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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 '서슬'은 가고 오롯이 '사랑'만 남아- 시집 『꽃길의 목소리』 황선태

[정리=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니, 인생 2막, 3막이라는 말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직장을 떠나, 직업이라는 옷을 벗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인생 2막이라고 볼 때, 여기 황선태 시인의 2막은 참으로 보드랍고 우아하다. 검사 출신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내, 평생을 법과 함께 했던 단호한(?) 일상을 내려놓고 법조문이라는 법의 언어 대신 문학의 언어 시(詩)에 도전했다. 유자효 시인은 작품 해설에서 황 시인의 시 쓰기란 ‘사랑하는 마음’을 ‘멀리멀리 날려 보내’는 행위라고 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황 시인, 보편타당함을 좇던 깎은 듯 반듯한 용모에 이제 폭넓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았다.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이젠 높이높이 날아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멀리멀리 날려 보낼 수 있겠다. 시집 『꽃길의 목소리』를 낸 황 시인을 이메일 인터뷰했다.

시집 『꽃길의 목소리』

- 태어난 곳, 주로 성장한 곳, 학교는 어디를 다니셨는지 소개를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남 마산시로 이사하여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마친 후 부산으로 유학가서 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하여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습니다. 경남 고성군과 마산시 그리고 부산시에서 잔뼈가 굵어진 셈입니다.”

- 신춘문예 당선은 언제였나요.
“올해 2월입니다.”

-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 창작은 인생 2막인 것 같습니다. 본인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평소에 좋아하고 관심이 있던 것을 시간이 부족해서 못하다가 시간의 여유가 좀 생겨 할 수 있게 되니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마침 그 시간대가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있기 때문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70이 제2인생의 출발점이라고 한 말과 통하게 되어 나도 시작 활동을 제2의 인생 출발점으로 삼고 싶습니다.”

서울 근교 산을 찾은 시인 황선태.

- 평소에도, 젊은 시절에도 시를 쓰셨나요, 아니면 시나 문학을 좋아하셨나요.
“젊은 시절에는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시를 좋아하고 시작에 관심이 있어서 습작을 해 본 정도였고 검사로서 맡은바 직무에 매달려 시를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 후 조금씩 시간이 나기 시작해서 한 두 편씩 쓰기 시작하다가 2014년경부터는 조금 더 많은 시를 쓰게 되어 그동안 쓴 시가 150편 가까이 되므로 시집이나 한권 낼까 생각하는데 친구들이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내라고 하여 망설이던 끝에 때마침 시전문지인 『시와시학』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이 당선되어 등단 후 시집을 내게 된 것입니다.”

- 대체로 법조계 계신 분들이 문학, 특히 옛 문학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법과 시, 이 사이에 뭐가 있을 것 같은데요. 뭔가 있나요, 아니면 닮은 건가요.

“글쎄요. 저는 법과 시 사이에 뭔가 연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각자의 달란트(재능)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DNA와 신앙적 영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교직에 계시던 아버지가 작사하셨다는 교가를 부르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멋진 작사를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작사의 DNA, 그런 것을 받았나 봐요. 거기다가 크리스천으로서의 사랑이랄까 따뜻함이랄까 그런 것이 몸속에 조금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법조인에게는 다툼이 없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을 찾는 리걸 마인드가 필요한 반면에 시인에게는 함축성이 있고 새롭고 상상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과 시는 아무래도 그 방향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 소년 시절, 젊은 시절, 본인의 모습은 어땠으며 어떤 삶을 살고자 했나요.

“어릴 때 교직이나 법조인을 하고 싶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법조인이 되었습니다. 판사보다는 검사를 택한 것도 선친의 뜻이었고 정의를 세우고 국가기강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검사생활은 저에게 큰 보람이었습니다. 참 열심히 일했고 望70이 된 지금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 5년 전에 서민대중을 위한 법률봉사 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이사장으로 임직 받아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데 봉사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일인가를 경험하는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제 남은 여백 위에 근사한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는데 봉사와 여러 가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많이 해야지요. 그리고 틈틈이 시작 활동을 하고 싶고요. 지금 맡고 있는 몇 가지 일을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생각입니다.”

윤동주 시비 앞에서.

- 책 첫머리에 있는 시 「몸을 사르다」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향기 있는 삶은 어떤 건가요. 혹시 사건 처리하면서도 사람의 향을 느낀 적이 있으시겠죠.
“향기 있는 삶이란 덕향만리(德香萬里)라는 말과 같이 덕이 있는 삶을 말하겠지요. 덕이란게 무엇입니까? 학식이나 재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내와 겸손과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참을 때에 참고 자기를 낮추며 남을 위해서 배려할 때 덕은 꽃피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한센병 환자와 함께하며 자신의 아들 둘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고 사랑하다가 6·25 전쟁 때 북한 공산군에 의해 순교 당한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지요. 또 우리가 모두 아는 이순신장군 같은 분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사건 처리하면서 사람의 향을 느낄 때도 간혹 있었지만 특별히 말씀 드릴만한 것은 없습니다.”

- 검사 생활 오래하셨습니다. 기쁨과 괴로움도 많았겠죠. 기뻤던 일, 괴로웠던 일 각각 하나씩만 꼽아주신다면

“다음에 천천히 말씀드리지요.”

- 법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올바로 선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법치사회 구현을 위해 어떤 점에서 더욱 노력해야 할까요.

“국가가 법치를 아무리 내세워도 국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국민에게 법을 사랑하고 법은 지키면 좋고 이로운 것이라는 확실한 인식을 심어주고 경험을 하게 해야 합니다. 정치인 등 지도층 인사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으로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먼저 법을 제대로 지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시 「몸을 사르다」 자필 원고

- 법조계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무사는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금과옥조였는데 참고가 될지 모르겠네요.” 

- 시인의 삶, 기대가 큽니다. 한 말씀 부탁합니다.
“법조인으로서의 일상 가운데 다소 엄격한 틀을 벗어나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게 소중한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노래하고 싶습니다.
난해한 시를 지양하고 독자와 소통이 되는 따뜻하고 맑고 편안한 시를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늦은 출발이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제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슬이 되고 싶다

꽃이 되고 싶었다
빨강 노랑 화려하게 드러내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되고 싶었다

바람이 되고 싶었다
쌩쌩쌩 거세게 휘몰아쳐
천지를 뒤흔드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별이 되고 싶었다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
길을 인도하는 별이 되고 싶었다

이제 이슬이 되고 싶다. 풀잎에 맺혀 잠시 머물다
해가 뜨면 소리없이 스러지는 이슬이 되고 싶다.
드러내는 것 없이 휘몰아치는 것 없이 빛내는 것 없이 그저 맑게 있다 소리없이 스러지는 이슬이 되고 싶다

<전문, 『꽃길의 목소리』에서>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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