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詩로소이다- 인터뷰]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낸 신철규 시인 “눈물로도 위안이 안됐던 그 때 나는 절벽 끝에 올라 시를 썼다”
[나는 詩로소이다- 인터뷰]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낸 신철규 시인 “눈물로도 위안이 안됐던 그 때 나는 절벽 끝에 올라 시를 썼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11 07: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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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눈물에서 중력을 발견하는 것은 관찰력의 극치만은 아니다. (아내와)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자면 같은 꿈을 꾸게 될까 라는 말은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다. 그러면서 (고공 시위하는) 철탑이 거꾸로 선 나사 같을 때 우리는 침묵으로 나사를 조이는 무책임을 보였고 등과 등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깨달으며 서로의 등 뒤에서 눈이 내려도 돌아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놀라지 않은 적도 있다. 시인은 눈물이 위안이 되지 않는 세상에 머리카락이라도 묶고 싶었고 침묵의 나사 대신 공생의 화음을 기대했고 등과 등 사이에는 온기가 흐르기를 바랐다.

등단 6년 만에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한없이 무거운 제목의 시집을 낸 신철규 시인을 5일 서울 안국동에서 만났다.

시인 신철규

신철규 시인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그리고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신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6년 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슬퍼했다. 그래서 이 시집은 ‘돌처럼 단단한 눈물의 책’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

그러면 눈물은 위로인가. 시인의 답은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위로라는 말을 아낀다. 신 시인은 아마 ‘위로’는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하는 것처럼 ‘주는’ 의식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 시인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같이 절벽에 서 있으니 같이 뒤로 한발짝 물러나자고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는 시집 책날개 ‘시인의 말’에서 한 말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펴냄 |172쪽 | 8,000원

눈물을 좀 더 캐물었다. 신춘문예 당선 소감 “아이처럼 울겠다”는 말은 사실 최승자 시인 「올 여름의 인생 공부」에서 따 온 것이다. 이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신 시인은 말했다. 본인은 눈물이 결코 많지 않은 경상도 사나이라고 했다. (경남 거창 출신이다)

많은 이들이 「눈물의 중력」을 그의 대표작으로 알고 있다. 발표 초기부터 매스컴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JTBC 손석희 앵커가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를 인용했다. 공로는 손 앵커가 절대적이지만 이 시를 발견(?)한 눈썰미 좋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방송작가에게 돌려도 좋을 것 같다.

눈물에 관련된 시가 많고 시집 제목도 슬프다고 하자 “시집 제목이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가에 사는 한 초등학교 반 아이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신 시인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내가 기록하고 증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눈물의 중력」도 그렇다. “도처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매스컴을 통해서. 팽목항, 진도, 안산 그리고 밀양 송전탑에서도 울고 있는 사람을 봤습니다”

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늘 울고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웃기도 하더라고. 이게 사람 사는 세상 이치고 세상사는 사람의 이치다. 신 시인의 말은 한 뼘 더 들어간다. 눈물 속으로, 아니 눈물보다 더 눈물나는 현실 속으로.

“눈물은 흘리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그런 힘을 보며 그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봤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게, 절망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겁니다. 희망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부 허물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싶어요”

아까 ‘위로’라는 말을 아끼더니 ‘희망’이라는 말도 좀 주저한다. 위로라는 말을 건네기조차 우리 일상이 이젠 밑바닥에 빠져 있거나, 희망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울 만큼 절망의 도가니에 있는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위로·희망이라는 말을 아끼는 이유는 위로하지 말고 그 곁에 머물고, 희망을 속삭이는 대신 손을 내밀라는 식으로 생각됐다. 신 시인의 속이 깊어 보였다. 말 없는 기도가 메아리쳐 함성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 깊은 속은 ‘방’이라는 틀 속에 옹골차게 들어있음을 본다. 시 「검은 방」을 보자.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 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로 이어지더니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로 맺는다.

강철은 단단해서 누구도 허물 수 없는 벽 의미로 죽음을 부른 어른들의 제도, 부패 등을 아우른다. 여기에 ‘검은 허파’는 끝내 숨 쉬기를 멈춰버린 아이들의 목숨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다. 우리 어른들의 썩은 마음은 아닌가. 그런 것들이 ‘검은 방’으로 들어간다. 꿈 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한 검은 방으로.

방은 또 있다. 이번엔 「연기로 가득한 방」이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다 / 죽은 물고기를 씻어내는 수돗물처럼 얼음 탄환이 쏟아진다(…) 데인 살갗에 얼음을 문지른다(…) 이 방을 물로 가득 채우고 얼려버리면 이 방은 깨질 것이다”
하나같이 절망이고 허물어짐이다. 조금 직선적 표현이다. 그러나 명확하다. 너무 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신 시인의 설명이다.

신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은 「No Surprises」를 보면 “(…)구름이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얼음 조각처럼 분노도 경악도 사그라진다(…) 우리의 기도는 바늘처럼 날카롭다/ 온몸이 바늘로 뒤덮인 하느님(…) 바람이 전향을 재촉한다/ 철탑은 거꾸로 선 나사와 같은 것/ 우리가 침묵의 나사를 조일수록 / 뿌연 하늘과 검은 땅이 단단하게 깍지를 낀다”에서 철탑은 2013년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사건의 그 철탑이다. 고공 농성을 벌이는 현장에 신 시인은 갔다.

시인은 글을 보탰고 화가는 그림을 더했고 춤꾼은 춤사위를 풀면서 농성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송전탑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거꾸로 선 나사 ‘침묵의 나사’처럼 보였다. 변하지 않는 암울한 현실을 그는 그렸다. 이 작품은 부조리한 현실을 처음 그린 작품이다.

뿌연 하늘과 검은 땅이 깍지를 껴서 암울한 세상은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고, 물로 가득 채우고 얼려버리면 이 방은 깨질 것이고,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던 세상이다.

얼마전까지 그런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버리지 않은 믿음의 퇴적물이 바로 여기 시들이다.
 
신 시인 시의 90%는 한밤중에 쓰였다. 그는 혼자 깨어 있을 때 쓴다고 한다. 오늘 밤도 신 시인은 절벽을 오른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 그 말이 사랑이 되고 시가 됐다.
/ 엄정권·황은애 기자, 사진=황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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