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탈(脫)공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공무원은 한때 ‘철밥통’으로 불리며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망 받았지만, 현재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무원들이 조기 퇴직을 선택하거나 고민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현직 공무원 약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직사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공무원들이 공무원 중 이직 의사가 가장 높은 집단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제도적 변화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공직사회와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주니어-시니어 공무원 공직사회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1980~2000년대 출생한 공무원들은 직장생활에서 추구하는 키워드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1순위(67.1%)로 꼽았고, 그 외에 ‘일한 만큼의 보상’(44.6%)과 ‘성취감’(39.4%)을 가장 중요시했다. 이들 중 89.2%가 회사에 ‘꼰대’ 상사가 있다고 답했고, 가장 싫은 ‘꼰대’의 유형은 본업과 무관한 개인적 심부름을 시키는 ‘갑질 오너’ 유형이었다. 공직사회에 뿌리 깊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와 불합리한 관행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공무원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공직사회의 문제점은 비단 현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공무원들과 흡사한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 관료들의 생활을 다룬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공직생활에 지금과 같은 애로사항이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 준비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책에 따르면 최근 5급 공무원 합격자들은 평균 나이 26.8세에 평균 38.5개월의 수험 생활을 보내는데, 조선 양반들은 이보다 길고 힘든 수험 생활을 했다. 과거 시험 합격자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이었고, 50대가 넘어 합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76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합격한 사람이 이듬해 그만 숨을 거두고 마는 일도 생겼다. 수험 기간이 길다 보니 조선의 수험생들은 과거 준비에 전 재산을 탕진할 각오를 해야 했고, 가족들은 뒷바라지를 하느라 생활고를 겪는 일이 다반사였다.
힘들게 시험에 통과하면 신고식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관료들에게 향응을 베풀며 소속을 허락받는 ‘허참례’와 ‘면신례’를 거쳐야 했는데, 선배들은 신참을 귀신 취급하며 잔치 초대를 거절하거나 모욕을 줬다. 신참 관료들은 50일 동안 얼굴에 분칠을 한 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아직도 공직사회에 일부 남아있는 ‘커피 심부름’, ‘신입 떡 돌리기’와 같은 갑질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흔히 조선시대 관료를 ‘청백리’ 아니면 ‘탐관오리’로 생각하곤 한다. 청백리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 청빈한 생활을 하는 관료를 뜻하는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관료라도 생계를 겨우 꾸릴 정도의 봉급을 받았던 조선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이 과연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발령지로 가는 길부터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나라에서 턱없이 부족한 돈만을 지원해 발령지의 백성들에게 수탈한 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백성을 수탈한 일은 잘못이지만, 중앙정부의 부족한 지원이 탐관오리를 만든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도 지켜지지 않았다. 관료들은 평상시에는 묘시(오전 5~7시)에, 겨울에는 진시(오전 7~9시)에 출근했으며 조회가 있는 날에는 이보다도 일찍 출근해야 했다. 가혹한 출근 시간 탓에 근무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대충 때우고, 심지어는 결근해서 회초리를 맞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양반이라면 누구나 공무원을 목표로 했던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공직사회의 여러 문제가 개인의 고통을 초래했을 뿐, 국가적인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근무 환경 개선이 없다면 공무원 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은 근무기간에 따라 정해지는 현행 공무원 보수체계를 성과에 따른 보수체계로 개편함으로써 “호봉이 낮은 MZ세대 공무원들에게 동기부여를 강화하고, 보상의 공정성 인식을 제고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지난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공직사회 내의 ‘갑질’ 문화를 보다 실질적으로 예방하고 조치할 수 있는 조례 마련도 시급하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