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4)] ‘학술문은 심오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4)] ‘학술문은 심오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10.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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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글쓰기 지침서 『올바른 학술적 글쓰기』 내용 요약
헬가에셀본 크룸비겔 교수의 『올바른 학술적 글쓰기(Richtig wissenschaftlich schreiben)』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프랑크푸르트(독일)=신향식 특파원] “당신이 어떠한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한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강조한 대로 하려면 현학적으로 어렵게 발표하면 안 된다.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학술적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글쓴이가 전달하려는 중심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생활문뿐만 아니라 학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어도 문장으로, 글로, 논문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지 못했으면 이 훌륭한 이론은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쉬운 표현으로 알아차리기 쉽게 쓰는 문장은 학술적 글쓰기에도 꼭 필요하다.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강의하는 헬가에셀본 크룸비겔 교수는 그의 저서 『올바른 학술적 글쓰기(Richtig wissenschaftlich schreiben)』에서 쉬운 글쓰기를 권유한다. 그는 이 책의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도움말’ 항목에서 학술적 글은 아주 심오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한다.

크룸비겔 교수는 독일 뮌헨대학과 쾰른대학,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독문학과 비교문학,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문적 글쓰기를 다룬 책을 발간하고 헤르만 헤세의 자서전과 성장소설도 집필 중이다. 저자의 글쓰기 도움말을 일부 소개한다. 한국어와 독일어는 서로 다르지만 글쓰기 영역에서는 서로 참고할 게 많다.

◆ 학술문도 마치 말을 하듯 아주 쉽게 표현해야

첫째, 말하는 것처럼 글을 쉽게 쓰라! 어렵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쉽게 표현하라.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아주 친절히 설명한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라. 학술적 글쓰기를 하다 보면 글을 어렵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독자들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독자에게 전하려는 이론과 개념을 확실히 숙지한 뒤에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글을 풀어나가야 한다.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단락은 더욱 쉽게 풀어서 작성하라.

둘째, 글을 출력한 뒤 크게 소리 내 읽어보라! 출력한 글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글보다 거리감이 있다. 그 덕분에 당신은 형식적인 실수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력해 놓은 글을 직접 읽어보면 문제점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특히, 다른 서체로도 출력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소리 내 읽어보라. 서체와 읽는 장소를 바꿔보는 것은 낯선 글을 읽는 효과를 줘 글의 약점을 스스로 깨닫는 데 유리하다.

때때로 일부 문장이 거슬릴 것이다. 이것은 문장이 너무 길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문장이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다. 이것은 문장을 하나의 형식으로만 구성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글을 읽다가 막히거나 대충 넘어가는 부분도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머리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구조를 구성했으나, 글로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딜타이김나지움의 독일어 시간에 학생들이 칠판에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 글을 출력한 뒤 소리 내 읽어보면 실수 발견 수월

셋째, 조언(피드백)받는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라! ‘테스트 독자’에게 도움말을 들을 것이라면 가급적 초안을 쓰자마자 바로 조언을 받아라. 그 시점이 너무 늦어지면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부족해 보여서 ‘테스트 독자’에게 머쓱해 보일지 몰라도 초안이 나오자마자 (너무 많이 고치지 말고) 그냥 보여 주는 게 문제점을 지적받기에 더 유리하다.

그러면, 무엇을 점검받아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당신이 전개하려는 논리구조를 독자들이 잘 따라올 수 있는지 검증하라. ‘테스트 독자’에게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떤 내용을 보충하면 좋겠는지,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의견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라. 이 과정을 거치면 더욱 논리적인 글이 될 것이다.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예시를 곁들여도 좋다.

넷째, 정기적으로 낯선 글을 교정해 보라! 이것은 직접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부담 없이 낯선 글을 고쳐 보면서 당신의 글쓰기 방법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 무작정 글만 많이 써본다고 해서 문장력이 향상되는 게 아니다.

◆ 초안 쓰자마자 바로 첨삭(피드백) 받는 게 효율적

다섯째, 다양한 문체로 글을 써 보라! 우선, 여러 가지 상황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그에 맞춰 문체를 바꿔 보라. 그다음에는 일기나 편지, 가벼운 수필 형식의 글을 써 보라. 일간지 기사나 장학금 신청서, 사업 제안서도 작성해 보라. 이렇게 하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체를 써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문체가 좀 더 다양해지고 논거도 더 깊이 있게 제시할 수 있다.

여섯째, 의도적으로 부실한 학술문을 써 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단순히 재미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 문장 혹은 글의 구조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잘못됐는지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다. 그다음, 잘못된 글을 제대로 된 글로 바꿔보라.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예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실수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다.

◆ 짧은 분량으로 글 써보는 ‘글쓰기 요일’을 정해라

일곱째, 짧은 글쓰기 연습을 하는 ‘글쓰기 요일’을 만들어 보라! 짧은 글을 쓸 수 있는 적당한 날을 정해 정기적으로 글을 써 보라. 글쓰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글을 쓸 때 도움 될 만한 습관도 갖게 될 것이다. ‘글쓰기 요일’에는 아침 5분간 즉석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겨보는 연습을 간단하게 하면 된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이것을 심사하거나 평가하려고 하지 마라. 그 글을 읽지 말고 그냥 펜을 내려놓기 바란다. 이 연습을 하면서 당신의 머리는 무의식적으로 학술적 글쓰기나 글쓰기 과제를 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여덟째, 글을 쓸 때 당신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 학술적 글쓰기에서 당신 고유의 화법을 잃지 말라. 당신만의 방법으로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만약 당신이 짧고 특징 없는 문체를 쓰는 사람이라면, 간결함 속에서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확실하게 나타나도록 신경 써라. 독자들이 당신의 주장을 좀 더 잘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예시를 들어보라. 논거를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도록 인용을 하는 것도 좋다.

