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도가니
  • 독서신문
  • 승인 2009.07.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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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아, 더욱 거칠게 더욱 뜨겁게 숨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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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을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공지영의 신간이 나왔다.『즐거운 나의 집』이후 2년 만의 작품인 이번 소설의 제목은『도가니』. ‘도가니’란 ‘흥분이나 감격의 상태로 들끓는 어떤 상태’를 일컫는 말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등의 형태로 이 언어를 구사하곤 한다. 그녀는 누가, 어떤 도가니에 빠져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의 대강은 이렇다. 아내의 주선으로 무진의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로 부임하게 되는 강인호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음산함을 느낀다. 교장과 행정실장, 여타 다른 교사들의 냉소적인 미소와 그에 대한 무언의 적의를 온 몸으로 느끼며 교사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 내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아이들의 인권과 파묻히는 진실을 위해 대학교의 선배 서유진과 함께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 법정싸움으로 번진 이 사건은 공방 중에도 아이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계속되며 그들 앞에 놓인 장애가 무진시의 안개만큼 너무나 켜켜이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 너무 이상한 믿음을 가진 거 아니에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유명한 이유는 그게 천지창조 이래 한번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 당신은 무진시민 모두와 싸워야 할 거요. 사방에서 거짓말을 하며 서로서로를 눈감아주고 있어요. 시의원과 건설업자의 처남이. 운전면허시험장 직원과 병원장 사모님이, 룸쌀롱 마담과 경찰서장이, 밤무대 무명 가수와 외로운 사모님이, 유부녀와 목사가, 교수와 교재 출판업자가, 시교육청과 입시학원 원장이 서로를 봐준다며 눈을 감고 거짓말을 해대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은 가끔 포기할 수 있어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예요”

얽히고설킨 기득권의 욕망은 지독한 무진의 안개와 복선을 이룬다. 무진에 살고 있는 그들이 그곳의 안개에 익숙해 졌듯, 그렇게 그들은 부패와도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진실과 조금씩 타협한 그들의 태도는 결국 그것이 쌓이고 쌓여 진실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자리 잡아 버렸다.

검은색과 흰색은 구분하기가 참으로 명백하다. 하지만 흰색과 흰색에 가까운 회백색은 분간할 수 없다. 그렇게 조금씩 검은색을 허용하면서 세상을 살다보니 어느새 흰색은 검정색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이렇게 조금씩 변질하는 것의 위력을 알고 있던 서유진은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이 작품은 수단이 목적이 된 시대에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돈, 명예, 권력은 사실 인생을 좀 더 품위 있게, 편리하게, 즐겁게 살기위한 하나의 도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삶의 목적이 돼버린 이 ‘값비싼 수단’들은 그렇게 목적을 짓밟고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님을 명백히 상기시키면서 오랫동안 우리가 잊고 지내온 인권과 사람다움이라는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간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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