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법대 교수 한인섭은 어떻게 현대사 기록자가 되었나
[책 읽는 대한민국] 법대 교수 한인섭은 어떻게 현대사 기록자가 되었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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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 박용채 편집주간과 대담

-어릴 적 <독서신문> 흡수하며 지적 토대 쌓아
-엄혹한 시기에 법대 진학, 현대 법조 역사 기록 
-홍성우·함세웅·김정남 대담집 잇달아 출간해 
-법률가는 인간사 아픔에 대한 공감과 연민 가져야  
-민주주의는 매사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62)에게 책은 “정신의 원형질”과 같은 존재다. 1959년 경상남도 마산과 진주 사이의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1968) 때 전학 간 부산에서 “촌놈” 취급받던 시절 책은 일종의 탈출구였다. 아이들의 장난질을 피할 요량으로 쉬는 시간마다 도서실로 스며들었다. 장서 중 손이 간 곳은 800~900번(도서 십진분류법)에 해당하는 문학, 역사·지리·전기·기행서 분야. 보이는 대로 책을 집어 들어 무작정 읽었다. 독서력이 쌓이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곧잘 나왔다. 선생님은 숙제도 해오지 않는 아이의 성적이 그럭저럭 나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러다 <독서신문>을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당시 회사에 다니던 누나가 갖다주는 <독서신문>의 열혈 독자가 되어 “다방면의 고급 교양 지식을 흠뻑 흡수했다.” 고교에 접어들고 누나가 결혼해 서울로 떠나면서 <독서신문>과의 인연은 끝났다. 하지만 그 기간 <독서신문>은 동서양 문학 예술 역사 교양 지식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주는 영양제였다. 지식체계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확장되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고1 때 참가한 장학퀴즈. 문학, 사회, 상식 부문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보였다. 그는 지금도 초창기 <독서신문> 기사들을 줄줄 꿴다.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빌헬름 텔』(프리드리히 폰 실러) 등을 다룬 ‘세계 명작의 고향’ 기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서구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연재한 ‘명화에의 초대’, 브람스 등 세계적 음악가의 생애와 사랑을 보도한 ‘음악의 샘’ 등은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줬다.

이런 경험은 현대사 기록자 역할에 큰 자산이 됐다. 1977년 서울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응시했다. 하지만 유신정권을 비판한 시위전력 때문에 3차 면접에서 탈락(2008년 27년 만에 합격 처리됨)하면서 그는 법조 역사 연구에 매진했다. 역사 연구의 초점은 인물에 맞춰졌다. 역사적 순간에 소신 있게 행동했던 인물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렇게 해서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한 허헌, 김병로, 이인의 항일 재판투쟁기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경인문화사/2012)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를 집중조명한 『가인 김병로』(박영사/2017)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1988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만들고 대표를 역임한 홍성우 변호사의 시대 증언집인 『인권변론 한 시대』(경인문화사/2011)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와의 대담집인 『이 땅에 정의를』(창비/2018) ▲민주화운동 곳곳에서 역할을 했던 김정남 선생을 통해 민주화 4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창비/2020) 등이 세상에 나왔다. 한권 한권이 700쪽이 넘는 대작들이다.

이런 그를 <독서신문> 박용채 편집주간과 서믿음 기자가 만나 얘기를 나눴다. 대담은 지난 3월 31일 서울 양재동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건물 12층에 있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실에서 이뤄졌다.

12층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실에서 내려다 본 양재천변 풍경. 

-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시민들에게 다소 생경하다.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인가. 

“살인죄, 성폭력 등의 각종 범죄 실태를 조사하고, 범죄에 대한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형사 정책이나 사회정책 등을 모색한다. 다만 이렇게만 하면 너무 단조롭게 된다. 이걸 문학과 연결하면 인간적 감수성과 제도의 폐해에 대한 내용이 다채로워진다. 범죄와 형벌을 다룬 문학 작품이 너무 많다. 『죄와 벌』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깊게 빠졌던 『레미제라블』이 그런 이야기와 연결된다. 오히려 잔혹한 사회관습과 국가 제도에 짓눌리고 희생되는 인간의 모습이 쭉 펼쳐진다. 나는 범죄와 관련한 인간의 여러 모습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형벌이란 좋은 수단인가? 그렇지 않다. 최악을 면할 수 있긴 하지만 아차 하면 형벌 자체가 최악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런 류의 경계심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 범죄를 문학과 연계해 생각한다니 생소하다. 원장의 취임사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언급하며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지고지순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섬세한 노력, 그 인문적 작업을 우리 연구자들은 과학과 법학의 이름으로 해낼 사명이 있다”고도 말했다. 

