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깨달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보통의 깨달음』
[책 속 명문장] 깨달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보통의 깨달음』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3.08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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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사실 이 책을 비롯한 내 연구들의 목적 중 하나가 깨어남 상태의 특성들을 명확히 규명해 가짜 깨달음과 진짜 깨달음을 구분하는 지표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자칭 구루라고 하는 자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나약한 신봉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문제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깨어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런 망상에 빠진 사람 혹은 사기꾼 지도자를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21쪽>

이 책의 주제인 ‘그 상태’를 설명하는 데 어떤 용어를 써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해 보았다. 처음에는 ‘깨달음(enlightenment)’이라는 말을 고려해 보았지만, 나는 이 말이 늘 조금 불편했다. 원래 불교 용어 보리(bodhi)에서 나온 말인데, 그 번역이 부정확하다는 게 그 한 이유다. 19세기 불교 경전 번역가들이 보리를 깨달음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보리는 팔리어 동사 부드흐(budh)에서 나온 말로 사실은 ‘깨어난다(to awaken)’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리를 직역하면 ‘깨어남(awakening)’에 더 가깝다. 게다가 사람들은 깨달음을 모든 문제와 잘못이 사라져 축복만 넘치는 편안한 상태로 보고, 따라서 완벽하게 긍정적인 용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내가 인터뷰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깨달음 후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을 겪었음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28~29쪽>

깨어남은 기본적으로 ‘경험’하는 것인데, 그 상태의 개념적인 이해가 중요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개념적인 이해가 깨어남에 장애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개념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게 하므로 결국 우리가 초월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흔히 지성, 관념, 믿음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이 그렇긴 하지만 깨어남에 대한 아주 기본에 해당하는 개념들은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지도는 길을 갈 때 방위를 찾고,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지도는 순간의 세상을 경험하지 않고, 길 가는 내내 그것만 붙잡은 채 내가 어디를 지나왔고 어디로 가고 있나만 생각할 때 문제가 된다. 깨어난 사람이 자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혹은 이미 통과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거듭 의구심이 들 테고, 심지어 깨어남 상태를 억압하려 들지도 모른다.<281~282쪽>

다만 이 장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깨어남이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이다. 깨어남은 끝이 아니라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깨어남은 길의 끝에 도달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길로 옮겨 갔다는 뜻이다. 비유를 좀 더 확장하면 그 다른 길은 좀 더 높은 산길이다. 그 길에서는 더 넓은 전망을 볼 수 있고, 풍경이 더 아름답고 더 생생하다. 시공간이 더 넓어지고 여정이 더 고요해지면서 동시에 더 신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길은 길이라서 그곳에서도 움직임이 있고 변화가 있다. 진화의 가능성도 여전하고 (일부 구루들의 경우처럼) 퇴화의 가능성도 있다. 문제도 직면해야 한다.<323쪽>

『보통의 깨달음』
스티브 테일러 지음 | 추미란 옮김 | 판미동 펴냄 | 508쪽 | 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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