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삼고싶어요
오빠 삼고싶어요
  • 관리자
  • 승인 2006.04.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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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수필가 · 본지 칼럼리스트)

 

 어느 가정이나 남편의 모임엔 아내가 동반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아내가 가지고 있는 모임들엔 남편은 무관심한 게 통상적인 모습이 아닐런지? 아직까지는?
그러나 요즘은 아내의 친구들 모임에 각각의 남편들도 동참하여 오히려 더 화기애애한 모습도 많다고는 하더라만.
본인이 늘상 부러워하는 것들 중에 하나다.


지난 달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남편의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저녁모임이라 오랜만에 갈비도 뜯고 그다지 자주 만나지는 못하여 대화가 부족했던 남편친구, 선후배 아내들과도 서로 터놓고 대화가 오고갈 때 즈음,
한 여자분(남편후배 아내)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저기요, 남편분이 너무 성격이 좋으시더라구요, 대화를 이렇게 해보니깐 자상하고,..집에서도 늘 다정하시지요?"

갑자기 내 남편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칭찬은 내 칭찬도 좋고 남편 칭찬도 좋고 아이 칭찬도 마다하지 않는 나.
들을수록 좋은 게 칭찬이려니(아부는 빼고).

"네에,.."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내심 한편으론 조금은 양심에 걸리기도 했었다.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난 정말 너무너무 부러워요. 그래서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누구를? 아, 내가 궁금했던 모양이구만.'

"네에.."
연신 '네'라는 소리밖에는 나오질 않고 그래도 무어라 조금은 길게 대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잠
시, 정작 떠오른 단어라곤 그 '네'밖엔 없었다.

"저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 같아서 이제부턴 언니라고 부를게요. 그래도 괜찮지요?"

언니..
언니란 이 단어가 갑자기 생소해지고,
막내로 자란 터라 언니라는 말은 내가 다른 이에게 부르는 게 거의 다였는데,거기다 후배들도 내게 언니라는 호칭보다는 '선배'라고 부르는 터에 그게 더 익숙한데, 갑자기 나더러 언니..란다.

"그러세요, 제가 나이가 많으니..언니, 이제부터 언니라 부르세요.."

날 언니라 부르라고 한 이상 내가 제대로 된 언니다운 노릇을 해야 할텐데, 심히 걱정이군.

"저기요, 언니..전요, 오빠 삼고싶은데..괜찮으시겠어요?"

오빠..?
이번엔 오빠, 그건 필시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닐테고 오빠라면 우리 아이아빠를 두고 한 말인 것도 같은데 왠 오빠?
갑자기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지난번 어디선가 남편과의 대화가 대단히 즐겁고 따뜻했나 보다.

"그러세요..오빠, 하세요...하하.."

이 말을 하며..
반대편에서 친구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는 내 남편의 모습이 갑자기 얄미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다정하게 얘기를 잘 들어주었으면 후배 아내가 오빠를 삼자고 하는거지?
그러다가 갑자기 핏~ 하고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내가 질투를 했었구나.
한번 내친 웃음은 그칠줄을 모르고 연신 웃어대는 나를 보며 멀리 떨어져있는 내 남편도 덩달아 웃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모임이 재미있었나 보네, 계속 웃던걸."

남편의 질문에 모임에서 있었던 그 후배아내의 이야기를 해주니,
남편도 싫지는 않은 듯 빙그레 웃으면서
"하하, 좀 성격이 밝은가봐..그 후배와이프가..그냥 하는 소리겠지."
그러며 내 눈치를 실실 본다 .

맨 처음 내 남편을 오빠 삼고싶다는 말을 듣고선 의아해하다가, 그러다가 기분이 조금은 이상해지다가, 약간은 실없는 농담으로도 여겼다가..
오빠를 삼든 선배로 삼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집 안에서의 모습 중에 이젠 오빠같은 모습이 거의 없는 듯도 한데, 아직도 바깥에서는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내 남편을 오빠로 본다는 데에 있다.
그 말 즉슨, 오빠같이 다정하고 자상한 면이 많은 남자 그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라는 말이다.

왜 난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생활 속에서 그것을 못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분명히 그 모임에서 후배아내가 내 남편을 두고 느꼈던 그 감동을 나 역시 오래 전에
내 남편에게 느꼈을 것이 아닌가!

아내,남편
각각의 가정에서의 자리들이 바깥 사회에서의 타인의 시선들은 단지 아내와 남편만은 아니다.

돌아오는 길, 연신 웃고있는 내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난 그 오래 전, 내게도 다정한 오빠의 모습들을 하나씩 풀어헤치고 있었다.


독서신문 1393호 [200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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