“예술의 정화(精華)라고 하는 결정적 에센스 작품들은 모두 인간의 고난을 다룬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성찰이 넓어진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40세에 유배됐고, 결과적으로 18년 만에 끝이 났지만, 당시에는 끝을 알 수 없는 형벌이었다. 추사 김정희도 마찬가지다. 다산의 형인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로 종신 유배를 당했다. 추사는 제주로부터 함경도까지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 생활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고, 그 결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이 한치의 모방 없이 자신의 것만으로 만들어 낸 ‘세한도’(국보 180호)이다. 빅토르 위고는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황제가 되자 프랑스가 보이는 영국의 섬으로 자진 망명을 가서 『레미제라블』을 썼다. 힘든 시기를 보내지 않았으면 이런 대작은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법률가들은 제도와 관습, 종교, 법률 등이 사람을 옥죄고 짓누르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이 죄인이 되고 수감과 이후의 모든 인간사를 가슴 아프게 느껴야 한다. 인간사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함께 느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한명 한명의 고유하고 귀중한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의 존재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때 그나마 살아갈 만한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인섭 원장(왼쪽)과 박용채 편집주간(오른쪽 위), 서믿음 기자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 그간 펴낸 책이 적지 않고 모두 두텁다.  

“유신 체제 때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였는데, 1979년 사망 당시 64세였다. 내 나이 마흔이었으면 박 대통령이 8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독재의 끝은 기약도 없으니, 반평생을 독재 치하에서 주눅 들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법대는 운동권의 주류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법대를 밥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밥대’라고 불렀다. 철학이나 인문학은 굶어 죽어도 뭔가 고귀하고 품위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은데, 법대는 뭔가 자리나 수입에 연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그래서 일종의 자기 정당화라 할까. 우리의 악법과 불법을 온존시켜오는데 법조인의 역할이 컸으니,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법조 집단이 자행한 나쁜 짓을 조사한 흑서를 춘추필법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흑서 류의 비판은 자극은 주지만 그 비판을 통해 감동을 주는 일은 없더라.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만 갖고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시대를 암흑시대라 하는데, 암흑을 들여다보면 모조리 캄캄한 게 아니다. 캄캄한 데서 오히려 반딧불이 빛난다. 해도 달도 없으면 별이 뚜렷해진다. 그래서 암흑만 탓하지 말고 반대로 암흑 속에서 빛의 흔적을 찾아 모으자고 했다. 그 빛은 정의, 양심, 인권이다. 어려운 시대에 정의, 양심, 인권을 위해 노력한 사례를 모으다 보니 그 별이 이어져 별자리가 되고, 다시 별자리가 이어져 은하수가 되는 느낌이다. 지난 15년 이상 해온 작업이 그러했던 것이다.”

- 김병로 선생, 허헌 변호사에 대한 법조인 행적기를 출간했다. 출간 배경이 궁금하다. 

