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혼돈에서 진실에 이르는 길
일상의 혼돈에서 진실에 이르는 길
  • 최용석
  • 승인 2008.11.07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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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그 여자의 자서전』
▲     © 독서신문
김인숙의 단편 『그 여자의 자서전』에는 일상에서 만나봄직한, 친숙하게 느껴지고 실감이 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현 세태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나아가 건강한 삶의 모델을 암시하고 있어 독자적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들 삶의 면면을 유심히 들여다본 독자라면 자연스레 자신의 자화상과 마주할 성싶다. 그 자화상은 크게 네 유형으로 구분되는 작중 캐릭터 중 하나와 닮아 있거나 적어도 각 인물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먼저 작중 화자의 자서전 대상인 이호갑을 언급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투기를 한 결과, 짧은 기간에 적잖은 재물을 축적한 졸부다. 그는 여기서 만족치 않고 금력을 이용, 정계에까지 진출하려 하는 속물이기도 하다.

초면인 자신의 자서전 작가를 향해 이호갑이 건넨 첫 인사말은 생뚱맞게도 “고양이를 좋아해요?”다. 곧이어 그는 아비시니안 종인 회색 고양이 사육에 관한 고충을 털어놓는다. 아내가 애완용으로 사들인 탓에 고양이가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해외여행에서 굳이 고양이를 구입한 까닭은 애정과 관심을 쏟을 대상이 절실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문제는 아내를 포함한 가족에 대한 이호갑의 인식이다. 그것은 고양이에 대한 반응에서 암시 받을 수 있다. 아내가 원하는 대로 고양이와 함께 살기는 하겠지만, 그는 고양이를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아내를 포함한 가족을 성가신 존재로 생각하지만 단지 가족이기에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과 진정성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연히 행복은 저 멀리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당자자인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은 물론, 주변 사람도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일수록 주변 사람에게 폐해를 끼칠 가능성은 더욱 높기 때문이다. 사랑과 진정성이 결여된 가족 구성원의 경우, 그들의 기본적 욕구는 고스란히 불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려 한다면 부당한 대가와 방법을 치를 수도 있다. 지치고 힘이 드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어쩌면 인간 상호간에 사랑과 믿음의 마음이 붕괴되면서 개인은 더욱 더 물질적 가치에 매달리게 됐는지도 모른다. 물질 지향의 세속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개인은 사랑과 봉사, 믿음과 소망 등 인간적 가치 그 자체를 망각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호갑을 비롯한 그의 가족은 인간적 가치가 아닌, 부와 명예 등 세속적 가치를 맹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적 가치를 향한 맹목적 추종은 삶을 언제든지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첫 번째 인물 유형에 속하는 이호갑 가족은 세속적 가치를 일정하게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에 대한 추구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로는 작중 화자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그는 물질적 욕망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 전혀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의 내면 역시 불만과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유형의 인물과 다르지 않다.

평생 시골 학교의 말단 서무직을 전전하다 작고한 화자의 아버지는 생존 당시 자녀에게 위인들의 위대한 삶 속에서 진리와 진실을 발견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로또 당첨이라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물이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위인들의 삶이 아니라 그들이 마침내 거머쥔 명예와 출세와 돈이었다. 위인은 가난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위인은 성공을 부정할 수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무능한 인간은 절대로 전집류의 책에는 등장할 수 없다는 사실……. 당신의 아들이 책 속에서 배우기를 바란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다. 아버지가 책 속에서 진정 발견하기를 원한 것은 ‘명예와 출세와 돈’의 위대함이 전부다. 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비루하다고 여기는 일상을 세속적 가치의 확보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특성을 보인다.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봄직한 세속적 욕망의 자장에서 아버지 또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비록 세속적 욕망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긴 하였지만 그의 인간됨을 묘사하기에 순수, 성실, 정직 등의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가 시골 중학교의 서무 직책을 묵묵히 수행한 사실이나 따뜻한 부성을 잃지 않은 점은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유형의 인물이 위선적 삶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는 공산은 커 보인다. 세속적 욕망에 눈이 먼 인물일수록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에 너무나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삶의 질은 세속적 가치에 봉사하는 노예적 삶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물질 지향적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성을 보다 많이 지니고 있는 작중 화자의 아버지는 두 번째 유형의 인물에 속한다.

아버지의 이런 속내를 알아채지 못하고 책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아들이 있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세속적 가치 대신, 인간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 대가는 지속되는 가난의 굴레가 전부다.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는 현 세태에 비추어 그의 삶은 비현실적인 몽상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질 지향적인 현실에서 이런 유형의 인물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세 번째 유형 인물인 아들의 캐릭터는 서사적 모델로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세속적 욕망과 인간적 가치 혹은 허구와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화자 또한 독자의 관심에서 예외적 대상일 수 없다. 그는 약간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존심까지 내팽개치고 졸부의 자서전을 대필한다. 그 돈은 순수 소설을 창작하기 위한 것이다. 순수 소설의 창작이 인간적 가치를 꾀하는 진실의 영역에 속한다면 졸부의 자서전 대필은 허구적인 세속적 욕망의 영역에 해당한다. 진실한 인간적 가치를 위해서는 허구의 세속적 가치도 기꺼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처럼 자기모순의 양상을 보이는 ‘나’가 네 번째 유형의 인물이다. 하지만 자서전 대필 후 호텔 룸에서 떠올린 책 글귀는 ‘나’의 인식적 한계를 일깨우는 성찰적 기제로 기능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책장을 가득 채웠던 전집류의 책들이 떠오른다. 허구가 진실이 되는 때에 이르면 진실도 허구가 되는 거라고, 아버지의 책장에 가득 차 있던 전집류의 책 중에는 그런 구절이 있었을 것이다. 

‘허구가 진실이 되는 때에 이르면 진실도 허구가 된다.’는 글귀에 작가의 소설적 전망이 암시되어 있다. ‘나’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 글귀는 허구가 진실로 둔갑하면 이 세상의 진실은 더 이상 진실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없게 됨을 일깨운다. 따라서 이 말은 허구는 허구로, 진실은 진실로 인식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바탕에는 진실과 허구에 대한 작가의 변별적 자의식이 뚜렷이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소설의 제명 ‘그 여자의 자서전’은 ‘거짓 인생을 살아온 여자의 자기 고백서’라고 풀이해도 무방할 듯하다.

비록 허구와 거짓이 난무하는 일상에 함몰되어 있지만 결국 ‘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구를 외면하지는 못한다. ‘나’의 내면이 세속적 욕망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지 않는 것이다. 호텔 룸에서 화려한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나’가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정겨운 화면을 떠올리고 있는 장면은 이런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메시지를 단순히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사실, 참과 거짓 혹은 진실과 허구에 대한 진단은 개인적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야말로 참되고 진실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농후하다.

개인의 인생을 다루는 자서전의 생명은 삶의 진실로서의 진정성과 투명성이다. 그런데 이런 자서전에 허구가 개입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바로 개인적 삶에 관여하고 있는 진실과 허구의 문제를 문학적 화두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도에서 자서전이 그 제재로 선택된 것이리라. 따라서 작가는 보다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진실과 그 대척점에 놓여 있는 허구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진정 진실의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할 때 진실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가일층 경주될 것임은 분명하다.

 

/ 최용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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