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는 종자(種子)를 묻는게
제사보다는 종자(種子)를 묻는게
  • 이재인
  • 승인 2005.11.1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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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경기대교수 · 소설가)

 새해의 출판계 뉴스가 있었다. 일부 출판사 대표들이 모여 강원도 산중에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산을 찾은 것은 2005년도 출판계의 활황(活況)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제사보다는 산을 찾은 것은 좋은 일이다.

 새해를 맞이함에 출판인들의 새로운 각오와 다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오늘의 경제의 부흥과 무화의 발전에는 출판인들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독서시장이 무너지고 책을 외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 감은 출판인들의 책임이 또한 없지 않다고 본다.

 일부 출판인들은 독서시장, 그리고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머리만 굴리면 대박이 터지는 환상섬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독서는 예부터 소리 없는 부흥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돼지머리에 북어대가리를 진열하고 술잔을 돌린다고 하여 독서부흥운동이나 출판 활황에 불이 붙는다면 1년 365일을 지속적으로 제사를 지내야 할 일이다.

 태백산 아니라 백두산 소백산 지리산 한라산에서도 제물을 갖추고 제주를 선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제사라는 말에 그만 식상하고 말았다. 제사라는 것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이다. 그래도 정신적 중심을 계도하는 선진출판인들이 제사로 하여금 돈을 벌겠다는 의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思考)이다.

 차라리 「기도」라고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바라는 바를, 기대하는 바를 염원하고 갈 길을 다짐하는 기도라면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출판인들이 무속인 이거나 민속놀이의 출연자라면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지탱해 준다는 역할이라도 됨직하다. 각종 업계에서 정신적 핵이며 리더격인 출판인들이 제사 운운은 재고해봄직한 일이다.

 얼마 전이었다. 필자는 뉴스가 될만한 제재를 갖고 신문사에 제보했다. 전화를 받은 담당 기자는 내가 소지하고 있는 것들을 메일로 보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내가 가기고 있는 제보 내용을 메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실물을 사진으로 찍어야 했고, 제보했던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고 지방문화재위원을 기자가 직접 만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기자는 뛰어야 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라고 주장하겠지마는 기자는 뛰는 근성이 있어야 특종도 하고 남보다 뉴스도 먼저 전달하게 된다. 출판인들도 기자처럼 현장에 뛰어드는 습성이 필요하다. 책이 안 팔린다고 비명을 지르기 전에 먼저 출판이 활황 되도록 종자(種子)를 묻어야 된다. 그것이 흙에 묻어질 때 이슬과 비를 만나고 거름을 주고 묻은 자의 손길이 갈 때 수확이 가능하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이야기이다. 수십 년 전이지만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충청도 산골 영동산골에서 중학교 국어 선생을 했었다. 도서비라고는 쥐꼬리만 했고,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은 거의 없는 지경. 도서비는 책정 돼 있지만 신문 및 월간잡지, 그리고 무슨 신문사의 지국의 권장도서까지 줄줄이 학생이 읽을 책은 거의 없는 지경이었다.

 생각다 못해 나는 문인 및 몇몇 알만한 출판인들에게 책을 좀 기증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는 종자를 땅에 묻는 일이 아니냐고……. 그런데 그때 범우사 윤형두 사장께서 꽤 읽을 만한 책을 보내주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이 시골 학교에서는 독서운동이 일어났고 드디어 세상이 그렇게 좋은 책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게 되었다. 이른바 산골에 독서운동의 점화가 되었다. 여가선용은 물론 성적들도 올랐다. 이들이 모이면 언제나 독서운동 탓에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독서는 독서저변 운동으로 씨앗을 묻어야 한다. 그것이 싹을 틔우고 국민의 희망이 된다. 수고 없는 수확은 세상에 없다. 책을 읽히고 책으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독서운동이 필요하다. 좀 낡고 뒤떨어진 듯싶지만 독서운동이나 새마을 문고 운동은 장기적으로 독서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다. 개척자보다 훌륭한 일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춘원 이광수를 일컫고 육당 최남선을 근대문학의 기수로 일컬음은 그들이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출판계도 마찬가지이다. 일조각, 일지사, 을유문화사, 현암사, 신구문화사, 민음사, 범우사를 가리키는 것은 그들이 출판계의 선구자였기에 우리는 흠모하고 기기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제사보다는 일신운동으로 종자를 묻는 민간차원의 독서의 씨앗을 묻는게 현실적으로 옳은 일이 아닌가? 
 
 
독서신문 1376호 [200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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