니다.”

글쓰기 세미나와 일대일 조언은 함부르크대학의 다국어 글쓰기연구소(Schreibwerkstatt Mehrsprachigkeit), 정신과학 글쓰기연구소(Schreibwerkstätte Geisteswissenschaften), 교육학부 소속 글쓰기센터(Schreibzentrum, Fakultät für Erziehungswissenschaft), 학생조언센터의 직원들이 맡았다. 또 함부르크 지역의 대학스포츠센터와 시립대학도서관, 하펜시티대학교도 협력기관으로 나섰다. 실무 진행은 함부르크대의 다그마 크노어 교수(다국어 글쓰기센터)와 베티나 니부어 박사(중앙학생지원 심리상담소)가 맡았다.

▲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 참가한 학생들이 글을 쓰는 장면 <사진제공 =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

◆ 미루기 좋아하는 학생들 시선 끌기 위해 ‘밀린 과제…’로 표현

그러면, 행사 명칭을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으로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과제는 제때 제출해야지 미루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과제 미루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밀린’과 같은 표현을 씁니다. 사실, 마감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지런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 참석하면, 혼자서 오랜 시간 걸리는 글을, 좀 더 빠른 시간에 집중해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다그마 크노어 교수는 “단기성 행사(이벤트)를 여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면서 “글쓰기 행사 한 번으로 문장력을 키우기는 어렵지만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계기를 확실하게 마련해 줄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글쓰기 행사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글쓰기에 동기 부여를 하고, 학술 글쓰기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배움에는 항상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과 같은 행사 외에도 글쓰기 기초반과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 작성한 글을 전자기기로 옮기는, 효율적인 방법도 지도

행사장의 1층과 2층엔 강의실이 하나씩 마련돼 있다. 개인별 글쓰기 조언(일대일 첨삭지도)를 하는 공간도 별도로 있다.

“논증을 명확하게 하였나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담았나요?”
“주제의 범위는 알맞게 설정했나요?”
“인용한 문장의 출처는 제대로 밝혀놓았나요?”

글쓰기도우미들은 학생들 글을 점검하면서 날카로운 지적을 끊임없이 던졌다.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표절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했다.

1층 강의실에서는 ①단계적 글쓰기-독해하기, 발췌요약하기, 분류하기, 비문 바로잡기(16:30~17:00) ②문헌관리 프로그램으로 문학작품 목록 검색하기(17:30~18:00) ③문제의식 갖고 논점 찾아 글 구성하기(18:30~19:00) ④토론하여 쟁점으로 만들기(19:30~20:00) ⑤각주, 미주 등 인용 표기법(20:30~21:00) ⑥표절과 인용의 차이점(21:30~22:00) ⑦자료 조사 및 인용하는 방법(22:30~23:00) 순으로 진행됐다. 표절하지 않고 인용하는 방법에 관한 세미나 주제가 6개 중 3개에 해당됐다. ‘정직한 글쓰기’를 얼마나 강조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층 강의실에서는 ①각자의 학문적 글쓰기 방법론 찾기(16:30~17:30) ②글 쓰다 막혔을 때 돌파하는 방법(18:30~19:00) ③글쓰기 프로젝트 관리방법(19:30~20:30, 글쓰기 도우미, 교수 대상) ④자신만의 글쓰기 전략 최적화 방법(21:00~22:30) 순으로 이어졌다.

1층 로비에는 글을 전자기기로 작성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코너도 마련해 놓았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 Citavi(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프로그램), Latex(문서조판 프로그램)로 글을 쓰고 편집하는 방법을 SUB(시립대학도서관), RRZ(전산센터), IT SLM(Informationstechnologie, 정보기술학과)의 직원들이 도우미로 나서 지도해 줬다.

밤 9시까지는 따뜻한 음료와 음식을, 10시까지는 차가운 음료를 제공했다. 그 이후엔 음료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다. 행사 중간 중간에 간단한 체조와 요가도 지도해 주었다. 긴장된 신체와 복잡한 머릿속을 풀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스포츠센터에서 파견한 강사가 빠르고 깊게 숨을 쉬는 방법과 피로를 풀어주는 눈 요가법, 의자에 앉아서 등 체조하는 방법 등을 알려 줬다.

