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을’의 반란을 지지하는 사회 비판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인터뷰] ‘을’의 반란을 지지하는 사회 비판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 신슬비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12.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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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신슬비 객원문화기자] 치매에 걸린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집을 쟁취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한 가족이 있다. 돈이 없어 월세를 내지 못하게 된 그들은 마침 집에 찾아온 주인집 할머니가 치매로 정신을 놓자, 그녀를 붙잡아두고 외부와의 관게를 끊은 채 살아간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강하게 드러낸 연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의 배우들을 만나봤다.

▲ 연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출연 배우들 [사진제공=씨즈온]

Q. 먼저, 각자 맡은 배역에 대해 어떤 인물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한다.

A. 신현종 (‘낚싯대’ 역): 한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고, 경제 능력이 너무 없어서 마지막 수단으로 한강에서 장어나 물고기를 잡아서 사는 가슴 아픈 사람이다. 천성적으로는 착한 성격이나, 어쩌다보니 지금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슬프고 우울하고 찌질한 인생의 인물이다.
김민태 (‘군복’ 역): 군복은 낚싯대의 아들이다. 막 군대에 다녀와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군대와 여성에 대한 편협한 시각으로 치우쳐져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송영주 (‘비만’ 역): 낚싯대의 딸 비만은 사회와 단절된, 제일 갇혀 있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으로는 신문과 책뿐이다. 그래서 말투도 ‘~다’ 같은 문어체이다. 씻거나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착한 아버지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딸이기도 하다.
김관장 (‘불쬐는 할머니’ 역): 치매에 걸린 주인집 할머니이다.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왔다. 비록 가족에게는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할머니도 어떻게 보면 사회의 피해자다.

Q. 이 연극은 아주 유난한 한 가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은 유독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김민태 (‘군복’ 역): 집이라는 공간은 이 가족에게만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공간이다. 이 가족은 살아가기 위해, 그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송영주 (‘비만’ 역): 이전에 집이 없었을 때, 이 가족은 파라솔 밑에서 살면서 굉장히 고생을 했다. 그래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소중함이 더 크기 때문에 이 공간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김관장 (‘불쬐는 할머니’ 역): 집은 현대사회의 기본이 되는 공간이다. 가족이 존재하려면 집이 필요하다. 이들 가족의 모습은 얼핏 보았을 때 그로테스크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됐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슬픈 이야기다. 이들이 집을 갖기 위해 울부짖는 모습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 연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출연 배우들 [사진제공=씨즈온]

Q. 2년 동안이나 집주인 할머니와 함께 살며 비위를 맞춰주는 모습이 마치 언제나 ‘갑’에게 눌려 사는 현대의 ‘을’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을 곤란하게 하는 집주인 할머니의 행동이 치매 때문이 아니라 마치 ‘고의’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김관장 (‘불쬐는 할머니’ 역) : 남자는 폭력성의 상징이다. 그래서 내 역할 (‘불쬐는 할머니’ 역)이 남자로 캐스팅됐다. 의도치 않게 가족에게 가해지는 폭력성을 빗대어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만약 할머니의 행동이 고의로 느껴졌다면, 관객들도 을의 입장에서 연극을 바라본 것이다.
김민태 (‘군복’ 역) : 우리가 연극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결국에는 그런 것이다. 극 중에서 할머니가 이 가족에게 의도치 않게 행하는 폭력들이, 실은 이 사회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다. 일반 서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집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코 이 사람들이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김관장 (‘불쬐는 할머니’ 역): 그렇다. 어렸을 때는 순수했던 할머니가 집세를 받아내기 위해 독해진 것도 사회가 이런 관계를 만든 것이다. 할머니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 있다. 결국 우리 연극은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Q. 극 중에서 계속 언급되고, 심지어는 제목으로도 사용됐지만, 결국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엄마’는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그리고 극 내부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A. 김민태 (‘군복’ 역):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는 극 중 내 엄마다. 그녀는 이러한 불행한 가정을 만든 씨앗이자 근원이다. 군복에게는 애증의 대상이긴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렇게 커다란 의미를 갖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팍팍한 현실에서는 그러한 어머니의 존재보다는 가족구성원과 제대로 ‘살아’보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
김관장 (‘불쬐는 할머니’ 역): 종로 등에서 성매매를 하기 위해 박카스를 가지고 다니는 여자들을 어머니로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 분들이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 깊다. 이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부르는 동요 <꽃밭에서>는 이들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궁금하다.

A. 김민태 (‘군복’ 역): 동요 <꽃밭에서>는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 불러 봤을 법한 동요다. 그게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노래 가사 중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라는 부분이 있다. 이게 우리 연극에서 나타나는 ‘우리 집’이라는 의미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선택이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노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를 밀어내고 끝끝내 집을 쟁취한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연극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똑바로 집어서 보여준다. 연극은 삶을 영위하는 기본적 공간인 집을 가지고 싶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우리네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연극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는 삶의 공간을 쟁취하기 위한 이 가족의 악다구니를 안쓰러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이들 '을'들을 지지한다. 연극은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통쾌하게 사회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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