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독서신문
  • 승인 2009.10.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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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 외롭다… 외롭지 않다"
현 시대의 소시민들의 질곡과 여운을 그리는 작품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학창시절, 친구들과 유난히 즐겁게 웃으며 했던 놀이가 있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 상을 주고 싶을 만큼 훌륭한 게임, 그것은 바로 ‘얼음 땡’이다.

한명의 술래가 나머지 사람들 중 한명을 손으로 치면 그 한명은 술래가 되고 만다. 조금 철학적으로 폼을 잡고 생각해보면 이 게임은 참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쥐를 좇을 때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한 곳으로 몬다고 했던가. ‘얼음 땡’의 술래가 한 명을 잡고자 필사적으로 움직이지만 위기에 처한 ‘얼음이 아닌(이것을 물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존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감지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젖 먹던 힘을 내면 외친다. “얼음!”이라고.

모두가 다 꽁꽁 얼어버린 얼음의 상태가 돼버렸다 해도 한명의 ‘물’만 있으면 된다. 그 ‘물’이 얼음들을 하나씩 손으로 스치고 다니면 그들은 다시 몸이 녹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장은진의 장편소설『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마치 얼음땡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생존자와 같다. 그가 스치고 지나간 239, 1, 56, 109 등은 다시 얼음의 상태에서 물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3년간 집을 떠나 ‘편지여행’을 다니는 한 남자, 지훈의 여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지훈은 어느 날 집을 떠나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가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결코 단편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사건과 마음, 그리고 심리가 교차해 그를 ‘여행’이라는 오지로 내몰았으며 그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의 여행이 다른 사람들과 갖는 차별점이 있다면 여행을 통해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각각 다양한 상황과 방식으로 만났지만 그는 여행을 통해 만난, 자신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번호를 부여해준다. 만난 순서대로 1, 2, 3 등의 숫자를 부여하고 모텔에 가서는 꼭 편지를 쓰고 잠을 청한다. ‘자신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집으로 오면 이 여행을 마치리라’고 마음을 먹지만 자신의 소식통인 친구 녀석에 의하면 집으로 편지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메아리 없는 외침만을 반복하는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한 여자, 751. 달가운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소중한 교훈을 남겨주고 여행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남긴 메시지는 바로, ‘둘도 나쁘지 않더라’는 것.

이 소설은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삶 가운데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 질곡과 여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를 떼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일명, ‘껌딱지 예술가’인 99와 성형외과 의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어머니를 협박해 쌍꺼풀 수술을 하게 되는 여고생 239, 기차 이동 판매원인 109, 지훈에게 짐을 맡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412 등 꽁꽁 얼어버린 상태로 있던 그들은 지훈을 만나면서 점차 마음과 생각이 녹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차가운 얼음의 상태에서 상온의 물 상태로 녹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훈과 관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처럼 관계로 인해 진정한 ‘물’의 상태로 변질한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자’와 ‘지훈’이다. 이들은 함께 여행을 하며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서로를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분노도 하나의 관계로 승화되면서 이들은 점차 누가 손을 담가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물 같은 존재가 되가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한 모텔에서 잠을 잔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꽤 오랜 시간이다.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다소 외설스러운 장소를 제공하지만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은 공간으로 그곳을 재탄생시킨다. 옆방의 신음소리가 그들의 주위를 돌기만 할 뿐, 결코 침투하지 못하는 것은 여자와 지훈이 아직은 누군가와 ‘관계’하는 것에 능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렇듯, 이 소설은 편지를 매개로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메일보다는 다소 느린 아날로그의 편지가 디지털보다 빠른 속도로 한 삶을 치유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작가는 지훈과 여자를 통해 차디찬 하나의 얼음이 점점 녹아져 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완전히 물이 되지는 않은 듯, 그 여운을 남기고 소설을 매듭짓는다.

사건의 커다란 높고 낮음도, 명확한 앞면과 뒷면도 존재하지 않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앞면과 뒷면 사이의 미세한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람의 냄새가 훈훈하게 나는 작품이다.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94쪽 / 10,000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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