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추적스릴러 연극 '술래잡기'… 더 이상의 '술래'는 필요하지 않다
심리추적스릴러 연극 '술래잡기'… 더 이상의 '술래'는 필요하지 않다
  • 이수진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4.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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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이수진 객원문화기자] 술래잡기란 놀이의 일종으로 한 사람이 술래가 돼 다른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는데, 술래에게 잡힌 사람이 다음에 술래가 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극 중에서는 이 노래를 괴기스러운 음성으로 만들고 음산한 조명을 함께 이용해 스릴러라는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심리추적스릴러라는 색다른 장르의 연극에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술래잡기>만의 매력을 알아본다.

▲ 연극 <술래잡기>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결핍’이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

칠흑 같은 어둠 속 밀실에 영문도 모른 채 갇힌 ‘강대수’, ‘송지아’, ‘오수련’.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밀실을 탈출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대화를 하는데 이 때 불완전한 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공유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질 수 있는 행복감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극 전체에는 암암리에 행해지는 가정폭력, 아동 학대와 아동 성범죄, 올바르지 않은 법의 심판 등의 사회 문제가 내포돼 있다. 인물들의 인생은 앞서 말한 사회 문제와 연결돼 있고 이들은 그에 대해 분노와 좌절, 지울 수 없는 상처,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묘사한다. 관객은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감정 표현과 심리 묘사를 통해 사회 문제의 부정적 영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인물들이 당한 억울하고 부당한 처사에 함께 분노를 느끼고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모두가 당연히 여기고 받는 가족으로부터의 애정과 유대감은 극 중 인물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축소판인 가정의 상실로 메워지지 않은 빈자리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게 만든다. 연극 <술래잡기>는 관계의 결핍, 관계에서 받는 만족감과 행복의 결핍이 불러일으킨 극단적인 부작용을 보여준다.

성장과정에서 ‘결핍’의 영향력은 범죄자를 양산하기에 이른다. 부모의 일관성 없는 양육과 부모간의 잦은 다툼, 그리고, 폭력, 착취 또는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잘 알려져 있는 ‘소시오 패스’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유년기 시절의 사회·환경적 결핍요인에 의해 성격장애를 가지게 된다. 소시오 패스는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른다. 이처럼 인물들이 가진 결핍은 잔인하고 위험한 반사회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성장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회적 관계나 애정의 결핍이 초래한 부작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연극 <술래잡기>는 관객에게 스릴러라는 장르를 이용해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 연극 <술래잡기>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스릴러’와 ‘극장’ 그 사이의 관객

그렇다면 스릴러라는 장르가 어떻게 극장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을까. 연극에서 스릴러 장르는 찾기 어렵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연출하기 위해 갑자기 소등되는 조명과 괴기스러운 음향 등을 사용했다. 가장 효과적인 연출은 극장 전체를 인물들이 갇힌 밀실로 설정한 것이다. 관객은 함께 밀실에 갇힌 피해자 입장일 때도 있고 한 발자국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가해자 입장일 때도 있다. 밀실 안에 갇힌 인물들을 지켜보는 동안 관객의 관음증이 발현된다.

관음증이란 엿보기 심리, 훔쳐보기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극장 안 관객은 무대 위의 인물과 사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은밀하게 즐기는 형태를 띤다. 이는 영화를 볼 때에도 비슷하게 적용한다. 그러나 관객과 배우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연극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관객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연극 <술래잡기>는 다중인격이라는 낯선 소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영화 <아이덴티티>와 흡사한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앞서 말한 연극만이 가진 연출을 통한 스릴러 장르 속 관객의 역할이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 영화 <아이덴티티>외에도 다른 영화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문도 모르고 밀실에 갇혔다는 설정은 영화 <올드 보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밀실 안의 TV속 기괴한 영상은 영화 <쏘우>와 흡사하다. 영상 속에서 사람이 아닌 ‘산타’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영화와 비슷한 소재를 차용하고 있음에도 연극이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스릴러라는 장르가 구현된다. 관객이 있는 장소 자체가 무대로 활용되면서 관객은 더욱 긴장한다. 긴장 이론에서 두 가지의 긴장의 형태가 나타나는데 첫째로 관객과 배우 모두 상황을 모르고 배역과 같이 긴장하게 되는 것이 있다. 둘째로 관객만 알고 배우는 모르는 상황에서 관객이 조마조마하며 지켜볼 때 발생하는 긴장 두 가지가 있다.

연극 <술래잡기>는 관객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왔다 갔다 함으로써 이 두 가지 형태의 긴장이 공존한다. 또한 스릴러라는 장르는 관객의 시선을 극에서 뗄 수 없게 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문제들과 인물들의 처절한 심리묘사, 인물들 간의 관계는 관객이 눈을 떼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고 어렵다. 하지만 관객의 긴장을 유발하며 손에 땀을 쥐고 계속 보게끔 만든다.

▲ 연극 <술래잡기>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내가 술래가 된다면?

관객의 긴장이 절정에 오르는 부분은 단연 극 후반이다. 결말을 향해 달리는 극 후반부에 ‘강대수’는 급작스럽게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밀실에 머물지, 이곳에서 나갈지 선택권을 얻게 되지만 어찌할 바 모르고 두 가지 현실 모두 회피한다.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렸지만 막상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그 무엇도 더 이상 책임지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

극 중 인물들의 불행한 삶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 아니다. 힘없고 유약한 인물들은 커다란 폭풍우 앞에서 난파된 작은 배에 불과하다. 사회는 이들이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을 유린당하는 것에서 지켜주지 못했다. 또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주지 못했다. 그래서 밀실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장소이다.

연극 <술래잡기>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만약 관객 스스로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관객은 상상 속에서나마 ‘술래’가 돼본다. 더 이상의 술래는 필요치 않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간접적 경험을 통해서나마 사회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통해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관객들에게 이러한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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