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부와 권력을 행사하려면 이렇게…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포토인북] 부와 권력을 행사하려면 이렇게…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2.18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예술가들의 뒤에는 어느 가문의 후원이 자리했다. 이름하여 메디치 가문. 도시 국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집안인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예술이 꽃 피는 르네상스 시대가 더욱 활짝 피었고, 명작으로 꼽히는 예술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경기대학교 예술학과 교수인 저자는 "메디치 가문은 부와 정치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나누고 베풀면서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을 인식했다"며 "오늘날 우리가 메디치 가문을 다시 살펴보는 큰 이유는 정치가나 자본가, 지식인들이 어떤 가치와 이상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 미술과 그 역사를 쉽게 소개한다. 

메디치 은행의 창업자인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메디치 은행의 창업자인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본래 메디치 가문은 농촌에서 피렌체로 이주해 온 평범한 이민자였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시조인 조반니 디 비치 데메디치가 농촌에서 피렌체로 이주해 왔을 당시에는 토착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렌체 출신의 부유한 상인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반니는 자신을 배척하고 멸시하는 기존의 피렌체 상인들과의 친목이나 연대는 뒤로했습니다. 반면 그는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며 이들과의 연대가 자신의 사업이나 피렌체의 장래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시민 공동체를 중시하는 메디치 가문 특유의 가치관이 등장한 것이지요. 조반니는 1397년에 다른 두명의 투자자와 함께 공동으로 피렌체에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이 은행이 바로 메디치 가문의 부를 축적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피렌체 은행입니다. <74~75쪽>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아버지 조반니의 뒤를 이어 막내 막대한 부와 권력을 계승해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는 바로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였습니다. 그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의 부속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아랍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익힐 만큼 학문과 예술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코시모는 어려서부터 수집해 온 고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고전 학문과 고전적 이상을 존중하는 한편, 인간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른바 인문주의자가 됐습니다. 당시 피렌체엇 그만큼 고전에 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1434년 피렌체 의회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공인하고, 1439년 코시모는 자비를 들여 기독교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피렌체 공회의를 개최합니다. <80~81쪽>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올라가는 조형적 상징으로 제작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 로렌티안 도서관이라고도 불린다.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올라가는 조형적 상징으로 제작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 로렌티안 도서관이라고도 불린다.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코시모의 적극적인 후원에 따라 수많은 학자들은 피렌체로 모여들게 됐고 이와 함께 고전 문서와 역사, 미술과 철학에 대한 흥미도 자연스레 일어났습니다. 코시모는 철학 중에서도 플라톤이 연구한 철학에 관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을 헤매면서 희귀한 원고와 귀중본들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서관을 공개했지요. 라틴과 그리스 지역의 만권이 넘는 서책, 단테와 페트라르크 시대부터 피렌체의 먼 과거까지를 망라하는 엄청난 양의 책,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원고들이 코시모의 도서관에 소장돼 있었다고 합니다. <90쪽> 

산 마르코 수도원. 산 마르코 수도원은 이미 12세기에 있었지만 1437년에 코시모의 후원을 받아 수리해 피렌체 최초로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한 수도원이 됐다. 이 수도원은 수사 화가였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하다.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산 마르코 수도원. 산 마르코 수도원은 이미 12세기에 있었지만 1437년에 코시모의 후원을 받아 수리해 피렌체 최초로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한 수도원이 됐다. 이 수도원은 수사 화가였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하다. [사진=도서출판 스푼북] 

코시모가 피렌체의 국사를 맡아본 기간 동안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됐고, 최고의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도시가 됐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은 대부분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코시모는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를 보호하고, 큰 규모의 건설 사업을 시도했습니다. 피렌체를 상징하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비롯해 산 마르코 수도원, 산 로렌초 성당 등이 이때 새롭게 단장됐습니다. 그러면서 예술가들 역시 코시모의 후원을 받으며 제각기 자유롭게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대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불멸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작품으로 인해 르네상스 예술의 위대함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93~94쪽>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박영택 지음 | 스푼북 펴냄│160쪽│12,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