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있는 미인
앉아있는 미인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2.07.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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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젊은 날엔 솔직히 겉모습에 혹하여 상대방을 판단했다. 요즘은 남녀 막론하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보다 성정이 순수하고 선한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인간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오죽하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회자될까. 이 말은 즉 천품(天稟)은 쉽사리 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평소 성정이 냉랭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따뜻한 가슴을 지닐 수 없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삶이 팍팍해져서인지 이즈막 이타심이 남달랐던 어느 여인이 몹시 그립다. 그녀를 떠올리노라니 수 년 전 일이 문득 생각난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쏟아지는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동네 골목길을 지나치다가 뜨개질을 가르친다는 자그마한 간판에 눈길이 멎었다. 그 간판을 보자 갑자기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그 앞에 당도해보니 건물 1층에 자리한 가게 안엔 6명의 여인들이 앉아서 저마다 뜨개질에 여념이 없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한 여인은 굵은 실로 가방을 짜고 있다. 또 다른 여인은 하얀 가는 실로 테이블보를 뜨는데 그 손놀림이 매우 민첩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문득 학창 시절 코바늘로 책상보를 짜서 담임 선생님께 선물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당시 선생님은 필자가 뜬 책상보를 받아들고는, “네가 이리 솜씨가 좋은 줄 몰랐구나”라며 입가 가득 자애로운 웃음을 머금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뜨개질 방법조차 어인 일로 까맣게 잊힌 지 오래다.

잠시 추억에 젖어 가게 안을 둘러 볼 때다. 뜨개질을 가르치는 선생님인 듯한 초로의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엉거주춤 의자에 앉자 여인은, “죄송합니다. 제가 장애를 지녀서 일어서질 못해 제대로 손님맞이를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예의 바른 말에 얼핏 바라보니 하체가 매우 부실해 보였다. 일명 앉은뱅이였다. 그러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나타난 표정만은 무척 밝고 눈빛이 선해 보이는 첫인상을 지녔다. 그날 필자는 여인의 이 인상에 반하여 선뜻 그날 3개월 치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뜨개질법을 배우게 됐다.

한 달 가량 그곳에서 뜨개질을 배울 때 일이다. 뜨개질 선생님은 털모자를 뜨며 고아원 어린이들에게 연말 선물로 줄 거란다. 또한 그녀는 미처 아침 식사를 못 챙긴 수강생들을 위하여 휠체어를 타고 손수 빈대떡을 부쳐주기도 하고 고구마를 쪄서 대접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쌀 및 라면 등을 불우 이웃 돕기로 내놓기도 했다. 자신도 힘겹고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타인의 고충을 외면하지 않는 정 많은 여인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장애인도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뜨개질을 3개월째 배우던 어느 날이었다. 뜨개질 교실 앞엔 ‘가게 임대’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붙어있었다. 영문을 몰라 집주인에게 문의해보니 그녀가 남편의 잦은 폭행에 못 견뎌 야반도주를 했단다. 그녀 남편은 매일이다시피 술에 취해 들어와 아내를 폭행하고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했단다.

평소 어느 땐 선글라스를 쓰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날에도 목에 스카프를 두르던 그녀였다. 아마도 남편의 폭행 상처를 가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가정폭력은 개인 가정사에 그칠 일이 아니다. 가정폭력은 한 가정의 파멸은 물론, 사회적 안전판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수십 년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그녀의 지난 삶이 참으로 안쓰럽다.

요즘도 동네 야산 길에 피어난 산작약만 보면 그 꽃 위에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하얀색의 산작약은 홑겹의 꽃이다. 얼핏 보면 참으로 수수하나 들여다볼수록 화사하고 정갈하다. 흡사 귀티 지닌 여인을 보는 듯하다.

오죽하면 조용헌은 그의 글 「작약을 보면서」에서 작약은 ‘앉아 있는 미인’이라고 칭송했을까. 마음자락이 따뜻하고 예의 바르며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그녀야말로 작약과 같은 ‘앉아있는 미인’이 아니던가. 이로 보아 자화자찬 같겠지만 필자는 이제야 비로소 내면의 미인을 알아보는 혜안을 갖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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