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혜식의 인생무대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색쓰는 여인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불어오는 바람결에선 어느 사이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이다. 머잖아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싹들이 저마다 함성을 지르는가 하면 봄꽃들이 활짝 피어 여심(女心)을 유혹할 것이다. 해마다 피어나는 봄꽃들을 대하노라면 자연의 아름다운 향연에 소녀처럼 왠지 가슴이 설렌다.

그래서일까. 전과 달리 피어난 봄꽃들이 예사롭지 않다. 꽃 무더기만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것은 다반사고 이도 모자라 나또한 꽃 속에 풍덩 안겨 셀카를 찍기 바쁘다.

이런 나를 두고 딸들은 나이를 먹으면 꽃과 함께 사진 찍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놀린다. 딸들의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이즈막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들추어보면 배경이 온통 봄꽃이다.

해마다 봄철이 찾아오면 아파트 정원에는 봄을 알리는 매화, 진달래 등이 앞 다투어 피고 진다. 꽃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도 연신 봄기운에 흠뻑 취하곤 했다. 또한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진달래 꽃잎의 핏빛처럼 붉은 빛에 경이로움을 감출 길 없었다.

어디 진달래뿐이랴. 눈 멀미를 일으키는 개나리꽃을 보면 “도대체 샛노란 빛깔이 어떻게 나올까?” 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색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꽃 색의 중심 물질로써 수용성인 ‘안토시아닌’과 지용성인 ‘카로티노이드’ 덕분 아니던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꽃이 지닌 아름다운 색상에 한껏 매료돼 봄꽃 앞에만 서면 잠시 대여섯 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꽃은 자신의 본색을 감추지 않는다. 작년 봄에 피었던 개나리가 그동안 노란색이 싫증난다고, 올 봄에는 다른 색으로 변신하고 싶다고 다른 색을 탐 하지 않는다. 꽃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지닌 고유의 색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어찌 꽃뿐이랴. 겨울의 나목이 벌거벗은 자신의 몸이 춥다고 봄의 훈풍을 탐하던가. 여름철 폭풍우 속에서도 가을철 소슬바람 속에서도 동장군의 혹한 속에서도 나무는 묵묵히 하늘 향해 우뚝 서서 온몸으로 자연 현상에 순응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태어날 때 한 점 오염 없던 동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래고 온갖 욕망으로 얼룩지기 일쑤다. 날이 갈수록  마음자락은 오욕칠정으로 물들어 본연의 순수를 잃어가고 있다.

태어날 때 지녔던 천진난만한 동심은 상실한지 오래다. 온갖 탐욕으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마치 먹잇감을 찾는 맹수의 눈빛을 지니고 사는 삶은 아닌지 봄꽃을 떠올리며 왠지 절로 손이 가슴으로 가는 이즈막이다.

변화와 도전을 지향하고 안분자족(安分自足)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사로잡혀 온 지난날이다. 하지만 인간사가 어찌 뜻대로 이룰 수 있으랴. 팔색조를 지향하고 때론 인생 역전도 꿈꾸지만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

그럼에도 끊임없이 변신을 꿈꾸어왔고 지금도 그것을 추구하려는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진정한 변화란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급박하게 변하는 현대에서 진정한 변신은 자신의 본색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지닌 색깔이 있다. 즉 개성이라고도 칭한다. 개성은 개개인이 지닌 성향일 수도 있다. 흔히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만큼 개성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반면 평소 삶의 지향점을 어느 것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도 결정 된다는 뜻일 게다.

어쩌면 이 말도 일리가 있는 성 싶다. 매사 긍정적이고 마음이 순연한 사람은 늘 평온한 일상을 지내는 듯하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하는 일마다 순조롭다. 이로보아 마음 자락이야말로 인생 바다를 순항하게 하는 나침반이 아니고 무엇이랴.

예로부터 부자가 되려면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이 때문인가 보다. 평소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 불행이 결정 되는 게 사실 아니던가.

꽃들이 결국은 자신의 결실을 위하여 본색을 잃지 않듯 우리도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자신 만의 색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삶을 살되, 나만의 색깔을 확고히 정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인간상(人間像)을 이제라도 정립(正立)해야 할까 보다.

권동혁 기자  kdh@readersnews.com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동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책 읽는 대한민국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