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사회 반영한 ‘엉망’ 현수막... 유치원 비리·고용 세습·취업률 저조
엉망사회 반영한 ‘엉망’ 현수막... 유치원 비리·고용 세습·취업률 저조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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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일민미술관(사진 이혜민)]
일민미술관 건물에 내걸린 '엉망' 현수막. [사진제공=일민미술관(사진 이혜민)]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벽에 내걸린 ‘엉망’이란 현수막이 뭇 사람의 격한 공감을 끌어내며 관심을 받고 있다. 흰 바탕에 투박하게 적힌 ‘엉망’이란 글자에 “나라 경제 엉망” “모든 게 엉망인 요지경 세상” “엉망인 우리가 사는 현실...” 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진다. 누군가는 ‘엉망’이란 현수막 밑에서 벌어진 정치 집회의 어수선함을 두고 “영화보다 뛰어난 현실의 미장센(연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목소리에는 개인과 사회를 향한 공감·반성·비판이 묻어난다.

전시회 ‘엉망’은 수집 강박증을 지닌 작가 Sasa[44](필명)가 20여 년간 모아온 수집품을 그 시대의 문화와 엮어 소개하는 전시회다. Sasa[44] 작가는 전시회와 동명의 책 『엉망』에서 10년간 먹고 모았다는 4,024개의 소주병과 건강 악화에 따른 ‘갱생’ 프로젝트와 같은 개인적인 소품·생활 기록을 통해 ‘엉망’의 숨은 의미를 풀어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엉망’이란 주제에 격하게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아마 그 글자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압축해 표현하기 때문은 아닐까?

포털사이트에 ‘엉망’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면들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에는 올해 무기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8.4%)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으로 확인되면서 ‘고용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정규직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아 일반 지원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났다는 지적이다. 이런 논란은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가스공사, 인천공항공사, 한전KPS 등 공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공정사회’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사립유치원과 관련해서도 ‘예산감독 엉망’ ‘식자재 관리 엉망’ ‘회계 관리 엉망’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가 수두룩하다. 지난 25일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유치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적발된 비리 건수는 249건에 달한다. 상당수 유치원이 원장 부부의 차량 유지비, 입원 치료비, 생활비, 경조사비 등 사적인 이유로 유치원 공금을 유용해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 외에도 먹고 남은 반찬으로 국을 만들고, 닭 3마리로 200명에 달하는 원생·교사의 닭곰탕을 끓이는 등 일부 유치원의 비도덕적 행태가 전해지면서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경기 부진과 심각한 수준의 취업률도 ‘엉망’이란 지적을 받는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실업률은 지속해서 상승하면서 올해 3분기 기준 9.4%(15~29세 젊은 층 )의 수치를 보이며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0.4%)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여기에 경제 성장률마저 비관적인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3%로 발표했다가 경기 부진을 반영해 지난 7월 2.9%로 하향 조정했지만 지난 2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비관적인 경제 전망에 공정성이 의심되는 취업 관문, 생때같은 자녀를 믿고 맡기기 어려운 유치원 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가 몰아닥치는 현 상황에 ‘엉망진창’이란 비난을 내뱉으며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촛불집회’로 정권을 바꿔도 팍팍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폴 플린토프는 책 『인생학교:세상』에서 “누군가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항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며 “사소한 행동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꼭 무언가를 ‘하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 것도 역사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나부터가 부정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 『비폭력행동의 정치학』에 따르면 폴란드 교도소에서 유대인 죄수가 탈출하기 시작했을 때 전신기사로 일하던 한 여성은 군대 증강을 요구하는 전보를 고의로 보내지 않아 유대인의 목숨을 구했다. 또 나치 정권에 반대한 독일 의사들은 신체검사 때 청년들을 징집에서 면제해주면서 참전을 막았다. 이를 통해 비록 수동적일지라도 불의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하며 정의 구현에 일조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사회악’을 접하면서 세상을 욕하고 무기력에 빠지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상식적인 기준 지키기를 통해 공명정대한 사회 조성에 이바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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