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고유한 ‘한국의 미’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의 4대 미를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이라고 말한다. 신명은 영혼을 깨우는 생명의 힘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흥겨운 정서이며, 해학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을 희롱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달관의 지혜다. 소박은 꾸밈없는 대교약졸(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은 뽐내거나 과장하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의 자연미이며, 평온은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난 본성의 고요한 울림이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미’를 과거부터 현대까지의 예술작품에서 찾았다.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오회분은 투구 모양의 고분 5기가 동서로 길게 배치돼 있어 오회분이라고 부른다. 오회분 4호묘의 천장에 그려진 황룡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서러운 영물로 사신의 수장이면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북극성이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입을 크게 벌려 혀를 내밀고 몸을 꼬아 뒷다리를 힘차게 뻗은 역동적인 몸짓으로 하늘에서 호령하고 있다. 차갑고 습기 찬 무덤 안은 오방색의 향연과 역동적인 생명의 열기로 불타오르고 있다.
길림성 집안 무용총 벽화의 ‘무용도’를 보면 가무를 즐기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특유의 땡땡이 의상을 입은 무희들이 묘주로 보이는 말 탄 사람 앞에서 아래의 합창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소맷자락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해 움직임에 따른 유려한 곡선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성덕대왕신종의 몸체에는 좌우로 고양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연꽃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이 선인은 꽃과 구름과 불꽃의 형상을 머금은 율려의 문양으로 둘러싸여 신비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 문양은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차가운 청동에서 따스한 온기와 촉각이 느껴진다.
박광생도 칸딘스키처럼 색채와 영혼의 관계를 신뢰했지만, 추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 ‘토함산 해돋이’는 불교 도상들과 토함산 풍경이 평면적으로 펼쳐진 작품이다. 그는 형상이 지닌 종교적 상징성을 활용해 추상의 공허함으로 빠지지 않는 동시에 삽화처럼 되지 않게 하고자 추상적 요소를 가미해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최광진 지음|미술문화 펴냄|272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