이와 반대로 당신이 글을 상세하고 장황하게 쓰는 유형이라면 좀 더 함축적으로 글을 쓰도록 노력하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특징적인 형용사를 이용해 압축 표현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해 가면서 꼭 필요한 정보 위주로 문장을 구성하라. 당신의 글쓰기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독자 편의를 생각해 글을 써야 한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중앙도서관 풍경. 과제 작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각종 서적을 참고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 핵심내용을 맨 앞에 배치하는 방법도 좋아

아홉째, 핵심내용(결론)을 맨 앞에 제시해 보라! 도입부에 흔히 담는 ‘글을 쓰는 동기’나 ‘문제 제기’를 항상 글의 첫 단락에 실을 필요는 없다. 도입부를 천편일률적으로 첫 단락에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특히 긴 글을 쓸 때는 중심내용을 도입부보다 먼저 쓰는 방법이 도움될 수 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독자들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서 핵심내용을 독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따라서 글의 주제에 해당하는 중심내용을 가장 앞부분에 배치하면서 글을 시작하는 방법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열째, 시간제한을 두고 글을 써 보라! 글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30분 안에 이 생각을 모두 정형화할 거야’처럼 스스로 시간을 제한해 놓고 글을 작성하는 것도 좋다. 30분이나 45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글 전체를 완성해 보라는 뜻이다. 한 부분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글의 뼈대에 맞춰 전체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완벽한 글이 나오지는 않더라도 글 한 편을 구성하는 연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열한째, 때때로 편지를 써 보라!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라. 지인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보라. 당신이 전하려는 내용을 지인이 이해할 수 있을지 판단해 가면서 표현을 다듬으면 된다.

◆ 학술문의 구조와 논리전개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라

열두째, 능동적인 독자가 되는 연습을 하라! 본인이 전공하는 분야의 학술서적이나 논문을 정기적으로 읽어보라. 한 달에 2번, 15분씩 시간을 내 학술문을 읽으면서 글의 구조와 개념, 논리를 전개하는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라.

열셋째, 글을 읽을 때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라. ①글쓴이가 새로운 생각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②단락과 단락을 어떻게 연결해 글을 펼치는가? ③작가는 어떠한 방식으로 반론을 전개하는가? ④어떻게 결론을 도출하는가?

개념(이론)에 주의해서 글을 읽을 때는 다음 질문을 해 보라. ①어떤 전문지식이 이 글에 담겨 있는가? ②각 개념들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③개념들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가? ④작가는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명확히 설명하는가?

열넷째, 유용한 표현이나 개념이 있다면 따로 메모를 해 두라! 당신이 나중에 글쓰기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와 글쓰기 전략들 역시 따로 메모를 해 두라. 이들을 ‘어휘공책’에 정리해 글쓰기를 할 때 사용하라.

열다섯째,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도식으로 표현하라. 그 도식을 기반으로 공통주제를 찾아 글을 시작하라. 생각나는 것을 그림과 단어로 종이에 담아보면 추상적으로 보이던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다. 머리에 떠다니는 여러 가지 불확실한 생각이 명확해지고 글의 흐름을 잡기가 쉬워진다. 글을 쓰기 전에 핵심 키워드를 메모하면서 커다란 마인드맵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글의 구조를 만들어라.

헬가에셀본 크룸비겔 교수는 20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페터 그륀베르크 박사가 물리학 이론을 도식으로 그려놓고 설명하는 사진을 이 책에 실어 놓았다. 저자는 “그륀베르크가 도식을 그려가면서 이론을 설명하듯이 우리도 글쓰기를 할 때 이 방법을 적용하면 좋다”고 강조한다.

◆ 연구가설은 반드시 증명되거나 반박할 수 있어야

열여섯째, 학술적 글쓰기에서는 연구문제(연구가설)를 세워 놓아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증명되거나 반박돼야 한다. 독자의 의문점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가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어떤 자료를 기반으로 했는가?’‚ ‘어떤 의문점이 제시될 것인가?’, ‘어떤 논증 방법이 사용될 것인가?’와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학술적 글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만을 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주장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고, 그들의 견해를 상대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나’, 혹은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 어떠한 사실을 통보하거나 지시하는 글이라는 뉘앙스를 주게 된다. 학술문에서 은유를 사용하면 글이 전문적이지 않고 진중함이 없어 보인다.

◆ 글쓴이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명시해야

열일곱째, 모든 주장은 옳다고 보는 이유를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글쓴이가 주장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다. 독자들은 글에 담긴 주장이 타당한지 스스로 증명하기 마련이다. 주장은 논쟁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독자가 깨달을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감정을 배제한 채 기술하고, 설명하고, 논의해야 한다. 학술적인 글을 논평할 때는 어떤 논거로 이론의 기초를 구축했는지, 글에 담긴 가치판단은 어떠한 배경지식에서 나온 것인지, 글쓴이의 주장은 어떻게 정당화됐는지 명시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인용할 때에는 출처 표기에 주의해야 한다. 독자는 글에 담긴 내용의 모든 면을 알아야 한다. 글쓴이 머리에서 처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선행연구에 이미 있는 내용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연구자(글쓴이)가 밝혀낸 것인지, 다른 사람의 생각(연구결과)인지 혼선을 일으키게 하면 안 된다. 어디에서 인용을 했으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 놓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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