▲ 제5회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 글쓰기도우미로 투입된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의 유디트 양(왼쪽)과 마르얌 양

◆ 2010년에 ‘밀린 숙제…’ 첫 행사 뒤 40개 대학으로 확산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은 2010년에 프랑크푸르트 암 오더에 있는 비아드리나 유럽대학교의 글쓰기센터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다음 해에 독일 전역의 6개 대학에서 실시했다. 그 이후로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의 대학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금은 약 40개 대학에서 운영 중이다.

함부르크에서는 2012년에 함부르크대 다국어글쓰기센터와 대학스포츠센터, AStA(학생위원회; Allgemeiner Studierendenausschuss der Universität Hamburg)가 협력해 이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2013년엔 시립대학도서관이 협력 파트너가 돼 장소 등을 제공했다. 대입준비과정센터(Universitätskolleg)에서는 학술적 글쓰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글쓰기 세미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2014년에는 TP22(법률적 글쓰기 입문) 프로그램도 곁들여 진행했다. 해가 갈수록 여러 기관이 협력해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는 데 협력한 것이다.

2015년에는 함부르크대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헬무트슈미트대학교, 응용과학대학교 학생들도 참가하였으며 함부르크공과대학의 관계자들도 이 행사를 참관했다. 함부르크공과대학은 함부르크대를 참고해 ‘학술적 글쓰기의 작은 밤’이란 행사를 2014년부터 자체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 “여러 명이 노하우 공유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마음에 들어”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 참석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처음으로 참석한 크리스틴 양은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주제로 보고서를 썼다. 교직을 전공하는 그의 목표는 이번 행사에서 최대한 많이 글을 쓰는 것이다.

“혼자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막히는 부분에서 글쓰기 도우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에서 제공한 프로그램도 매우 만족스럽네요. 앞으로 글을 쓸 때 요긴하게 활용하려고 합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는 마가리타 양과 스베틀라나 양은 3개월 뒤로 다가온 과제물 제출 마감에 대비하여 이 행사장을 찾았다. 1층에서 열린 ‘단계적 글쓰기-독해하기, 발췌요약하기,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비문 바로잡기’ 프로그램에 먼저 참석한 뒤 글을 쓰고 첨삭 지도를 받았다.

마가리타 양은 “제 과제에 담을 내용은 이미 완성했고, 최종 마무리를 하는 중”이라면서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글쓰기가 어렵지만 외국 출신 학생들을 배려한 언어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유익하다”고 말했다.

학부 졸업논문을 쓰고 있는 마리안네 양은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글쓰기 기초 강좌엔 흥미가 없다. 그 대신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학생들과 함께 논문 작성 노하우를 공유하려고 애를 썼다. 마리안네 양은 “목표가 비슷한 학생들끼리 글쓰기센터를 만들고 싶다”면서 “날마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함께 글을 쓰는 건 정말 멋진 생각”이라고 말했다.

▲ 글쓰기 세미나 도중 쉬는 시간에 체조로 몸을 푸는 참석자들 <사진제공 = 아임스뷔텔 신문>

◆ “발췌한 자료들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일 어려워”

함부르크대에서 경영행정학을 전공하는 안드레 군은 ‘바닥으로의 경쟁(Abwärtsspirale, Race to the bottom; 지나치게 개발만 하고 복지와 노동환경 개선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자연환경마저 파괴 경쟁)’을 주제로 글을 쓰러 왔다. 그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긴 밤’이 글쓰기 막힘 현상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의 글쓰기도우미인 유디트 양과 마르얌 양은 도우미 교육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이번 행사에 투입됐다. 참가자가 급증하자 실전에 바로 투입해 업무를 습득하게 한 것이다.

“글 내용 못지않게 글 구조를 논리적으로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전공 영역에서 가져온 자료들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걸 어려워한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은 독일어로 학술적 글을 쓰는 데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독일 전역의 대학에 확산 중인 ‘밀린 과제를 하는 긴 밤’은 독일 학생들에게 글쓰기 두려움을 덜어주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독일 교육 관계자들은 “독일이 세계를 대표하는 교육 강국으로 올라선 비결은 독서와 토론과 논술(글쓰기)을 집중 교육하면서 창의력과 의사소통능력을 키워준 데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움말=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 다그마 크노어 교수,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 누리집, 아임스뷔텔 신문(Eimsbütteler Nachrichten), 아벤트블라트 신문(Hamburger Abendbl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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