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도, 사기꾼도 될 수 있는 ‘이 직업’
천재도, 사기꾼도 될 수 있는 ‘이 직업’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6.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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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우리를 사랑할 때 우리는 천재가 된다. 여러분이 우리를 묵살할 때 우리는 사기꾼이 된다. 우리는 천재인 동시에 사기꾼이며, 또 그보다 더한 무엇이다. 그리고 그보다 미약한 무엇이기도 하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신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지휘자 역시 그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책 『지휘의 발견』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말에서도 드러나듯, 지휘자는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문” 직업이다. 

지휘자가 엄청나게 생소한 직업은 아니다. 2008년에 나온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카리스마와 성격파탄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지휘자 캐릭터 ‘강마에’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던가. 기록적인 히트를 쳤던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완벽주의 천재 지휘자 캐릭터 ‘치아키 선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대중에게 지휘자를 비교적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시켰을 뿐 지휘자들의 삶과 내면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못했다. 

『지휘의 발견』은 자신을 ‘떠돌이 지휘자’라 지칭하는 한 지휘자의 ‘지휘 일대기’다. 존 마우체리는 이 책을 통해 지나 온 50여년의 지휘 인생을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선배이고 스승이었던 지휘자들의 숨결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지휘자들은 ‘강마에’처럼 독단적이지도, ‘치아키 선배’처럼 멋있기만 하지도 않다. ‘거장’이라 불리는 카라얀, 번스타인, 토스카니니 등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지휘자이자 서로의 가장 큰 맞수였던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979년, 번스타인이 말러 교향곡 9번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마치고 뉴욕 자택에 도착할 때까지 악보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말러 전문가였던 번스타인이 그 곡을 연주하며 쌓아 온 해석과 노하우가 모두 담겨 있는 악보였다. 번스타인은 몇 달 뒤에야 악보를 돌려받게 되었는데, 그 사이 카라얀이 같은 곡을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해 그라모폰상까지 수상했다. 번스타인은 기존에 그 곡에 대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카라얀이 자신의 악보를 이용했다고 확신하며, 모두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1958년에는 반대의 일도 있었다. 카라얀이, 자신이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한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를 번스타인이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마우체리는 다른 사람의 공연을 그대로 복제한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두 사람처럼 완전히 다른 개성을 가진 굴지의 지휘자인 경우는 더하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상호 표절 의혹은 ‘거장’ 지휘자들도 시기와 질투에서 초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우체리는 콧대 높을 것 같은 지휘자도 사실은 끊임없는 평가 속에 놓인 직업이라는 점을 짚는다. 지휘자는 ‘고용 안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직업 특성상 소속을 자주 옮기는데, 그 때마다 새로운 단원들이 옷차림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새로운 지휘자가 어떤 사람인지 재단한다. 짓궂은 단원들은 일부러 틀린 음을 내 지휘자가 그 소리를 정확히 잡아내는지 시험하기도 하고, 지휘자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어깃장을 놓기도 한다. 그런데 첫인상 평가에는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이라,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 사령탑에 올랐을 때도 오랜 세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밑에서 연주해 온 단원들은 깊은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책 『지휘의 발견』은 천재와 사기꾼, 예술과 비즈니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현실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지휘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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