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때늦은 깨달음에 지니지 않는 것인데
후회는 때늦은 깨달음에 지니지 않는 것인데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12세기 중엽, 몽골 출신의 테무친(鐵木眞), 그러니까 칭기즈칸의 일화다. 그는 몽골을 지배하는 대칸(大汗)의 지위에 오르자, 국가 기구를 개혁하여 국내 유목민을 95개의 천호(千戶)로 하는 집단제로 분할하고 군사화를 감행했다. 그가 구성한 천호 및 그것을 구성하는 백호(百戶)집단은 행정단위이면서 동시에 군사조직이었던 것이다.
 이를 힘의 근간으로 하여 칭기즈칸은 국가의 재정적 기초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금(金)나라와 서하(西夏) 등 남쪽 방면의 농경지역에 침입하여 말과 낙타 및 재물을 약탈하고, 스탈린이 한민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방에 흩어져 살던 기술자나 농민들을 끌어다 유목지대로 강제 이주시켜 촌락을 이루게 했었다.
 그가 중국과 페르시아 등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들을 자기 휘하에 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체제를 구축하고 용맹한 병사들과 함께 세계 정복을 위한 꿈을 키워갔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함께 사냥에 나간 휘하의 병사들을 몰이꾼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대신 오직 훈련이 잘 된 매 한 마리만을 데리고 짐승이 있을 만한 곳을 탐색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워서 그랬는지 갈증이 목을 옭죄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았으나 어디에서도 물이 보이질 않아 애를 태우며 걷다 드디어 물이 가늘게 흘러내리는 골물을 발견하고 뛰어가 가지고 온 그릇에 물을 받았다.

 그릇에 어느 정도 물이 차 마시려고 하는 순간, 길을 안내하게 하기 위해 늘 같이 다니던 매가 공중에서 세찬 속도로 내려와 물을 담은 그릇을 쳐 그릇의 물을 다 땅에 엎어버렸다. 영문을 모르고 화가 난 칭기즈칸은 매를 원망하며 다시 그릇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겨우 그릇에 찬 물을 마시기 위해 그릇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 매는 또 날아들어 칭기즈칸의 물그릇을 제 몸으로 들이받아 땅 위에 엎어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칭기즈칸은 활의 시위를 당겨 화살로 그동안 그렇게 아끼던 매를 쏴 그 자리에서 죽게 했다.

 순간 칭기즈칸의 머리를 스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충직한 매가 한번도 아니고 재차 같은 행동을 반복한 것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울한 심정을 가누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다 물이 내려오는 골의 위편 쪽을 보니 독사 한 마리가 죽어 널브러져 있는 것 눈에 들어왔다.

 “나의 다급함이 한 생명을 죽게 했구나. 사정이 다급할수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었는데…”

 칭기즈칸은 혼잣말로 이 말을 무수히 반복하며, 다 소용없는 일이 된 것을 후회하고 모든 사냥 일정을 취소하고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몇 번이나 화가 났을 때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기에게 일렀다. 그러나 후회는 늦은 깨달음에 불과할 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 일병의 총기 난사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세상이 어지럽다. 위정자의 어금니 무는 소리에 국민들의 걱정이 골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우울함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에서 벌이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후회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의 손에 총이 들려져 있고, 권력이 쥐어져 있을 때 조신하게 행동해야 만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성질이 난다고 성난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은 남을 괴롭히는 일뿐만 아니라, 제 이빨로 제 몸을 물어뜯어 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은 소인배들의 작태에 불과하다.

 이를 환골탈퇴의 기회로 삼아 우리 사회가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방에 이리떼가 몰려다니며 으르렁거리는 같아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제 성질로 인해 결국 제 운명을 더럽히고 망치는 법이다. 개과천선해주기 바란다.
 그러고 하늘을 보거나 사람들을 대하면 얼마나 후회스럽고 암담할지 오히려 동정이 간다. 충직한 동료였던 매를 죽인 칭기즈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헤아리며 나를 뒤돌아본다.
 
독서신문 1385호 [2005.07.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