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5) 조선시대 억울한 닭의 사연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5) 조선시대 억울한 닭의 사연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5.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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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조선 왕실에는 숙의 홍씨가 두 명 있다. 성종의 후궁으로 7남 3녀를 낳은 숙의 홍씨(1457~1510년)가 있고, 중종의 후궁으로 생졸년이 알려지지 않은 숙의 홍씨가 있다. 중종의 후궁인 숙의 홍씨는 조선 왕실 여인 중에서도 미모가 빼어났다. 남양 홍씨인 그녀는 중종이 여러 여인 중에서 특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남을 나았는데 혜안군이다.

중종은 10년(1515년)에 그녀를 숙의로 간택했다. 숙의는 종2품으로 왕비를 보좌하고, 왕실 여인의 예절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임금은 여인을 마음대로 사랑할 수도 없었다. 사대부들은 왕에게 절대적인 수신을 강조했다. 수신의 방해꾼 중 하나를 여인으로 보았다. 사대부들은 임금이 혼자 있을 때도 몸을 닦고 반듯한 생각을 하기를 강요했다. 여인의 치마폭을 생각하지 말고, 군자의 도를 닦을 것을 주문했다.

즉 조선의 왕은 여인을 공개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파는 듯하면 신료들이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왕은 연애전선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할수록 이 같은 경향은 심해졌다.

중종은 반정세력에 의해 옹립된 힘없는 왕이다. 임금이 되기 전 혼인한 부인은 신수근의 딸이다. 신수근은 중종이 몰아낸 연산군의 처남이다. 반정세력은 신수근의 딸을 중전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중종을 압박해 강제 이혼을 시킨다. 「중종실록」 1년 9월 9일 기록이다.

"지금 신수근의 친딸이 궁중에 있습니다. 만약 중전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집니다. 인심이 흩어지면 종사에 위해가 되니 은정을 끊어 밖으로 내치소서."
중종은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항변했으나 대소신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자 백기를 든다. 왕궁 입성 일주일 만에 부인 신씨는 경복궁 건춘문을 나섰다. 중종은 쫓겨난 신씨를 잊지 못했고, 폐비 신씨는 궁궐이 보이는 산에 올라가 평소 입던 분홍색 치마를 펼쳐놓았다.

중종의 아픈 가슴을 여며준 여인이 숙의 홍씨다. 임금은 숙의의 미모에 관심을 보였고, 많은 정을 주었다. 왕이 한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자 신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인을 조심하라"고 직설화법으로 공격했다. '암탉'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임금을 압박했다. 중종 10년 1월 11일 홍문관 부제학 허굉 등이 상소를 올린다.

 
허굉 등은 임금이 여자에 빠지면 괴상한 닭이 나타나 경고하는 여러 사례를 들었다. 한나라 선제 때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지만 울지 않았고, 진나라 효무제 때에는 날개 없는 닭이 생겼고, 발이 세 개인 닭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나라 무후는 황제를 서언하자 두 차례나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고, 발이 셋인 닭도 태어났다.

허굉 등은 요사스런 닭이 출현한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고, 정치를 제대로 하라는 뜻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후궁을 들이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처사라고 규정했다. 경계하고, 자제하고, 두려워할 시기라고 했다. 허물을 생각하고, 하늘의 견책(譴責)에 응답해야 하는데 여인을 선발하는 것은 절실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허굉 등의 주장은 중종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중종은 반정공신과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즉위 10년(1515년)이래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를 중용했다. 왕도정치를 표방하는 신진사류는 급격한 개혁을 추진했고, 기존 세력은 반발했다. 여기에 후계구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기존 세력은 왕이 반정공신인 박원정의 친척인 경빈 박씨 등에게 더 관심을 쏟기를 바랬다.

하지만 자파 세력이 아닌 다른 여인을 간택하자 크게 반발한 것이다. 허굉 등은 임금이 젊은 나이이고, 기존에 왕비와 후궁이 있는데 새 여인을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는 왕실을 튼튼하게 하는 게 아니라 미색에 빠진 용렬한 임금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정신력이 강해도 예쁜 여인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해 정치를 잘 살피지 못한다는 논리로 간택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신하들은 수탉과 암탉을 자연이치에 비유해 왕을 설득한다. "암컷은 음(陰)이고 수컷은 양(陽)입니다. 암컷이 수컷으로 변한다는 것은 음이 양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도(邪道)가 정도(正道)를 가리는 것입니다." 상소 말미에는 다시 한 번 수신할 것을 강조한다. "몸에 근본하지 않고서 집을 잘 다스리고, 집에 근본하지 않고서 나라를 잘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성명께서는 깊이 살피소서."

신하들은 임금이 후궁 들이는 데 반대하기 위해 닭을 끌어들였다. 닭의 성별이 바뀌거나 기형으로 부화되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있는 일이다. 이것을 하늘의 경계로 아전인수한 대신들을 보면 닭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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