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영국의 기독교 역사… 홍차와 맥주의 인기
[포토인북] 영국의 기독교 역사… 홍차와 맥주의 인기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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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가 꽃핀 본고장이면서도 아직까지 왕과 왕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특한 나라다. 영국 왕실 일가는 세계인의 관심 속에 대중 스타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절대 군주로 전세계를 주름잡았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비록 의회에 정치권력을 이양하면서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국 왕실과 일반 영국인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영국에는 2세기 말 이전에 로마를 통해 기독교가 전해졌다. 우선 켈트족(브리튼인)에게 전해졌고,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점차 널리 퍼져 나갔다. 6세기 말부터는 교황청이 액글로색슨족의 개종에 관여하면서 애설버트 왕과 신하 대부분이 개종했다. 왕이나 귀족 외에 일반 민중을 전도하는 데에는 수도원의 활동이 효과적이었다. 7세기 후반부터 7세기에 걸쳐 수도원이 꾸준히 늘어났으며 이후에 수도원은 영국 왕들의 묘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왕들이 수도원에 잠들어 있고,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역대 왕의 대관식을 거행하고 있다. 

청교도혁명으로 참수당한 찰스 1세.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청교도혁명으로 참수당한 찰스 1세.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영국사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시대는 17세기다.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만 연이어 실패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지만, 의회는 톤세와 파운드세 등 관세 징수를 1년으로 제한해 왕과 의회가 알력다툼을 벌였다. 왕은 청교도가 우세했던 국회를 압박하는 한편 예전에 왕의 황무지를 개간한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해안 도시뿐 아니라 내륙 도시에서도 선박세를 징수했다. 결국 영국은 국왕파와 의회파로 나뉘어져 내전을 벌였고 패배한 찰스 1세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 혁명'이다. 

홍차를 즐기는 영국의 상류계급.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홍차를 즐기는 영국의 상류계급.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영국의 차 문화는 청교도 혁명 이후 왕위에 오른 찰스 2세가 1662년 왕비(카타리나 데 브라간사·포르투갈의 왕녀)를 맞아들일 때 함께 홍차를 마셨던 습관이 영국 왕실에 전해진 것이다. 당시 홍차는 왕후 귀족이라도 좀처럼 마시기 어려운 고가품이었으나 하루에도 몇 잔이나 마시는 왕비로 인해 많은 사람이 홍차에 맛을 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마시게 됐다. 18세기 중반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홍차가 사랑받으면서 온 국민의 음료로 자리매김했다.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맥주 거리'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맥주 거리' [사진제공=돌베개 출판사]

17세기 이후 홍차뿐만 아니라 맥주도 큰 인기를 얻었다. 애초에 영국인은 맥주를 영양을 보충하는 일종의 식사이자 심신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음식으로 여겼다. 포도주는 몸을 망치는 음료로 여겨 기피하면서 그보다 몸에 좋은 맥주가 사랑받았다. 특히 육체노동자가 많이 마셨는데, 18세기 항만 노동자는 하루에 맥주를 6파인트(약 3.4리터)나 마셨다고 한다. 


『왕으로 만나는 위풍당당 영국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 김경원 옮김 | 돌베개 펴냄|304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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