“1920~30년대 식민지 법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독립을 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퍼즐 조각 모으듯 수집해 700쪽 분량으로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를 썼다. 『가인 김병로』는 우리 사법사와 변론사에 가장 뚜렷했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 작업은 역사적 자료를 모으고 그를 통해 정신적 대화를 해가며 썼다. 가능한 당시에 생산된 원자료를 통해 진행했다. 원자료는 2차 자료와 달리 곰곰이 살펴보면 말을 걸어온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현대사의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두툼한 책으로 냈다. 홍성우 변호사, 함세웅 신부, 김정남 선생의 인터뷰는 현대사 인물전 같기도 하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변호사, 성직자, 운동가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 책들이다. 통상 인터뷰를 하면 6개월을 작정한다.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을 담은 『인권변론 한 시대』는 홍 변호사를 서울대에 모셔서, 매주 금요일 오후를 꼬박 사용했다. 그 책을 보고 이후 함세웅 신부가 인터뷰를 허락해 용산의 신학교에서 매주 만남을 가졌다. 현대사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과 인물들의 헌신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할 때 한강에서의 쳐다보는 석양과 함께 내면이 찬란해진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이 땅에 정의를』이다. 민주화에 헌신한 분들 중에서 인터뷰 가치가 가장 높은 분이 김정남 선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출판사 창비에서 김정남 선생의 장기 인터뷰를 제안해왔다. 당시 연구원장까지 맡아 시간이 없었지만, 김정남 선생님이 수락한 이상 이를 고사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인터뷰를 했다. 이전과는 달리 김정남 선생 인터뷰 촬영과 녹취 풀기 과정은 창비에서 담당했다. 김정남 선생은 활동 뿐 아니라 글쓰기에서 빼어난 분이고, 민주화 운동에서 쓰인 성명서 중 그의 손길을 거쳐 간 게 적지 않다. 김정남 선생은 독재 치하에서 유포하기 어려운 운동사의 스토리를 일본으로 전파해 국제적 연대를 조직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김지하의 구명운동에 얽힌 숨은 사연들을 낱낱이 들을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결정적 순간에는 늘 그가 있었기에 책 제목을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로 했다.”

- 이쯤 되면 현대사 기록자라고 해야 하겠다. 뭔가 본인을 잡아끄는 게 있었나.

“어두운 시대를 밝힌 반딧불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법률 교육자의 시각에서 알아보다 보니 하나의 별자리 같은 게 나타났다. 그게 인권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그다음 별자리를 더 근원적으로 파고들다 보니 식민지의 항일법률가들의 존재가 부각되어 왔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고, 궁금증이 궁금증을 낳았다. 과거 <독서신문>을 읽을 때 얻는 지식과 교양도 있지만, 하나의 지식은 또 다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궁금증이 열 배씩 늘어나더라.”

- 인터뷰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인터뷰가 있나. 

“사전에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보지만 사전 질문지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만나서 들으면서 곧바로 새로운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대화의 순간 순간이 의미있다. 함세웅 신부님께서 나중에 말하더라. 사전에 질문지도 없고, 그런데 대화와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게 유니크한 순간들이다. 대화의 스파크가 튄다. 궁금해서 참을 수 없어 질문이 나간다. 4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보면, 시작하는 때는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길을 같이 답파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다만 인제 그만하려 한다.(웃음)” 

- 가령 고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책은 어떤가.  

“이미 가톨릭교회 공식 역사로 누군가가 정리를 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0년대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레디컬한 추기경이었다. 과거 바오로 6세 교황이 늙고 고리타분한 추기경들 가지고 안 되니까 젊은 추기경을 뽑아낼 때 김수환 추기경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추기경 군으로 뽑혔다. 그만큼 김수환 추기경은 학식에서나 문제의식에서 선각자였다. 정권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지만 196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더없이 훌륭한 역할을 감당했다. 홍성우 변호사, 함세웅 신부, 김정남 선생은 각자 맡은 역할이 달랐지만,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인간은 모두 연약한 존재이지만, 연대함으로 인해 힘든 고비를 이겨내고 어려운 이웃들의 든든한 동아줄이 됐다. 이분들이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특징은 주어가 ‘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분들은 자기가 무언가를 했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다른 분들이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말할 때 ‘그때 선생님은 뭐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그제야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나’를 주어로 내세우는 일반적인 정치가들과 다른 모습이다.”

- 지금껏 출간한 책들이 현시대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뭔가 교훈을 주려고 하면 자칫 젊은 사람들에겐 꼰대질로 느낄 수 있다. 현세대는 현재의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가 ‘과거 6.25 때 뭐 했다’ 그러면 듣기 싫지 않나. 민주화 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꼰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웃음) 그래서 직접적인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제 책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고 재미를 찾으면 된다. 현재를 살 때 그분들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만일 이 분이라면 어떻게 돌파했을까, 그걸 떠올렸으면 좋겠다. 인간은 고난 앞에 좌절한다. 희망을 잃으면 현실에 확 끌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이는 예종적인 삶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해 인간의 타락과 변절을 보면서 사람들은 질타하고 개탄한다. 하지만 어려운 시대라고 저절로 타락하지 않는다. 자신을 인도하는 마음의 등불이 꺼져 낙담하고 낙망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타협한다. 그렇게 되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내면 속의 희망의 씨앗, 희망의 등불을 켜고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책을 많이 읽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책은 어떤가. 

