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앤 피플] 달과 새와 나무와 폐허의 시인 김경성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세요"
[북 앤 피플] 달과 새와 나무와 폐허의 시인 김경성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세요"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5.17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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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김경성 지음 │ 시인동네 펴냄 │ 140쪽 │ 9,000원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독서신문은 최근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시인동네)를 낸 김경성 시인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는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달과 새와 나무와 폐허의 시인답게 시인은 도처의 작품에서 폐허를 지켰다가 천마리 새떼가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기어이 ‘붉음’에 도달한다. 시인은 사진촬영이 취미다. 취미라고 하기엔 수준이 높다. 시인이 보내준 작품 사진도 함께 싣는다. 시인은 좋아하는 나호열 시인처럼 답변도 간명하다.

- 시는 하루 중 언제 쓰십니까.
“달과 별이 이슬에 젖는 새벽이 올 때까지”

- 시인의 시는 주로 누구에게 또는 어떤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요
“나호열 시인, 작품은 역시 나호열 시인의 「집과 무덤」의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

* 편집자주= 나호열 시인의 작품 「집과 무덤」은 단 한 줄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로 된 시다. 나호열 시인은 “살아갈수록 긴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가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때가 많다. 이 한 줄 속에 생의 허망함이 다 담겨있다. 새벽이나 저녁은 삶과 죽음의 환유로 읽힌다. 저무는 시골마을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지막한 집이 보이고 고단한 발을 씻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시인 김경성

- 즐겨 다루는 소재 또는 주제가 특별히 있나요, 있다면 왜 그런지요
“달과 새와 나무 그리고 폐허. 기울어지고 차오르는 달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비추는 기원의 상징입니다. 마치 날개가 있었던 것 같은, 먼 전생의 기억 같은 새들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는 합니다. 어디에 닿아도 꼭 떨어져있는 깃털과 새에게 마음이 갑니다.

어느 순간 제가 서 있는 곳이 절집이고 폐사지고 꽃살문 앞이고 오래된 나무 아래인 것은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제가 끌어당기는 그 무엇인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폐사지에 오래 앉아 있으면 폐허가 되기 전 시간의 풍경이 보입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불이 지나간 자리에서 꽃이 피고 당신과 내가 숨을 쉬고 있습니다”

첨탑은 어느 쪽에서든 빛이 났다 청동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비둘기는 십여마리씩 떼지어 날았다 // 금빛 첨탑이 있는 청동지붕에서 / 산호초처럼 구부러진 나무의 즙을 먹고 사는 붉은 집으로 날아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조금만 구겨져도 금세 무언가 쏟아낼 것 같은 젖은 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다
<「젖꽃판이 흔들렸다」 부분>

달은 삼라만상의 기원, 새는 먼 전생의 기억
사색을 부르는 폐사지…
거기서 내가 숨을 쉬면 당신은 꽃이 됩니다

-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셨나요
“오래 다니던 직장(은행) 퇴직 후부터입니다”

- 시 역시 창작의 고통이 크겠지요. 그 고통을 글로 표현할 수 있나요. 또 그 고통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섭니다. 길을 걸으며 내 안의 타자와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게 교감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이야기 하며 마음으로 보이는 것들을 뷰파인더에 담습니다.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늦은 저녁에 집에 옵니다”

김경성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 작품 '스며들~1'. 사진촬영이 취미라 하기에 기자가 졸라서 받아내 신문과 온라인에 싣는다.

- 혹시 술 담배를 즐기시는지요. 술은 얼마나?
“술은 하지 않지만 와인은 조금 마십니다. 담배는 하지 않습니다”

- 지금 거주하시는 곳이 어딘지요
“서울 성북구 정릉입니다. 저녁 무렵이면 길 건너 흥천사에서 범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가까운 거리에 정릉이 있어서 새벽산책을 합니다”

어떤 나무는 / 절구통이 되고 / 또 다른 나무는 절구공이가 되어 / 서로 몸을 짓찧으면서 살아간다 //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따뜻한 황홀」 부분>

- 시 쓰다가 잘 안되면 어디를 주로 가서 머리를 식히고 재충전하고 그러나요.
“고궁산책을 자주 합니다. 미술관, 박물관, 절집을 찾아갑니다. 문득문득 템플스테이를 갑니다”

- 요즘 친구들 만나면 주로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지요
“시를 쓰거나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에 관한 이야기나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잘 사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삶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를 지닌 이야기를 나눕니다”

- 좋아하는 음식은?
“양갈비”

김경성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 작품 '적막에~1'.

- 감명 깊게 읽은 책, 또는 꼭 읽어보라 추천할만한 책 소개를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 독자들에게 시를 가까이 하라는 의미로 하실 말씀 있다면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시면 안보이는 것이 보입니다. 어떤 대상을 오래 바라봤을 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를 직접 소개해주시죠. 자랑해도 좋습니다
“시집 뒷면에 써놓은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접시꽃 씨방이 아날로그로 피어난다. 잎이 피고 지는 사이에도 마음 자락은 너울져 숲이 된다. 가끔 비 내리는 창문으로 눈물 번지듯 여울목이 흘렀다. 맞지 않는 문틀을 붙잡고 담쟁이가 생각 밖으로 팔을 뻗을 때 푸른 바람이 허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디로 흘러가야 하나, 기억의 회로는 처음과 끝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사이를 넘나들던 것은 시간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 허공의 지문을 읽어내는 겨울눈(目)처럼 한 그루 나무속에 깃들어 사는 생은 긍휼하다. 늙은 악기의 몸통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숲을 울린다. 나는 말문을 닫고’”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4호 (2017년 5월 22일자)에 실렸습니다.

김경성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 작품 '적막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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