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민주화·협동·생명” 서거 25주기 무위당 장일순 선생 첫 평전
[포토인북] “민주화·협동·생명” 서거 25주기 무위당 장일순 선생 첫 평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5.14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면 거기 다 있더라”
“세상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제일 위대한 사람이더라/들에 핀 하나의 꽃도 일생을 그렇게 살더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올해로 서거 25주기를 맞는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의 생애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그린 책이 출간됐다. 무위당은 유신과 5공 시대 민주인사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독재 세력에 쫓기는 자들의 피신처, 고뇌하는 지식인들의 구원자였다. 또한, 20세기에는 생소했던 생태주의자이자 생명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 그는 시대를 비판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일을 했으나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며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맞고 있는 김삼웅이 이 책에 무위당의 생애를 오롯이 담으려 한 노력은 뜻깊다.

[사진= 두레출판사]

장일순 선생의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봄 장일순은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업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경성공업전문학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이다. 1946년 미 군정청이 국립서울대학교를 신설하고 총장에 미군 장교를 임명한다는 국립대학교 실시령을 발표했고 교수, 교직원, 학생들은 ‘식민지 교육 반대’ ‘학원의 자유와 민주화’ 등을 주장하며 반발했다. 장일순 선생도 격렬하게 반대운동에 나섰다. 명색이 해방된 나라의 국립대 초대 총장에 미군 장교가 임명된다는 소식에 분노한 것이다. <43쪽>

[사진= 두레출판사]

1950년대 중반 교사 시절의 장일순. 장일순은 25살이던 해 당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중등과정을 가르치는 성육고등공민학교 교사로 들어갔다. 월급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였다. 장일순은 26살에 교사들에 의해 교장으로 추대된다. 장일순은 도산 안창호가 평양에 설립했던 민족학교 대성학원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학교 이름을 대성학교로 고치고, 인성교육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의미에서 교훈을 ‘참되자’로 정한다. <57쪽>

[사진= 두레출판사]

1961년 장일순(왼쪽에서 셋째 )은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춘천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당시 판사는 검찰 기소장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는 판결문으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가 물리력을 동원해 민족·민주세력을 구속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90쪽>

[사진= 두레출판사]

서재에 앉아 있는 장일순 선생. 장일순은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늘 ‘밑으로 기어라’를 실행했다. 그는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을 원하지 않는다.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실례에서 배워야 한다. 사회변혁의 정열 이외에 영혼 내부의 깊은 자성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일순은 지식인이랍시고 민중 위에 군림해, 민중을 지도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166쪽>

『장일순 평전 :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
김상웅 지음│두레 펴냄│416쪽│19,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