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터줏대감 ‘통문관’을 다녀오다
인사동의 터줏대감 ‘통문관’을 다녀오다
  • 관리자
  • 승인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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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관(通文館)*
1934년 문을 연 산기 이겸노 선생의 고서점. 고서 2만 여권을 소장한 장서가이자 고활자 연구가이기도 한 선생은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 독립신문 등의 국보급 고문서들을 발굴하였으며, 훈민정음 등 수많은 고서의 영인본도 출판하였다. 통문관은 고서를 찾아내어 그 가치를 세상에 알려 국학연구에 많은 공헌을 한 곳이다.


최대명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귀중한 고서를 발굴하고 판매하고 있는 고서점 ‘통문관’을 방문했다. 인사동에 위치한 통문관은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부터 유리창문 너머로 비치는 고서들로 인해서 그만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한 고서들로 인해 적당히 어둡고,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냄새들이 서로 뒤엉켜 코를 킁킁거리게 한다. 사실 고서점에서 오래된 책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그만의 냄새가 너무나도 맡고 싶었다.
 현재 통문관은 통문관의 문을 연 이겸노 선생님의 손자 이종운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이종운씨는 사진 찍는 것은 쑥스러워했지만, 2시간 가까이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 통문관의 역사가 7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언제 설립됐는가? 혹시 통문관을 소개하는 책자나 홈페이지가 있는가?
▷통문관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3월쯤에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 할까 생각중인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고서는 일반 서적과 달라서 직접 확인을 해보고 판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고민이다. 쇼핑몰을 운영한다고 해서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고...
▶이겸로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통문관을 운영하게 되었는가? 그 과정에 대해서 말해 달라.
▷할아버지께서는 9년 동안 한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셨다. 그러다가 그 서점에서 나와 지금의 서점을 인수하셨는데 이름을 ‘금항당’이라고 지으셨다. 그리고 해방이 되면서 지금의 이름인 통문관으로 바꾸셨다. 그 당시에는 직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업 선택의 폭이 적었을 것이다. 한번 서점과 인연을 맺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이 일을 하게 되신 것 같다. 
▶금항당에서 통문관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당(堂)이 일본식 표기라서 잘 쓰지 않는다.
▶한때 출판업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책들을 출판했는가?
▷45~92년도까지 출판업도 했다. 예전에는 서점에서 출판도 했었다. 대략 100여권 정도의 책을 출판했는데 주로 국문, 사학 등의 학술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출판과 유통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서점위주로 길을 가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에 피해가 컸을 것 같은데?
▷물론 전쟁의 피해가 있었다. 귀한 고서들은 피난 중에도 가지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고서들은 잃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숨겨져 있던 고서들이 시장으로 많이 나왔다. 다들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돈이 될만한 것들을 시장으로 죄다 가지고 나온 것이다.  
▶전쟁 이외에 다른 재난은 없었는가?
▷책이 도난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 물은 많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적으면 책이 부서지니까. 고서를 보관하는 것이 어렵다.
▶이겸로 선생님의 뒤를 이어 3대째 통문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문관을 운영하는 것은 권유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본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나?
▷책을 좋아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이 일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고, 나의 업이라고 생각한다. 책 역시 도자기나 그림과 같다. 도자기와 명화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처럼 장서가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책들을 수집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구하기 힘든 장서를 구했을 때 느끼는 희열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끔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고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통문관만의 철학이나 운영방식이 있는가?
▷문화재급의 도서가 보물로 지정되기 이전에 해외로 반출될 수도 있는데, 우리는 도서가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서점들끼리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같은 업종 사람들끼리의 선이라고 할까?
▶통문관에는 총 몇 권의 책이 있는가? 책 목록이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2만권 이상이 있다. 창고에서도 보관하고 있는데 주로 중복된 책들을 창고에서 보관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주 중요한 고서는 집에서 보관한다. 통문관은 고서를 판매하는 곳이다. 수시로 판매가 되기 때문에 정확한 목록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책이 분야별로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책의 위치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통문관은 책을 주로 어디에서 구하는가?
▷개인에게서 구하기도 하고,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곳에서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에도 자주 간다.
▶우리나라에 고서점은 얼마나 있는가? 개인수집가들도 많은가?
▷60,70년대에는 인사동에 고서점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3~4군데 정도가 남아있다. 현재는 인사동보다 대구에 더 크게 고서점들이 모여 있다. 부산에도 있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다루는 고서들의 종류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장서가들은 손에 꼽는다. 장서가는 고서에 대한 욕망과 경제적인 능력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서를 수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의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희귀성 있는 책이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희귀성은 두 가지로 구분 지을 수가 있는데, 우선 책의 발행부수가 적은 책들이다. 발행부수가 적다는 것은 애초에 책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런 책들은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책들이다. 또 발행부수는 많았지만 손실이 많아서 거의 남아있지 않은 책들도 희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은 주로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남아있지 안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서를 들고 통문관을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100년 전에 만들어진 책을 갖고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 입장에서 그런 책들은 고서로 치지 않는다. 물론 일제시대 전후의 정치적인 기록물들은 기간에 비해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치가 있지만, 소설이나 문화, 예술, 과학 등과 관련된 책들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없다. 한일합방 이후의 자료들은 친일파들이 많이 없앴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1919년에 뿌려진 전단지가 몇 백씩 한다. 기간으로는 3~400년은 올라가야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발행된 책들이 가장 오래 됐다고 볼 수 있다. 조선최초의 금속활자본이 가치가 매우 높다. 1403년(태종3년) 계미년에 만들어진 계미자로 기록된 책이 현재 20여 종 정도 남았는데, 그 고서들은 가격이 굉장히 높다. 도자기의 가격은 억대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고서는 1000단위로 넘어가면 비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고서점을 운영하다보면 돈과 세월에 대해서 무뎌지게 된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고서의 가치를 정하고 가격을 책정하려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고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책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에 책이 만들어진 형태나 글자를 보면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요약정도는 할 수 있다. 현재 문헌정보학에서 고서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학문으로 고서를 공부하는 것과 본인처럼 현장에서 고서를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학문으로만 공부를 하면 시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은 학문의 깊이는 점점 깊어지지만 넓어지지는 않는다. 박물관 고서의 가격을 책정할 때 대부분 교수들이 정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박물관 고서들의 가격이 더 높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세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너무 안타깝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가?
▷아까 말한 것처럼 쉽게 구할 수 없는 고서를 발견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평생에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한다. 그리고 헌책방 같은 곳에서 우연하게 귀한 고서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이런 경우는 점점 줄어든다.
▶단골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혹은 싫은 손님의 유형은?
▷물론 단골이 많다. 그래서 한 번 좋은 인연을 맺으면 계속해서 가까워진다. 그런데 간혹 손님 중에 물건에 흠을 잡는 사람이 있다. 물건이 맘에 안 든다거나, 가격이 맘에 안 든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물건에 흠을 잡으면 참 불쾌하다. 그리고 고서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험하게 만질 때가 있다. 그러면 제지한다.
▶고서의 매력은 무엇인가?
▷고서를 보면 이 책이 어떤 세월을 흘러왔는지 알 수 있다. 귀하게 대접을 받았는지 아니면 주인의 무지로 인해 어디에 박혀있었거나 험하게 다루어졌는지를. 귀한 책이 험하게 다루어져서 손상된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또 책의 소유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보고 그 동안 누구누구의 손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고서는 책에 기록된 내용뿐만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 같다.


독서신문 1397호 [200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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