“따라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윤식 선생(2018년 작고. 전 서울대 교수)이 참 존경스럽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늘 신간을, 젊은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어냈는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어 자책하고 있다. 가끔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내 대학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책을 사기가 어려웠다. 대학도서관을 일상으로 활용했는데, 신간이 들어오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신간은 종로에 가서 읽었다. 종각역 쪽의 종로서적에서부터 광화문 쪽으로 여러 서점을 순례하면서 읽었다. 한 서점에서 너무 오래 읽으면 눈치가 보이니까 1시간 정도 읽고 나와 근처 다른 서점에 가서 마저 읽었다. 책을 못 사는 대신 서점에 대한 나름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꼭 서서 읽었다. 보통 서서 읽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소설에 빨려 들어가면 점심, 저녁도 거르기 일쑤였다. 그때의 독서 순례, 참으로 그리운 추억이다.”

-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운동 과정을 보면 피아만 있지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선거는 캠페인이다. 캠페인은 종합 전투다.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 권력의지, 가치 선호, 각종 연고, 집단 패거리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모여 어느 한순간 대회전과 소전투를 치르는 거대한 정치적 의례 같다.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만큼 현 상황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소설이고, 이를 가장 잘 표현해낸 사람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다. 『맥베스』를 보면 맥베스라는 괜찮은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니 마녀들이 그에게 당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한다. 내가 왕이 된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나. 왕을 죽이면 기호지세(騎虎之勢: 범에 등에 탄 것처럼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형세)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질주를 멈추기 어렵다. ‘당신이 왕이 될 것이다’는 마녀의 술수, 인간의 권력의지는 정말이지 순식간에 인간을 변질시킨다. 오늘날에도 ‘당신이 왕이 될 것이다’라는 마녀의 속삭임은 도처에 있다. 큰 왕도 있고, 작은 왕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 시민 한명 한명이 쉽게 속지 않고, 주의심과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나 예술은 그런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보지만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다. 

“권력자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매사에 합리적 의심을 가져야 한다. 민주시민의 기본 덕목은 ‘이다’를 ‘일까’로 바꾸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모든 주장에 대하여 직접 반박을 하면 부담이 크다. 그러니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나요’ ‘반증이 있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을 가지면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속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민(民)이 주인이다. 민은 집단 패거리가 아니라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in-dividual’(각각의) 고유한 존재 인격이다. 그렇게 온 우주에 유아독존하는 인격들이 수평적으로 교류하고 존재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에만 독립이 필요한 게 아니고, 개인도 혼자(獨) 서는(立)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 임기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나. 그동안의 성과는.

“오는 6월 임기가 끝나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돌아갈 예정이다. 성과는 가시적 성과가 없는 게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연구원의 중심은 원장이 아니라 연구자여야 한다. 보통 연구 결과가 나오면 원장 명의로 발간사를 쓴다. 대개 ‘연구원 아무개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원장이 집필에 관여한 게 없다. 연구는 연구원들이 뼈 빠지게 하는데 원장 이름으로 나가는 건 맞지 않다. 그래서 발간사를 폐지하고 연구책임자가 스스로 머리말을 적게 했다. 대외적으로는 원장 역할을 하지만 연구에 관해서는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지 리드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 올 때 혹 원장에게 돌아갈 인정과 공로가 생긴다면 그건 연구원들과 직원들의 덕분이니,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나눠 갖도록 해야겠다는 게 마음속 다짐이다.”

-자신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책 읽고, 글 쓰고, 생기있는 대화를 추구하고, 가끔 혼자 산책하면서 나만의 길을 찾아내는 그런 모습을 늘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한다. 이런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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