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작가 "소설 '국가의 사생활', 영화화 작정하고 쓴 글"
이응준 작가 "소설 '국가의 사생활', 영화화 작정하고 쓴 글"
  • 윤빛나
  • 승인 2012.06.22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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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국제도서전'서 저자와의 대화 가져

[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독특한 상상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응준 작가가 21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2 서울국제도서전'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저서 『내 연애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 줬다. 다음은 표정훈 출판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응준 작가의 '저자와의 대화' 중 일부다.

-성석제 선생님처럼 시를 쓰시다가 소설가가 되신 케이스다. 그런 경우 대부분 시는 그만둔다. 이응준 작가는 요즘도 시작을 꾸준히 하시던데?
얼마 전에도 시집을 하나 냈다. 돈 안 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건 제가 유일한 것 같다. 소설도 시도 유명하진 않지만….(웃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시와 소설을 구분하고, 나이가 들면 시를 쓰지 못하게 되는지 의문과 불만이 많았다.
 
-작가이자 영화인이기도 하신데, 문학 활동과 어떤 영향관계가 있었는지.
사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문학도 몇번 그만둘 뻔 했다. 글만 써서는 힘들었다. 인간적 자존이 더이상 지켜지지 않아서 쓸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해 찾다 보니 영화를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좋아졌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문학 말고는 하는 게 없는 애같은 어른이었다. 만약 그때 세상에 남을 수 있는 인성이 있거나, 다른 일을 할 줄 알았다면 그 일을 했을 것이다.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실 한때는 영화를 무시하던 문학주의자였다. 지금은 읽었을 때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 가장 수준 높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제 체질이 그것과 많이 가깝고, 지향하는 바와도 가깝다. 『국가의 사생활』은 제 목표와 체질과도 가깝지만 영화화 하겠다고 작정하고 쓴 글이다. 앞으로도 그런 소설을 쓰고자 한다.
 
 

▲ '저자와의 대화'중인 이응준 작가(왼쪽)와 표정훈 출판평론가     ⓒ 장윤원



 
-북한을 흡수통일한 상황을 그린 『국가의 사생활』은 화제가 많이 됐었다. 혹시 오해받은 적은 없나?
물론 받았다.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오죽하면 민음사 홈페이지 '행사스케치' 부분에 그동안 오해받은 것들에 대해 항변 아닌 항변도 해 놨다. 흡수통일 사회를 어둡게 그렸다는 점만 보고 특정 단체에서 강연 요청까지 왔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더라. 병을 고치려면 병을 진단해야 하듯이, 작가도, 특히 사회파 작가의 경우 사회에 대해 과거건 미래건 현재건 간에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해서 상상력을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존경하는 소설가 분께 제 단편집을 보냈더니 편지를 주셨다. 너무 좋아서 편지를 액자에 넣어서 걸어놨다. 고달플 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그 분께 『국가의 사생활』을 보내드렸더니 연락이 없다. 저를 우파 작가로 보신듯 하다.(웃음) 저는 우파 자유주의 날라리 작가다. 사실 한국에는 좌우가 없다고 본다. 철학적으로는 허무주의자다. 그 연장선상에서 쓴 것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다. 그동안 왜 스토리가 없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썼다. 단연컨대 사회의 가장 큰 이야기 2개를 『국가의 사생활』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을 통해 썼다고 자부한다.
사실 『국가의 사생활』은 저에게 아픈 부분이 많다. 저에게는 이 소설이 최인훈의 『광장』이다. 『광장』의 이명준은 4·19 시대에 좌도 우도 거부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하지 않고, 통일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거부하는 대신 아픔을 받아들이고 설사 도망자라 할지언정 강력하고 뚝심있게, 외롭지만 살아남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국가처럼 소중한, 나 자신이라는 '실존'을 포기하지 않는 나의 이명준을 그리고 싶었다. 근데 사람들이 그건 안 봐준다. 하지만 오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연애의 모든 것』 주인공 이름이 '김수영'이다. 혹시 시인 김수영에서 따 온 이름인가.
맞다. 이름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전 좀 심하게 받았다. 덕분에 성격이 많이 망가져서 지금은 후회한다.(웃음) 20대 때는 좋게 말하면 치열했고,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중년 남자로서 깊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수영은 실제로 좋은 양반은 아니었다고 한다. 짜증 잘 내고, 쪼잔하고 피곤한 스타일? 그런데 그런 자신을 감추지 않았다.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더 나아가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의 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은 잘 나가는 남자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전교회장, 명문대, 판사, 국회의원까지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인 김수영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신랄하다. 생각해 보니 판사까진 괜찮은데, 소명 의식이 없는 거다. 그런데 소명의식이 필요한 국회의원이 됐다. 그만두려 하다가,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오소영'과 부딪히면서 변해 간다.
 
-책의 각 챕터가 시작될 때 아주 적절하게, 인용인지 아닌지 모르게 한마디 던지고 시작하시던데. 독서를 즐기시는지?
솔직히 많이 안 읽는다. 학창 시절 독서 경험이 많지도 않다. 절대 잘난척 하거나 고귀한 척을 하려는 건 아니다. 스무살 무렵, 어린 나이에 프로 시인이 된 탓에 모든 책들이 직업인이 바라보는 책, 쓰기 위한 도구 이런 식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긴 했지만 독서광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도 이상한 생각을 많이 했지 책을 읽고 밑줄 긋지는 않았다. 인용한 문구들도 책을 쓰기 위한 것일 뿐이다.
 
-글 쓰실 때, 창작 단계에 들어갔을 때 습관이나 특별한 징크스가 있는지?
음악을 많이 듣고, 늘 틀어놓는다. 눈을 좀 자주 감고….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반쯤 나가 있다. 될 수 있으면 사람 안 만나려고 한다.
 

이응준 작가의 화법은 거침이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거침없이 풀어 가는 그의 작품 템포만큼이나 그랬다. "이미 책의 시대, 문학의 시대는 지났다. 이런 시대에 책을 쓰고,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만 읽게 하는 게 상업주의에 대한 복수"라며 "자기를 쇄신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자기 고집을 부릴 수 있고, 물려줄 수 있다. 조선이 망한건 시대에 적응 못하고, 성리학과 제도가 부패해서다. 이런 자리도 작가라는 원숭이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한 의무다. 불편한 얘기라도 해야 한다. 어차피 내 작품 만명도 안 읽는다"고 시원스레 말하는 그의 모습은 괴이하다기보다는 앞으로의 작품세계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촉매제가 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한편 '2012 서울국제도서전'은 이응준 작가 이외에도 22일 최문희, 유안진, 임성순, 한유주 작가, 23일 김이설, 김훈, 박범신, 은희경, 전아리, 구효서, 윤성희 작가, 24일 김별아, 권지예, 김현영 작가와 '저자와의 대화'시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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