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속에서 성숙하고
이름 속에서 성숙하고
  • 신금자
  • 승인 2006.11.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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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 신금자     ©독서신문
나는 한때 실명을 두고 깊이 고민한 적이 있다. 내 머리의 모든 감각을 조합해서 예쁜 이름을 지어보기로 했다. 사춘기 소녀 때의 내 이름은 투박하고 어감도 좋지 못하여 이름표 달기조차 창피하여 꺼렸다. 어떤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면 머뭇머뭇하고 망설여져서 명쾌하지 못했던 아릿한 기억도 있다.

 특히 정성들여 쓴 편지 말미에 예쁜 의미를 주는 이름을 고안하느라 밤이 늦은 줄 모르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맛보았다. 내 딴에 다소곳하고 조금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지의 느낌이 밴 이름을 찾아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막상 그 이름을 내 것인 양 자꾸 되뇌며 정들이려 하였지만 ‘나’라는 느낌으로 소화가 되지 않았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이질감만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 마음을, 좀은 유치한 고민의 흔적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딸 이름 짓는 일에 너무 성의가 없었다고 원망어린 시선을 보냈더니 할머니의 뜻이었단다. 아버지는 ‘귀한 아이’라는 뜻으로 금지(金枝)라고 지었는데 작명의 대원칙 중 부르기 쉽고 듣기 좋다며 ‘금자’로 쉽게 호적에 우겨넣으신 할머니는 내 자장가로‘금자동아, 옥자동아......’엔 영락없다. 하긴 맏딸인 언니 이름을 영지(永枝)라고 지었는데 마을사람들이‘연자’라고 부르는 데에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 집은‘연자네’로 통하고 나도 어릴 땐 그리 알았다.

 드물게 고운 이름을 보면 나랑 연관지어 보는 버릇도 생겼지만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한 탓으로 ‘신금자’라는 이름 속에 꼭꼭 가두어져 있는 나를 발견해내고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름 하나하나에도 시대적 배경과 소명이 있는 듯하다.
헐벗고 못 먹고 질병에 힘겨워하던 시절 태어난 아명(兒名)은 반상(班常)을 불문하고 좀 천박스럽게 짓는 게 관례였다. 그래야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조선조 왕인 고종의 아명은 개똥이였고,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다. 사대부 집안 남자들은 상투를 틀어 올릴 성년의 나이가 되면 정식 이름 즉, 관명(冠名)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에서는 아명을 그대로 쓰거나 성도 없는 토박이 이름을 썼다한다. 개동(介東). 소동(召東).마동(馬東) 같은 이름과 정월이, 오월이, 돌쇠, 마당쇠 등도 흔했다. 그리고 일제치하에서 창씨개명을 한 흔적이 시골 우리 고향의 할머니들한테 아직도 남아 있다. 아리빠. 이마꼬. 다까꼬 등, 심부름을 할 때 그 호칭으로 해야 다들 쉽게 알아들었다. 어릴 때이니 그 집 할머니의 이름인지도 모르고 마구 통용했다. 그 일제문화의 영향으로 60년대 이전 우리 나라 여성이름에는 일본 여성이름 꼬리에 붙는‘꼬’와 같은‘자’돌림의 이름이 많아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감정으로 더욱 내 이름을 싫어하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요즈음은 관례나 관습을 무시하고 독특하고 예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새로운 풍조로 등장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이름은 귀엽고 예쁘고 나래를 단 듯한 지금 아이들의 이름 속에서 지워져버린 지 오래다. 좋게 말해서 대단한 희소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도 내 아이에게만은 고운 리본을 맨 것 같은, 맵시 있는 이름으로 하리라던 작정과는 달리, 막상 닥치니 함부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시대야 어떻든, 사주와 음양오행을 따지는 전문 작명가를 통해 이름을 짓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은 것은 자식의 이름 석자에 거는 간절한 기대 때문일까.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아버님이 지어 보내셨다. ‘인철’이라는 흔하기도 하고 어색한 분위기의 이름이었지만 어른이 하신 일이라 안심이 되어 홀가분해졌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이름이 나를 조명해주지 않으며 내가 지극히 인간적일 때 내 이름도 평상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찾아서 닮아갈 것이라는 책임감이 밀려든다. 그리고 내 어릴 적 나쁜 습성과 추억까지도 고스란히 챙겨서 싸안고 진정한  나를 찾는 수고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다만 지천명을 앞두고 ‘호’나 필명 하나쯤은 묵혀두어야겠다. 감정이 무디어져갈 무렵이니 누구나 만만하게 불러주어 허허로운 나를 일깨울 수 있는  그녀를 이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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