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계 「괴물」을 키웠다... 성폭력 괴물, 어떻게 잡아야 하나
문단계 「괴물」을 키웠다... 성폭력 괴물, 어떻게 잡아야 하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07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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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JTBC>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벨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벨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16년 최영미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지난 6일 방영된 JTBC 뉴스룸에서의 인터뷰와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Me Too: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미)열풍에 힘입어 재조명 받고 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 실시간 검색어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주된 원인은 JTBC 뉴스룸 인터뷰였다. 1990년대 대중에게 가장 많이 팔린 시집으로 유명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작가 최영미 시인은 손석희 앵커의 사회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단계 성폭력(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을 고발했다.

최영미 시인은 먼저 그녀가 2016년에 발표한 시 「괴물」의 당사자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시에 쓰여진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시에 나오는 성폭력의 피의자인 En시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으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원로 시인’이라는 점에서 많은 네티즌들은 누군가를 추측해낼 수 있다.

JTBC는 최영미 시인과의 인터뷰 전에 En시인으로 추정되는 원로 시인을 인터뷰했고 해당 원로 시인에게서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표현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뉘우친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한편, 그녀는 시에 나온 성폭력이 전부 사실은 아니라고 언급하며 “문학 작품을 쓸 때 과장이나 사실이 아닌 것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하며 시에 나온 문장들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겼다.

 

En시인만이 아니다... 문단계 구조 문제

인터뷰에서 최영미 시인이 고발한 문인은 시에 나온 En시인만이 아니다. 인터뷰에서 최영미 시인은 문단계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 문인들과 성폭력을 한 남성 문인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성폭력이 이뤄지는 방식을 말하며 “어떤 여성 문인이 권력을 쥔 남성 문인, 예를 들어 시인, 평론가, 소설가 등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 복수를 한다. 그들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메이저 문예잡지들이 있는데, 그들이 시 편집 회의를 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게는 시 청탁을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나와도 그의 작품에 대해 (평론에) 한 줄도 쓰지 않는다. 그녀가 나중에 작품집을 내고 싶어서 메이저 문학 작품을 내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면 그 원고가 채택되지 않는다”며 문단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최영미 시인은 구조적인 문제가 생기는 이유를 문학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그들의 피해가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작품이 좋지 않아요’ 하면 끝이다. 그들은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다. 그런 일이 몇 해에 걸쳐 일어나면 그녀는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난다”며 주관적인 판단을 멋대로 행사하며 문단 권력을 행사하는 일부 문인들을 비판했다.

 

돌아보는 과거 문단계 성폭력... 고쳐졌나?

최영미 시인은 인터뷰에서 “2016년에 「괴물」을 발표하고 문단을 떠나서 지금 문단에서 여전히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아직도 문단계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을 발표한 2016년 말에는 문단계 성폭력 문제가 화두였다. 박범신 소설가도 성폭력 의혹으로 세간의 빈축을 샀다. 밤범신 소설가의 수필집을 펴낸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트위터를 통해 "박 작가와 우리 팀, 여성 팬들이 술자리를 하는데 방송작가를 옆에 앉히고 허벅지와 허리, 손을 주물거리면서 우리 팀의 신상(주로 결혼했는지, 나이)를 꼬치꼬치 물었다. (중략) 그는 우리 모두를 '은교'라고 불렀다"면서 "남자 작가 1인이 세 시간 남짓 동안 7명의 여성을 성희롱했다"면서 "너무 유명한 작가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어 아무 대응도 못했다"고 폭로했다. 박범신 소설가는 이에 대해 대응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 바꿔야

최영미 시인은 “문단에 처음 나왔을 때 30대 초반이었다. 문단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한 문인은 한 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묵인하는 분위기였다”며 문단계에서 여성을 성폭력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꼬집었다.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한 여성은 문단계 성폭력 사태를 지켜보며 “남자는 여자를 일 때문에 만나면서도 잠재적인 연애 상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여성을 잠재적인 성폭력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만연한 문단계에서 성폭력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문단계 전반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일부 남성 예술가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여성의 인격을 짓밟는다고 비판한 『불편한 미술관』의 저자 김태권은 그의 책에서 “남자들의 판타지는 이상하다. 야할수록 거룩하고, 거룩할수록 더 야하다. ‘남성에게 여성은 성녀 아니면 탕녀’라는 말은 유명하다. 같은 남성끼리는 좀처럼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왜 남성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을까? 현실의 여성이 상상 속 여성과 다르다면, 현실과 다른 상상을 고치는 것이 정답일 터. 하지만 현실의 여성을 판타지 속 여성에 맞춰 뜯어고치려는 남성이 뜻밖에도 적지 않다”면서 “남자가 남자를 만날 때, 남자는 그 남자를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많은 이들이 그 여자를 ‘여자’라고 한다. 한술 더 떠, 멋대로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성적으로 얕잡아 보는 시선을 보낸다”라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은 한 인간으로서 언제나 동등하다. 문단계는 여성 인권을 유린하는 무식한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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