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윤빛나
  • 승인 2013.02.0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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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역사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세금을 납부하거나, 대중 투쟁을 거쳐 정치 참여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수천만의 평범한 시민들이 정부의 세입 기반에 포함되고 시민군이 되면서, 대중의 순응을 장려하고 이해 갈등을 중재할 대의 기구와 정치제도의 힘도 함께 커졌다. 정부는 평범한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미국의 전 부통령 엘 고어의 ‘연방 정부 성과 평가 위원회’는 시민이라는 용어 대신 ‘고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민은 정부를 소유하는 존재이지만, 고객은 정부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존재로 간주될 뿐이다. 공무원들은 고객 친화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이용자 친화적’이 되도록 교육받고, 공공기관들은 고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이 이야기가 정말 멀게만 느껴지는가?
 
책은 미국 민주주의를 인상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왜 이 지경이 됐는가를 비춰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주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저자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나빠진 이유로, 정부 혹은 정치엘리트들이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라고 주장한다.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혁신, 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변화는 정치를 ‘집단으로서의 대중’이 아니라 정치에 접근할 수 있는 의지와 지식을 가진 ‘개인들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저자들은 이를 ‘개인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한때 미국 민주주의에서 정당과 정치 엘리트는 평범한 시민들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법을 바꾸고 노동조합을 조직해 집단행동에 나서기 쉽도록 했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법적인 구제를 받도록 보장했다. 이런 도움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고,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 시민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안을 모색했으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평범한 유권자들은 정치에 불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들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술자리 정치 비평과 정치로부터의 철수가 전부가 됐다. 물론, 유권자 2명 가운데 1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어떤 빅브라더가 불순한 의도로 기획하고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 동원의 노력을 해태하거나 포기한 것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투표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으며, 그저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가상적 시민(virtual citizen)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인 이 책은 까다로운 각종 사건, 법률, 단체, 개념 등이 꼼꼼하게 옮긴이주로 달려 있어 미국적 맥락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돼 있다. 애국적 열정을 품고 있지만, 부모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도 던져 준다.

■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펴냄 | 524쪽 |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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